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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GAS ESSAY

뜨개질 이미지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될 것 같아
뜨개질을 시작했다

[글 전북지역본부 설비운영부 오승아 대리]

고양이 일러스트

어느 날 방구석 ‘노다지’를 발견했다

살다 보면 ‘어쩌다 보니 그냥’ 살게 될 때가 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어제 같은 삶 속에서 또 그냥 살아가는 내 모습을 문득 마주하면 초라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지난날들을 돌아보면 치열하게 달리며 살던 시절도 있었고, 내 마음에 나를 온전히 맡기고 유유자적 흘러가듯 자유롭게 사는 날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 ‘그냥 사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게 그렇게 허무하고 괴로울 수가 없다.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니고,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알 수 없는 부재에 마음이 텅 비어버리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시작되며 알 수 없는 이 헛헛함은 더 커져만 갔다. 반복되는 일상과 삶의 반경의 축소는 무엇이 문제인지도 잘 모르는 내 마음을 더욱더 옭아맸다. 나는 더 이상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자유롭게 어디든 떠나든 눈에 보이는 성취를 얻어내든 뭐라도 해야 할 것만 같았다. 상황이 몸과 마음 모두 자유롭지 않아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기에 나는 닥치는 대로 집을 뒤졌다. 뭐라도 건져낼 것은 없나 고민하던 찰나 얼기설기 얽혀있는 실뭉치들을 발견했다. 기억도 잘 안 나는 몇 년 전 뜨개질에 도전했다가 실패해서 구석에 박아둔 뜨개질 재료들이었다. 노다지를 발견한 것이다.

당장 유튜브를 켜서 기초 강좌를 듣기 시작했다. 아, 얼마나 좋은 세상인가! 배우고 싶은 것을 마음먹은 순간 배울 수 있다니 말이다. 기쁜 마음을 부여잡고 한 땀 한 땀 따라 해보았다. 손에 익지 않아 계속 엉거주춤한 자세로 뭔가를 만들어냈다. 기초를 잘 해둬야 나중에도 잘 만들 수 있다는 마음가짐 하나로 어려웠지만 계속 만들고 또 만들었다. 한나절이 지나고 해가 어둑어둑해지자 집에는 동그랑땡 같은 연습용 작품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엉성한 모양들이 제법 자리가 잡혀가기 시작했다.

고양이 일러스트

기다림 끝에 결실을 얻다

시간은 정말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져다준다. 뜨개질에 들인 내 시간들은 어느덧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되어 돌아왔다. 간단한 가방 하나 정도는 거뜬히 만들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큰맘 먹고 가방을 만들기 위한 실을 구매했다. 큰 작품을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다 실패하면 되돌아가고 이미 떠왔던 실들을 죽죽 풀기 일쑤였다. 인내심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화가 나는 것을 참고 또 참으며 ‘다른 일들은 왜 이제껏 참지 못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좀 더 넓은 마음을 가져야겠다는 생각만 무수히 반복했던 것 같다. 틈틈이 뜨개질하니 마침내 그럴듯한 가방이 완성되었다. 이리저리 거울을 바라다보며 차오르는 뿌듯함에 신이 났다.

내 것을 만들고 나니 주변 사람들에게도 뜨개질한 물건들을 선물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용기가 없어 말은 먼저 꺼내지 못하고 일단 사고 싶은 재료를 죄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이것저것 담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 것 같아 잠시 고민했지만 내 행복에 제동을 걸 수는 없는 법이었다. 도안들을 살펴보며 선물을 줄 사람을 떠올렸다. 그간 바쁘다는 핑계로 자주 보지 못한 가족과 친구들이며 지인들의 얼굴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나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관계에 대해서도 물음을 던지고 있던 것이었다.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욱 정성스럽게 예쁘게 만들어야 줄 수 있을 것만 같아졌다. 뜨개질에 걸리는 시간만큼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 길어져서 더 좋았다. 끊임없이 그 사람의 취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추억도 떠올리게 되었다. 하나하나 작품이 완성될 때마다 그 마음들이 속에 담겨 내 손에서 떠나보내기 아쉬울 정도였다.

우려와는 달리 선물 받은 모든 이들은 정말 기뻐했다. 내가 그 모습에 오히려 감동을 받아 솜씨에 한계가 있는 게 미안할 정도였다. 뜨개질을 계기로 만남 한 번 더 가지고 좋은 얘기 한 번 더 할 수 있다는 게 행복했다. 내가 엮은 그 시간들이 결국 나와 상대방을 더욱 가깝게 엮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뜨개질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아무리 뜨고 또 떠도 단 1cm조차 올라가지 않는 것 같던 적도 참 많았었는데 기다림 끝에 얻는 결실이라 그런지 더욱 행복하게 다가왔다.

고양이 일러스트

‘그냥’의 시간들이 사라졌다

그러나 뜨개질 하는 게 육체적으로 좋은 것만은 아니어서 손목에 무리가 왔다. 겨우 어렵던 패턴들과 기법을 익혔는데 쉬기는 너무 아까웠다. 나는 붕대를 감고 손목 보호대를 차고서도 뜨개질을 계속했다. 하지만 과욕은 화를 자초한다. 병원 신세가 되고 난 뒤에야 나는 뜨개질을 멈출 수 있었다. 시간이 너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손목치료를 받고 집에서 멍하니 앉아서 내가 만든 작품들을 바라다보았다. 그러다 나도 모르게 씨익 웃음이 났다. 더는 뜨개질을 못 한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제 이렇게 ‘그냥’ 앉아 있음에도 ‘그냥’의 시간들이 사라진 것이다.

오래전 대학 선배 한 명이 나에게 한 얘기가 있다. 누군가에게 잘살고 있냐고 물었을 때 ‘그냥’이라고 대답하면 ‘잘살고 있구나’하고 같이 웃음 지으면 된다고…. 우리는 뭐라고 덧붙일 말이 생각이 나지 않을 때 그냥이라고 한다. 나는 ‘그냥’을 참을 수 없었지만 어린 선배는 그것이 ‘아무것도 아님’이 아님을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나 보다.

난 오늘도 내가 뜬 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 다음호 KOGAS ESSAY의 주인공은 중앙통제보안처 계통운영부 권오덕 과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