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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겨도 괜찮아! 친환경·유기농 농산물 구독 플랫폼
<어글리어스 마켓> 최현주 대표
농산물이 시장이나 마트에서 판매되는 조건은 생각보다 까다롭다.
크기가 너무 작아도, 너무 커도 안 되고 조금만 상처가 나도, 빛깔이 적당하지 않아도 안 된다.
영양에는 아무 문제가 없지만 오직 못난 모양 때문에 상품가치를 잃는다.
<어글리어스 마켓>은 바로 이 못생긴 농산물의 소비를 촉진시켜 농가와 지구를 모두를 살리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드는 소비를 고민하면서 시작되었다.

글. 홍은희 사진. 김현희

오일장의 건강한 농산물은 어디로 갔을까?

어려서 아주 작은 농촌 마을에서 자란 어글리어스 최현주 대표는 어머니의 심부름으로 오일장에 자주 가곤 했다. 오일장에는 항상 다양한 모양과 크기의 농산물들이 가득했고, 그 익숙했던 풍경은 그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아있다. 그런데 어른이 되어 시장보다 더 자주 어디에서나 만나볼 수 있게 된 대형마트에서는 예쁘게 생긴 모든 채소와 과일들이 보기 좋게 포장되어 있었다. 오일장에서 볼 수 있었던 방금 흙을 털고 나온 듯 거칠고 투박한 감자도 당근도 찾아볼 수 없었다.

  • 180g 이상의 당근은 규격 농산물로 분류되어 시장에 출하되지만 그보다 작으면 안 되요. 반대로 250g 이상으로 너무 커도 포장이 어려울 수 있고, 뿌리가 두 갈래로 나서 모양이 못나도 제 값을 받지 못하죠.

    그렇다면 마트에 잘 정돈된 상품들 뒤에 그 기준에 부합하지 못해 버려지거나 유통되지 못한 농산물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못난이 농산물들이 시장으로 나가지 못하면 가공 업체에 헐값에 팔리거나 그마저도 안 되면 폐기가 돼요.농산물 폐기 과정에서는 이산화탄소가 발생되고, 폐수 오염까지 일으켜 환경에 악영향을 끼쳐요.”
    또 정성으로 키운 농가는 단지 모양 때문에 제값을 받지 못하니 농민의 손해도 크죠.

    태풍이나 장마 등 환경적 요인으로 못생긴 상품이 출하되기도 하지만 특히 이렇게 못생긴 농작물은 친환경 재배로 모양이 잘 안 나오는 경우가 많다. 만약 이런 이유로 농가가 해충을 줄이기 위해 친환경 농법을 포기하면 결국 소비자도 건강한 농산물을 만날 기회가 줄어드는 일이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이렇게 못생겨 버려지거나 헐값에 팔리는 농산물을 효과적으로 유통하는 일명 ‘푸드 리퍼브(Food Refurb)’가 새로운 식품 소비 트렌드로 먼저 자리 잡았다. ‘푸드 리퍼브(Food Refurb)’는 음식을 뜻하는 푸드(Food)와 재공급품을 의미하는 리퍼비시드(Refurbished)의 합성어다.
    지금 최현주 대표는 그 문화를 국내에서도 확산시키기 위해 나선 것이다. 어글리어스 마켓에서 정기구독을 신청하면 양에 따라 스탠다드 박스와 점보 박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고 1주, 2주, 3주로 배송 주기를 선택한다. 그리고 특정 채소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기호에 따라 배송을 원하지 않는 품목도 선택할 수 있다. 이렇게 소비자가 원하는 주기와 양과 취향으로 주문한 박스는 출고 2~3일 전 수확한 유기농·무농약 채소로 플라스틱 없이 포장되어 배송된다.

    집에 도착한 박스를 열면, 각 농산물의 생산지, 보관방법 그리고 이 농산물들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추천 레시피가 적힌 종이가 함께 들어있어요.
    소비자분들이 이런 경험이 좋다고 많이 말씀해주세요.

농산물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 행복한 경제 선순환

못난 농산물을 유통해보려는 시도를 최현주 대표만 한 것은 아니었다.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을 한 건 당연하게도 농민들이었다.

  • 농가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이 많았어요.
    직접 유통해보려고 노력도 많이 하셨지만 기존에 형성돼 있는 시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유통경로를 찾기도 어렵고, 못생긴 농산물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는 데도 어려움을 겪어 대부분 포기하셨던 거죠.
    그래서 저희가 처음 이 사업을 계획하고 농산물을 수급하기 위해 농가를 찾아다녔을 때 많은 분들이 회의적이었어요.
    약 3,000여 곳의 친환경 농가에 전화를 돌리고, 전국 방방곡곡에 있는 농가를 직접 찾아다니며 설득했죠.
    저희도 시작 단계에서 새로운 거래 기준, 거래 가격, 품질 관리 시스템을 갖추는 게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고요.

    이후 어글리어스가 소비자들을 조금씩 끌어 모으고 유통 경로를 확보하면서 농가에서도 조금씩 동참하기 시작했다. 농가 간 단단한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농가를 연결해주면서 보다 다양한 농산물을 취급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의 농산물은 도매상, 소매상 등 여러 유통 과정을 거치고, 마트에서도 팔릴 때까지 진열되어 있다가 소비자가 구매하는 과정을 거쳐죠.
    하지만 저희는 정기 배송일에 맞춰 2~3일 전에 수확된 것들을 보내드리기 때문에 받아보시면 한눈에 신선한 상품이라는 걸 아실 수 있어요.

    어글리어스를 통해 못난이 농산물을 알고 구독을 하는 소비자들도 아직 너무 못생긴 상품이 오면 놀라거나 품질이 떨어지는 건 아닌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유난히 모습이 안 좋게 출하되는 상품을 보낼 때는 꼭 맛과 영양에 문제가 없다는 안내문구를 더해 내보낸다고 한다.
    ‘친환경’이 일상 키워드가 된 요즘,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본 이들이라면 최현주 대표의 이야기에 다시 한 번 귀 기울여보자.

    어차피 소비할 채소라면 굳이 많은 포장에 싸여 가지런한 모양을 한 것들 말고 조금 못났더라도 건강한 땅에서 비바람을 이기고 자유롭게 자란 것들을 만나보시면 어떨까요? 어렵지 않게 일상 속에서 지구를 위한 행동을 실천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