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ch up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의
‘신 스틸러’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 문제가 화두에 오른 지금, 주목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의 문제에 있어 천연가스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신 스틸러가 되기 위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 본다.

글. 조영탁 한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최근 수년 사이에 에너지 문제가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모든 국가의 최우선 과제가 되고 있다. 그 핵심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탄소중립’과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안보’다. 새 정부의 에너지정책도 최근 확정된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력계획)에서 이러한 취지 하에 원전과 재생가능에너지에 주된 역할을 부여하고 수입연료이면서 탄소배출을 유발하는 석탄발전과 가스발전의 비중을 줄인 바 있다. 전술한 국내·외 에너지여건을 고려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판단된다.
다만 기우일지는 모르나 전력계획을 기반으로 하여 수립되는 장기천연가스수급계획(이하 가스계획)에 대해서는 다소 우려되는 점이 있다, 이번 전력계획에 따르면 현재 30% 내외의 가스발전량 비중이 2030년의 23%를 거쳐 십여 년 후인 2036년에는 9%대로 축소된다. 최근의 가스가격 폭등이나 물량확보 애로를 고려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나 불확실성에 대한 대비는 필요하다. 오랜 기간 가스발전이 여타 전원의 발전량 부족을 사후적으로 보충하는 대역을 하느라 발전용 물량이 큰 오차를 유발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강화로 천연가스 물량은 축소되더라도 그 변동성은 오히려 증폭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우선, 상대적으로 안정적 추세였던 도시가스용이 벙커링 및 수소차 등의 신규 요인으로 인해 불확실성이 커졌다. 발전용은 더 큰 불확실성이 예상된다. 먼저 전력수요 전망 자체가 이상기온(시스템 냉난방)과 에너지 전력화(전기차) 그리고 4차산업혁명(데이터센터 등)으로 인해 매우 불확실하다. 이는 예측기법의 개선만으로 해소될 수 없는 사안 자체의 불확실성이다. 전력공급 측면에서 최근 보급목표가 하향 조정되기는 했으나 재생가능에너지(특히 해상풍력 보급) 역시 불확실성이 크다. 신기술로서 수소와 암모니아 발전 역시 불안정한 공급원이고, 원전 계속운전도 사용후핵연료 문제 등의 애로요인을 안고 있다.
하지만 전력수요나 공급보다 더 큰 문제는 전력계통으로 원전이나 재생가능에너지가 계획대로 실현되더라도 계통건설 및 운영상 불확실성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원전은 물론 우리나라 재생가능에너지(태양광 및 해상풍력) 역시 장거리 송전망 의존도가 매우 높아 계통보강이 여의치 않으면 출력제한이 발생한다. 경직성 원전과 간헐성의 재생가능에너지로 인해 주파수, 전압, 계통관성 등 안정적인 계통운영에 필요한 유연성 설비도 관건이다.
이러한 수요 및 공급상 변동성과 계통제약 및 운영상 애로로 인해 발생하는 공백은 대부분 천연가스라는 대역의 몫이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전력계획과 현재 논의 중인 가스계획에 일말의 우려가 존재하는 이유다. 여타 에너지와 달리 천연가스 시장은 경직적인 중장기 계약형태이고 현물시장 역시 불안정성이 높다. 더구나 러시아 PNG를 대체하는 유럽의 LNG 수요로 인해 향후 수년간 국제수급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우리 여건상 상당 기간 천연가스를 사용할 수밖에 없고 수입 역시 불가피하다면 저탄소로서 천연가스의 안정적 수급은 탄소중립은 물론 에너지 안보에 매우 중요하다.

흔히 영화에서 주인공이 아니고 화면 분량은 적지만 주연을 돋보이게 하는 조연을 ‘신 스틸러(scene stealer)’라고 한다. 뻔한 ‘클리셰(cliche)’의 영화라도 조연의 감칠맛 나는 연기가 영화를 살리는 경우가 많다.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 시나리오상 원전과 재생에너지가 주인공이라 하더라도 전술한 바와 같이 천연가스라는 중요한 조연이 없이는 원활한 정책구현이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천연가스는 탄소중립과 에너지 안보의 신 스틸러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원전과 재생가능에너지라는 두 주연이 보여준 어색한 ‘오버 액션’을 생각하면 천연가스의 조연 역할은 더욱 중요해질 것 같다.
하지만 모든 영화에서 조연이라고 무조건 신 스틸러가 되는 것은 아니다. 천연가스가 그 역할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강건하고 유연한 임기응변을 갖추어야 한다. 그동안 가스업계가 도입선의 다변화, 계약기간 및 유형별 다양화, 물량계약상 다양한 옵션 확보 등으로 안정적 수급에 많은 기여를 했지만 앞으로 그 이상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우선, 전력계획의 가스발전량을 참고로 하면서도 새로운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수급관리 수요’의 산정기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향후 가스 수요의 변동성은 과거의 변동성 자료만으로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에 감사 논란을 유발했던 물량문제에 따른 안전장치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둘째, 불확실성이 발생 확률조차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을 시사하는 만큼 수급관리 물량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더구나 앞으로 전력계획이나 가스계획은 모두 확정적이고 실현가능성이 높은 계획이라기보다 다수의 시나리오 전망 중 하나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이러한 불확실성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은 제도상 유연성과 다양성을 높이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오랜 기간 논란이었던 직도입의 경우 비축의무 등 규제 강화와 전력도매시장의 입찰제도 개선하에 국내 거래를 유연화하는 것도 고려할 필만하다. 이는 도입 주체의 다양성과 물량거래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으로 과거와는 다른 불확실성에 직면한 KOGAS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셋째, 공정한 TPA는 물론 국내 가스거래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배관망의 중립적 운영이 중요하다. 물론 KOGAS가 최종공급의무를 지는 관계로 무차별적 배관망 이용에 제약조건이 있으나 이러한 제약하에 내부규칙에 따라 합리적으로 배관망을 운영해 왔다. 하지만 내부의 운영규칙과 그것이 외부의 신뢰를 얻는 것은 성격이 다른 문제다. 차제에 중립적 규제기관 혹은 위원회에 의한 배관망 운영규칙과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상의 불확실성 대응과정에서 가스산업계 내부의 이해관계가 다르고 여러 가지 애로사항도 존재한다. 하지만 불확실성이 증폭되는 시나리오에서 가스업계 전체가 신 스틸러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서로 머리를 맞대고 협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관객의 뇌리에 남는 영화에는 주연이 훌륭했던 경우도 있지만, 조연이 더 빛났던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