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et up

아득한 우주 저편에서
성큼 다가온 상상 속 세계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이준성 연구원
화성에도 사람이 살 수 있을까. 그저 상상에만 그칠 줄 알았던 이 질문이 언젠가 현실이 될 지도 모르겠다.
지난 5월 누리호가 궤도 진입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우주 산업화 시대가 열렸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고심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 현실판 승리호를 꿈꾸는 이준성 연구원을 만났다.

글. 조수빈 사진. 박재우 영상. 이덕재

화면 너머 신비로운 세계를 마주하다

어릴 적 우리에게 ‘우주’라는 곳은 상상 속에서나 가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우리는 화성의 로봇 마을, 소행성을 채굴 중인 탐사로버, 우주복을 입은 우주여행자 등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이준성 연구원이 처음 우주를 마주한 건 중학생 때 우연히 본 뉴스에서였다. 화성에 착륙한 마스 패스파인더(Mars Pathfinder)의 소식이 대대적으로 다뤄지고 있던 화면 속 탐사선의 모습은 상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미국 NASA의 Mars Pathfinder 착륙 개념도

착륙선이 무사히 행성에 도착한 후에는 높은 곳에서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안전하게 착지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풍선처럼 생긴 에어백에 둘러싸여 통통거리면서 착륙을 하더라고요. 낯설면서도 신기했어요.
‘왜 저렇게 떨어지는 거지?’ 호기심도 생겼고요.

그렇다고 해서 우주에 대한 원대한 꿈이나 로망이 생긴 것은 아니었다.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난 그는 상상 너머의 우주보다 눈 앞에 펼쳐진 논밭 풍경이 익숙했던 데다, 엔지니어로 일하던 아버지 밑에서 자랐기에 훗날의 자신도 막연히 어떤 분야의 기술자가 될 줄만 알았다. 하지만 수험생 시절 들려온 항공우주산업의 희소식이 그의 마음을 또다시 흔들어 놓았다. “대학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에 우리나라 최초의 액체로켓엔진 발사체인 KSR-Ⅲ 발사, 초음속 고등훈련기인 T-50 초도 비행 등 경사스러운 소식이 연달아 터지더라고요. 항공우주산업의 성장 가능성을 보고, 항공우주공학과로 진학하게 되었어요.” 어릴 적 뉴스로 보았던 탐사선 착륙 장면부터 고민 많던 시기에 알게 된 한국 우주항공산업의 비전까지. 어쩌면 그를 이곳으로 당긴 건 우주가 먼저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구원으로서의 첫 임무, 누리호

  • 지난 5월 25일 긴장과 설렘이 감돌던 전남 고흥의 나로우주센터에서 비로소 환호가 터져 나왔다. 모두의 관심 속 누리호 3차 발사가 성공적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우주 강국의 대열에 당당히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사람들의 환호가 향한 곳에 이준성 연구원도 함께 있었다. “2013년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 들어온 후 곧장 누리호 개발 프로젝트에 투입되었어요. 그중에서도 추진제 탱크 개발을 맡게 되었죠. 추진제 탱크는 추진제를 보관하는 역할을 하는 데다 발사체에 들어가는 부품 중 크기가 가장 커요. 게다가 알루미늄 소재를 활용해야 해서 작업 난이도도 높은 편입니다.”
    이번 누리호 발사에 특히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졸였는데, 그 이유는 30년 만에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된 첫 발사체였기 때문이다.

    누리호 이전에는 위성을 띄우기 위해 외국에 위성을 싣고 나가서 발사해야 했어요.
    비용적인 면은 물론 외교 관계에도 크게 영향을 받았죠.
    이처럼 항공우주산업은 경제, 안보 등 국가 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에
    미국 같은 경우는 관련 기술을 철저히 보호하고 있어요.
    이번 누리호 발사 성공으로 인해 한국도 드디어 발사의 자주성을 갖게 되었죠.

    위성을 자력으로 발사할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유럽의 경우에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의 국가가 공동으로 개발해 운영하고 있다. 그렇기에 누리호 발사 성공의 의미는 특별하다. 그 과정에 함께해 온 사람으로서 그는 어떤 마음으로 발사를 지켜보았을까.
    “발사하는 순간은 매우 짧아요. 그 찰나에 동고동락했던 동료들과 6년의 지난했던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치더라고요. 성공 소식을 듣고도 멍했어요. ‘정말 성공한 걸까?’ 현실감이 없었죠. 사실 저는 1차 발사 때까지만 프로젝트를 함께 했거든요. 2, 3차 발사에는 함께하지 못했다는 미안함이 조금 더 컸어요.”

우주에 꿈을 실어 보내는 일

현재 이 연구원은 소형 발사체 연구에 매진 중이다. 2018년 누리호 시험 발사 당시 소형 발사체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1.5톤 정도의 위성을 탑재할 수 있는 누리호와 달리 소형 위성 발사에 대한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서이다. 이날 이 연구원을 만난 금산군 추부면에서 시험 발사를 목전에 둔 소형 발사체를 볼 수 있었다. 이름이 아직 붙여지지 않은 이 발사체는 수직이착륙을 목표로 하고 있다. 100m 정도 이륙한 후 다시 수직으로 내려오는 단순한 과정이지만, 이를 위해서는 엔진을 조절해 다시 복귀시키는 기술이 필요하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경험이 많지 않은 기술이기에 대형 발사체에 도입하기 전, 소형 발사체로 기능을 완벽하게 갖추는 것이 우선이란다. 또 하나 누리호와의 차이점은 액체산소와 액화천연가스를 연료로 사용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는 액체산소와 케로신이라는 항공용 등유를 많이 사용해요.
그런데 케로신을 사용하면 발사 후 검댕이 많이 남고, 엔진 내부에도 그을음이 생기죠.
그래서 소형 발사체에는 케로신 대신 활용가치와 지속가능성이 높은 액화천연가스를 활용하고 있어요.
사실 성능만으로 따지자면 액체수소가 가장 좋아요. 연소 후에도 물만 남거든요.
하지만 폭발성이 커서 사고율이 높기에 케로신과 액체수소의 중간지점인 액화천연가스를 선택했어요.

누리호 발사 성공 이후 우리는 우주시대에 한 발 가까워졌다. ‘우주경제’ ‘뉴스페이스’ 등의 단어가 등장한 것도 상상에서 그치던 일이 조금씩 현실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연구원의 말에 따르면 쿠팡의 로켓배송이 진짜 ‘로켓’ 배송이 될지도 모르겠단다.

우주는 영토의 확장이에요. 넷플릭스 시리즈 <승리호>를 보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구와 우주를 오가잖아요.
우리도 이제 위성 발사체를 갖게 되었으니 우주 탐사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승리호>의 현실화를 꿈꿔도 되지 않을까요?

누리호 1차 발사 이후 소형 발사체에 매진한 지 올해로 4년이 되었다는 그는 항공우주 연구원으로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곧 생길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그의 시선 끝에 발사를 위한 막바지 준비가 한창인 ‘이름 없는’ 발사체가 닿았다. 그리고 그 시선 너머로 벌써부터 별빛 찬란한 우주가 펼쳐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