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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로 인해 마음을 다치지 않으려면 알아둬야 할 것들

거짓말로 인해
마음을 다치지
않으려면
알아둬야 할 것들

[글 정두영 UNIST 바이오메디컬공학과 교수]

편집자로부터 6월호의 전체 주제가 ‘신뢰’이기 때문에 ‘거짓말’에 대한 칼럼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사회에 가짜뉴스가 늘고,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게 되니 거짓말을 판별해주는 원리나 기계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정신과 의사는 속은 것 같다며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됩니다. 만약 경찰에서 쓰는 거짓말탐지기를 일상 대화에 사용할 수 있으면, 거짓말로부터 받는 상처를 예방할 수 있을까요?

거짓말탐지기의 원리는 거짓말을 하는 동안 불안과 긴장으로 인해 신체의 생리적 변화가 생기는 것을 기계로 읽어내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한계가 있기에 법원에서도 증거로 활용되지 못하고 참고가 될 뿐입니다. 생리 반응은 개인마다 다르니 누군가는 진실을 말하면서도 긴장해서 거짓말로 표시되고, 특수 훈련을 받은 사람이라면 거짓말을 하면서도 생리 반응이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 훈련을 받지 않더라도 자신이 거짓을 진실로 착각하고 있다면 거짓말탐지기는 반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억의 왜곡

1990년대 미국에서 무자격 상담사들에게 상담을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부모가 어린 시절에 자신을 성폭행했다며 소송을 거는 일들이 생겼습니다. 이런 상담은 자신의 현재의 문제를 잘 기억나지 않는 과거와 연결이 있을 것이라고 암시하며 반복해서 성폭행을 당한 기억에 대해 묻습니다. 내담자가 약간이라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 힘들었겠다고 위로하고,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하면 너무 힘든 경험을 해서 억누르고 있느라 지금도 힘든 것 같다고 위로해줍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가짜 기억이 만들어지고 부모에게 소송을 걸기까지 합니다. 만약 이 환자에게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왔을까요? 스스로 확신을 하고 있으므로 진실을 이야기한다는 생리적 반응이 나왔을 것입니다.

가짜 기억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범죄와 기억에 대한 전문가인 엘리자베스 로프터스 교수는 여러 실험을 고안했습니다. 교차로에서 정지 표지판 앞에 서 있는 차를 찍은 사진을 보게 된 사람들이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 교묘하게 숨겨진 암시에 의해 양보 표지판을 본 것으로 기억을 왜곡합니다. 복잡한 사건이 마치 실제로 일어났던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실험을 통해 어린이에게 ‘네가 어렸을 때 쇼핑몰에서 부모를 잃고 헤매고 있었는데 낯선 사람의 친절한 도움으로 부모에게 돌아올 수 있었다’라는 기억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이런 실험들을 통해 기억만으로 진실과 거짓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지목되어 감옥에 있는 동안 진범이 또 다른 범죄로 잡혀서 진실이 밝혀지는 경우를 간혹 접하게 됩니다. 목격자가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이 왜 거짓말을 할까?’라는 거대한 질문을 일부분 설명해줍니다. 자신에게는 진실이기 때문에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궁금한 일러스트
과대평가

앞의 이야기가 기억에 대한 왜곡이라면 이번에는 과대평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사회심리학 이론 중에 더닝 크루거 효과라는 것이 있습니다. 어떤 분야에 대해 조금 알기 시작했을 때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되는데 신입사원이 비슷한 것을 해봤는데 어렵지 않았다며 자신을 믿고 맡겨달라고 호기롭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비해 전문가는 자신의 능력보다도 더 신중한 태도를 보입니다. 중학생 자녀가 게임방에서 친구들을 좀 이겨 본 것에 우쭐해서 마음만 먹으면 고연봉을 받는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으니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할 때 부모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회사에서 퇴직한 남편이 특별한 사업 경험도 없이 맛집을 다녀봐서 잘 안다며 충분한 준비도 없이 음식점을 차리겠다고 한다면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말을 믿었는데 처음에는 열정을 보이다가 금방 지치는 모습을 보게 되면 상대에게 속았다고 느낄지도 모릅니다.

정신과 의사들은 비슷한 경험을 자주 합니다. 알코올 중독 환자가 입원치료를 받는 중에 퇴원을 하고 싶은 마음만으로 조기퇴원을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도 함께 작용합니다. 중독의 치료가 쉽지 않은 것을 알기에 주치의는 입원 환경이 답답할 수 있음을 공감해주고 자신의 조절 능력을 과신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며 치료프로그램을 완료하도록 격려합니다. 외박을 통해 유혹이 많은 바깥세상에서도 금주를 유지할 수 있는지 검토하면서 퇴원을 준비하고 가까운 시일에 외래로 방문해서 또 점검을 합니다. 초심자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할 수 있으니 하나씩 단계를 밟아가는 것이죠. 앞에서 이야기한 신입사원, 중학생, 퇴직자의 경우도 비슷하게 바라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조금씩 시도해보는 것이죠. 잘 되지 않더라도 실망이 크지 않도록 조금씩 말입니다. 노력하는 모습을 응원하면서요.

선의의 거짓말과 친사회성

앞의 예시들은 말하는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신뢰를 잃어버리는 상황일 것입니다. 이와 다르게 우리는 일상을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해 알면서도 거짓말을 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새 옷을 사서 즐거워하는 사람에게 친밀하지 않는 관계라면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인간에게 상대의 마음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능력은 생후 4~5세가 되면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자폐 아동들은 이 능력이 약합니다. 이 환자들의 말과 행동이 또래보다 더 순수하고 어려 보이는 것은 사회적인 상황에서 상대의 의도에 따라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혼자서는 힘센 동물들과 경쟁하기 어려웠던 인간은 집단생활을 하면서 언어를 발달시키고 이와 함께 상대의 의도를 파악하는 능력을 키워왔던 것 같습니다. 집단을 잘 유지하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우리는 이 능력을 이용하여 기분을 망치지 않도록 거짓말을 합니다.

하지만 관계가 나빠질 것을 알면서도 진실을 이야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기 암환자에게 여명을 이야기해야 하는 순간을 생각해봅시다. 의사는 환자가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면서도 동시에 환자의 슬픔에 공감해줘야 합니다.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암환자의 가족은 혹시나 환자의 의지를 꺾는 것이 아닐까 속상해 하면서 기적의 만병통치약을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돌팔이 약장수의 가짜 약은 돈을 벌기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낸 거짓말일 수도 있고, 우연히 병이 나아 자신도 치료제라고 믿으며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예후가 좋지 않다는 말이 고통스럽지만 의사는 현재의 기분만을 생각해서 거짓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속상한 일러스트
정신과 진료실에서

정신과 진단명 중에도 거짓말과 관련된 병들이 있습니다. 꾀병과 가장성장애가 대표적입니다. 꾀병은 어떤 이득을 목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경우이고, 가장성장애는 뚜렷한 목적이 없이 증상을 만들어내는 경우입니다. 비슷하게 성격장애 환자들도 반복적으로 거짓말을 합니다. 자기애성 성격장애 환자는 자신이 우위에 있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과장을 반복하는 연극성 성격장애 환자나 정서가 불안정한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도 성격으로 인해 거짓말을 자주 합니다. 이런 사람들과 함께 있게 되는 사람은 고통을 겪습니다. 그런데 워낙 반복되는 일이다보니 이미 신뢰를 잃어버린 상태이기 때문에 한 번의 거짓말로 인한 고통은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런 환자가 아닌 경우에도 상대가 나를 속였다고 느껴 신뢰가 무너지는 경험을 합니다. 기억의 왜곡에 의해, 과대평가에 의해,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에 의해 이런 일들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인간의 불완전함에 의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만약 중요한 약속이라면 측정 가능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약속을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