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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愛온도

과연 우리는 냉장고를 제대로 사용하고 있을까? 넣지 말아야 할것들까지 모두 냉장고에 밀어 넣고, 한참 지난 뒤에야 먹지 못할 음식이 된 그것들을 쓰레기통에 쏟아버리며 종종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는지 생각해보자. 냉장고에만 의지해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에 문제의식을 느껴, 냉장고가 없던 시절의 보관법을 찾아 세계 곳곳을 누빈 디자이너가 있다. 그녀는 긴 여정의 기록을 [사람의 부엌]이라는 한 권의 책에 담아냈다. 유럽에서 활동하는 공공디자이너 류지현작가의 이야기다. 앞선 물음에 변변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면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글 김승희 사진 제공 류지현]



류지현 디자이너는
이탈리아와 네덜란드를 거점으로 활동 중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이론을 공부한 뒤 네덜란드 디자인 아카데미 아인트호벤에서 Man&Humanity 과정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09년 석사 졸업 작품으로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해 내자Save food from the fridge] 프로젝트를 디자인으로 구현한 '지식의 선반 knowledge shelves'을 선보여 디자인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왔다. 이후 TED 강연 등을 통해 본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한 자신의 생각을 전파해오고 있으며, 2012년부터 이탈리아 및 네덜란드 농가 지역을 시작으로 세계 곳곳의 부엌과 텃밭을 찾아다녔고, 그 기록을 첫 책 ≪사람의 부엌≫에 담았다.

  • Q
  • 평소 아무렇지 않게 써오던 냉장고에 문제의식을 갖기란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아요.
  • A
  • 너무 익숙한 물건이라 본디 거기 있어야 하는 걸로 여기니까요. 물론 저도 냉장고를 없애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냉장고라는 전자제품에 의지하기보다 자신의 뜻대로 냉장고를 이용하고 부엌의 주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아직 세상에 존재하는 보관 방법을 찾아 나섰어요. 냉장고의 역사는 채 100년도 되지 않아요. 그런 냉장고로 인해, 어린 시절 할머니로부터 보고 자란 보관의 지혜가 사라져가고 있는 게 안타까웠거든요. 애써 터득한 삶의 지혜지만 냉장고가 있으니까 굳이 그 방대한 지식을 후대에 넘겨줘야 할 필요성을 못 느낀 거죠. 또 후대들은 냉장고 없이 살아본 적이 없으니 당연히 모든 식재료를 냉장고에 넣으면 된다고 생각하고요. 하지만 맞지 않는 보관법으로 식재료를 다루면 그만큼 불필요하게 버려지는 양도 늘게 돼요. 음식물 쓰레기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소통의 단절'이라는 또 다른 문제가 있어요. 대가족 사회에서 핵가족 사회로 넘어가는 과정은 냉장고가 생활 중심으로 자리하게 된 과정과 궤를 같이 하거든요. 이 과정에서 식재료에 관한 교육도 소통 창구의 부재로 맥이 끊기게 된 거죠.
  • Q
  • 직접 디자인한 '지식의 선반'이 그런 문제의식의 결과물 중 하나인가요?
  • A
  • 맞아요. 많은 이야기들을 선반이라는 형태로 만든 거죠. 냉장고는 열어보지 않으면 안에 뭐가 있는지 알 수 없고 뭘 넣었는지조차 잊어버리게 되지만, 눈에 보이는 곳에 보관하면 주체적으로 식재료를 쓸 수 있어요. '지식의 선반'을 사용하려면 먼저 식재료 보관법을 알아야 하는데, 그렇게 학습한 걸 식구나 집에 온 친구들에게 설명해 주면서 지식이 확산되고 그 자체가 소통의 구실이 되는 거죠.

  • Q
  • 간단히 실천해볼 수 있는 식재료 보관법 하나만 추천해주세요.
  • A
  • 양배추는 밑동 부분만 물에 담가두고, 사용할 때는 칼로 자르지 않고 바깥 잎부터 한 겹씩 떼어 내서 사용하면 2~3개월은 거뜬히가요. 주의할 점은 양배추가 물에 완전히 잠기면 썩으니까 반드시 밑동만 물이 닿게 해야 돼요. 이런 지식을 발견했을 때 물건으로 만드는 게 적합한지 다른 방식으로 풀어도 가능한지를 판단해요. 양배추는 무게나 크기에 따라서 일반 접시를 사용하면 뒤집히기도 하고 물을 얼마나 부어야 할지 고민되거든요. 그래서 양배추 그릇을 제품으로 디자인했어요.

  • Q
  • 과거 [슈퍼마켓으로부터 음식을 구하자]라는 전시도 진행하셨는데, 어떤 취지를 담고 있나요?
  • A
  • 지금 마트에서 볼 수 있는 채소들은 유통 구조에 맞게 선별된 것들이에요. 유통이 까다롭거나 모양이 이상한 식재료들은 없어지고, 그 과정에서 우리 전통 채소나 자연적으로 생겨난 식재료들이 걸러지는 거죠. 대형 유통 시스템도 냉장시설에 기반을 두고 발달했어요. 덩달아 도시도 커졌고요. 냉장시설이 없을 때는 음식물 보관기간이 짧아 농장이 주변에 있어야 하니까 도시 규모가 커지기에는 한계가 있었는데, 냉장 시스템으로 배송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되면서 농장이 밖으로 밀려나고 도시 형태가 변화된 거죠. 이런 시스템 안에서 버려지는 식재료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어요. 식물일 때는 어떻고 저장할 때는 어떻고 어떤 방식으로 요리하는지 알리는 모바일 전시였어요.

  • Q
  • 소비사회와 더 어울릴 법한 '디자인'의 역할이 좀 더 확장된 느낌이네요.
  • A
  • 디자인이 소비사회에 맞는 것이라면 그 속성이 실생활에 깊숙이 들어갈 수 있는 힘이 있어서 일거예요. 빨리 소비되게 만들 수 있는 반면, 더 건강한 삶의 방식을 제공할 때에도 똑같은 힘으로 그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게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 Q
  • [사람의 부엌]이라는 책을 내고, 저자 특강을 통해 국내 독자들과 만나 다양한 의견을 나누셨는데요. 당시 느끼신 점이 있다면요.
  • A
  • 먼저 한국 분들의 열정에 놀랐어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셨고 문제의식을 공유하셨어요. 환경문제에 대한 고민 안에서 하나의 실천 방식으로 냉장고 사용에 대해 의문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 Q
  • 현재는 어떤 작업을 하고 계세요?
  • A
  • 냉장고로부터 식재료를 구하라(save food from the fridge) 프로젝트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기회가 닿는대로 농장이나 부엌도 계속 방문하고 있고, 제품들도 좀 더 업그레이드된 형태로 제작하고 있어요. 가장 최근에는 바르셀로나 공대와 바르셀로나 건축학교가 공동으로 제작하고 있는 친환경 하우스가 있는데요. 그부엌 안에 들어가는 저장고 선반들을 디자인했어요. 그리고 두 번째 책을 준비 중에 있습니다. [사람의 부엌]이 프로젝트 전반의 철학과 리서치에 중점을 두고 있다면, 이번 책은 실용서로 실제 제가 제 부엌에서 실천하고 있는 음식 보관의 방법을 소개합니다.
  • Q
  •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디자인 활동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세요.
  • A
  • 오랜 바람이기도 한데, 기업과 공동으로 냉장시설과 '지식의 선반'이 공존하는 제3의 보관 제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이렇게 디자인을 통해 지식이 우리 삶에 조금씩 파고 들다보면 그동안 잊고 있던 인간 본연의 자생력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해요.
  • Q
  • 유럽에서 활동해오고 계신 만큼, 국내 [KOGAS] 독자들에게 전할 만한 현지의 환경 캠페인이나 환경 의식 등을 소개해주세요.
  • A
  • 현재 거주 중인 이탈리아의 경우, 어떤 면에서는 한국 보다 눈에 띄는 환경 운동이나 활동은 적어 보이지만, 일상을 들여다보면 환경에 대한 생각은 생활 속에 배어있는 느낌이에요. 우선 식당에 가서 음식을 남기는 것을 기본적으로 좋지 않게 봐요. 요리를 만든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혹시라도 배가 너무 불러 못먹으면 웨이터에게 미안하다고 할 정도니까요. 때로 이탈리아 식당에서 한국 분들이 음식을 아무렇지 않게 남기면 식당 직원 분들이 당황해하기도 해요. 여기도 슬슬 더워지고 있는데, 에어컨은 둘째 치고, 아직도 선풍기가 없는 집도 많아요. 올여름은 또 얼마나 더울지 이웃들과 이야기하고 서로 고민하는데, 그때 선풍기나 에어컨을 장만하라고 하면 자주 듣는 대답이 "일 년에 한 달쯤 매우 더운 건데, 뭘 그런 것까지 하느냐"예요. 이탈리아는 8월에 많은 회사들이 휴가를 갑니다. 너무 더울 때는 다 같이 쉬는 게 낫다는 거죠. 한국과는 다른 접근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류지현 디자이너의 추천작

도서 [사람의 부엌]

  • 저자 : 류지현
  • 출판사 : 낮은산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해내자(save food from the fridge) 프로젝트의 철학과 리서치를 담은 책이다. 프로젝트의 시작부터 냉장고 없이 음식재료를 보관하는 농장이나 부엌들을 소개한다. 음식 보관 지식뿐만 아니라 여러문화권에서 만났던 다양한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도서 [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 저자 :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 출판사 : 중앙북스

전통적인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생태학적 균형과 사회의 조화를 유지해 오던 라다크가 근대화와 함께 겪는 변화 또는 문제를 보여준다. 류지현 작가는 이 책을 '현재는 과거보다 더 나은 미래가 아니라 다른 것뿐이라는 배움을 얻게 된 책'이라 소개한다.

다큐멘터리 [태양이 없는 세계(world without sun)자크 쿠스토]

웨스 앤더슨의 영화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 생활'의 모델이 된 프랑스 다큐멘터리다. 5~60년대라 생각하지 못 할 만큼 실험과 관찰이 흥미롭다. 유튜브를 통해 무료로 감상할 수 있으니 여름 더위도 식힐 겸 시리즈를 찾아 볼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