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CH KOGAS

home TOUCH KOGAS 36.5℃ 심리학

url 복사 인쇄하기

36.5℃ 심리학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만  더 격하게 쉬고 싶다

'예약을 취소하시겠습니까? 확인을 누르면 예약하신 내역이 완전히 취소됩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어떻게 예약한 최저가 비행기 티켓인데…. 작년 겨울, 새벽에 진행된 저가 항공사 깜짝 특가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밤새 기다렸다가 번개 같은 클릭으로 쟁취한 유럽행 왕복 항공권. 예약 날짜에 휴가를 맞추려고 어떻게든 업무 일정을 맞추리라 다짐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취소하게 될 줄 꿈에도 몰랐다. 씁쓸한 표정으로 컴퓨터 모니터의 취소 확인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데, 옆자리 동료가 묻는다. "올해 휴가 일정 결정하셨어요?" 날씨는 점점 더워지고 있지만 코로나19는 2020년의 상반기를 거의 다 집어삼키고도 아직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상반기 내내 아무것도 못하고 집에서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낸 기분이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 휴식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코로나19로 인한 우울과 불안을 달랠 마음의 휴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포스트 코로나의 시대, 휴식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는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글 유지현 (진화인류학자)]



쉼의 중요성

휴식이란 분노, 불안, 공포 등의 각성이 없는 낮은 긴장 상태의 정서다. 우리가 긴장과 각성 상태에 있을 때 우리 몸의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이러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몸에 피로가 쌓인다. 집중해서 일을 하는 동안 우리 몸은 신체적 에너지나 인지적 주의력을 사용하기 때문에 소모된 에너지를 다시 재충전하는 과정, 즉 휴식이 필요하다. 이를 노력-회복(effort-recovery) 이론이라고 한다. 이와 관련해 학생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어 실험한 결과가 있다.

한 집단은 주의 집중이 필요한 첫 번째 과제에 이어서 동일한 주의 집중 과제를 계속 수행했고, 두 번째 집단은 첫 번째 과제와 다른 유형의 두 번째 과제를 수행했다. 마지막 세 번째 집단은 나머지 두 집단과 달리 첫 번째 주의 과제 후 두 번째 과제 대신 휴식을 취했다. 이후에 세 집단 모두 첫 번째 과제와 동일한 유형의 과제를 수행했다. 결과적으로 휴식을 취했던 세 번째 집단이 마지막 단계의 과제 수행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했다. 또 새로운 내용을 배운 뒤에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기억력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쉼의 중요성

휴식이 뇌가 새로운 정보를 접한 후, 잠시 뒤에 그 정보가 다시 생각나는 '재활성화' 과정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가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진화한 특징이라는 주장도 있다. 우리 조상들이 살던 척박한 환경에서는 에너지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도 유용한 형질이라는 것이다. 어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잘 쉬는 것도 중요하다.

휴식에도 계획이 필요해

연초에 한 해를 시작하는 계획을 세울 때, 항상 그해 휴가 계획도 함께 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업무 성격에 따라서 일찍 일정을 확정할 수 없는 경우도 있겠지만, 최소한 며칠 동안 휴가를 갈 것이며, 어떻게 보낼지 정도라도 계획해 놓는 것은 꽤 괜찮은 방법이다. 한 번 휴가를 계획해 놓으면 그전까지 마무리해야 할 업무를 마쳐놓고 휴가 동안 푹 휴식을 취하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 이러한 마음은 업무에 대한 몰입도를 높이고 업무에 더 에너지를 쏟을 수 있게 한다. 또, 잘 계획된 휴가를 통해 양질의 휴식을 취하고 돌아와 다시 한 해의 계획을 달성하기 위한 힘을 얻기도 한다.

한 해 동안의 휴식 계획과 마찬가지로 일상에서도 적극적인 휴식 계획이 필요하다. 우리 뇌는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끊임없이 어떤 일에 열중해 있으면 뇌는 곧 창의력과 자기인식, 안정감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심각한 경우에 심혈관계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 인지과학자 앤드류 스마트는 "뇌가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휴식을 취해야 하며, 그것도 자주 쉬어 주어야 한다"고 했다. 사람의 뇌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90분에서 최대 120분이다. 따라서 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90분의 집중 활동과 20분의 휴식으로 일과를 계획하는 것이 좋다.

'1만 시간의 법칙'으로 유명한 베를린 음악학교 학생들에 대한 연구에서 최상급 바이올리니스트들은 20세 전까지 1만 시간 이상 연습했을 뿐만 아니라, 이들은 집중적인 연습 사이에 정교하게 계획된 휴식 시간을 보냈다.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매일 정확하게 같은 시간에 산책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마을 사람들이 칸트가 다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시계 바늘을 고쳤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아마 그의 산책 시간 역시 매우 정교하게 계획된 의도적 휴식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휴식과 창의적 사고

위대한 발견이 잠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안 이뤄졌다는 일화는 흔히 들어보았을 것이다. 아르키메데스가 왕의 금관 속에 은이 섞여 있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생각해낸 부력의 원리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라고도 불린다. 아르키메데스가 부력의 원리를 발견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왕의 명령으로 금관을 망가뜨리지 않은 채로 은의 함량을 알아내기 위해 몇 날 며칠을 고뇌하던 그는 잠시 쉬며 목욕을 하다가 부력의 원리를 발견하고 너무 흥분한 나머지 "유레카(알았다)!"를 외치며 벌거벗은 몸으로 밖으로 뛰어나왔다고 한다.

아르키메데스 정도는 아니더라도 우리도 일상에서 어려운 문제로 끙끙 앓다가 잠시 고민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고 있을 때 좋은 묘안이 떠오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는 우리 뇌 속에 있는 '휴지상태 신경망(default mode network)' 때문이다. 이는 편안히 휴식을 취하거나 잠을 자는 동안 활성화되는 신경망인데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을 때는 활성화되지 않는다. 외부의 압박 없이 우리에게 맞는 속도로 자유롭게 사고할 수 있을 때 뇌는 그동안 경험했던 새로운 지식의 기억을 강화하고 자유롭게 연결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낸다.

휴식과 창의적 사고

실제로 자기공명영상(fMRI)을 이용해 확인해본 결과 '휴지상태 신경망'이 많이 활성화될수록 창의성이 강하게 나타났다.창의성에 필요한 다양하고 발산적인 사고와 무의식적이고 통제되지 않은 사고 과정이 관련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별한 목적 없이 걸을 때도 이 휴지상태 신경망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그리고 실내 걷기보다 다양한 외부 자극들이 뇌를 자극하는 산책은 무의식적 사고와 의식적 사고를 적절히 활성화시켜 이를 극대화할 수 있다. 이미 철학자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던 듯하다.

철학자와 산책, '철학자의 길'

철학자와 산책, '철학자의 길'

전문가들은 가장 효과적인 휴식 방법으로 산책을 추천한다. 적당한 산책은 신체적 에너지를 회복시켜줄 뿐만 아니라, 창의성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한 연구에서 사람들을 세 집단으로 나누어 첫 번째 집단은 밖에서 산책하기, 두 번째 집단은 실내에서 러닝머신을 이용해 걷기, 그리고 마지막 집단은 책상에 계속 앉아있도록 한 후 창의성이 필요한 과제를 주었다. 결과는 밖에서 산책했던 첫 번째 집단의 창의성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리고 실내 걷기를 한 집단이 그다음으로 창의성 점수가 높았다. 책상에 앉아만 있던 집단은 창의성이 가장 낮게 나타났다.

걷기, 특히 산책은 자유로운 아이디어의 흐름을 열어 주며 창의성을 높일 수 있는 가장 간단하고 강력한 방법이다. 칸트 이외에도 산책을 즐겼던 철학자들이 많다. 관념론의 창시자 플라톤이나 그의 제자이자 논리학을 창건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산책학파'라고 불릴 정도로 산책을 즐겼다고 한다. 수많은 철학자를 배출한 독일 하이델베르크에는 '철학자의 길'이라는 유명한 산책코스가 있다. 괴테, 헤겔, 막스 베버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이 이 길 위에서 사색에 잠겼다.

우리나라에서는 칸트도 이 길을 걸었다고 잘못 알려져 있는데, 아마도 칸트가 살던 쾨니히스베르크에 있는 '철학자의 길'과 이름이 같아서 그런 듯하다. 아무튼 철학자들이 산책을 사랑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진화론과 자연선택을 발견한 찰스 다윈의 집 근처에도 '사색의 길'이 있다. 다윈은 이 400m 정도의 산책로를 매일 세 번씩 시간을 정해놓고 돌았다.

'한가로운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산이다'

소크라테스가 한 말이다. '너 자신을 알라'는 그의 유명한 철학적 사유도 한가로운 시간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기에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잘 쉬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긴 휴가를 내고 멀리 떠나야만 좋은 휴식은 아니다. 오히려 새로운 지역에 가서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싶은 욕심에 너무 바쁜 일정으로 짜인 여행은 휴식이라기보다 또 다른 노동이다. 업무에 지친 몸을 쉬러 떠났다가 여행에 더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강도 높은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면 이는 즐거운 경험일 수는 있어도 진정한 휴식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철학자들처럼 사색을 즐기기 위해, 산책과 휴식의 효과를 누리기 위해 꼭 독일행 왕복 항공권을 끊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그저 집 근처에 걷기 좋은 길을 걸었을 뿐이다. 올해 휴가는 일상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으로 계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일상에 쉼표를 찍는 영화 셋

툴리

매일 같이 독박육아로 두 아이와 전쟁을 치르는 마를로. 그렇지 않아도 일상이 벅찬 그녀에게 또 다시 임신 소식이 찾아온다. 남편은 도와주지 않고 피로는 점점 쌓여가던 그때 친오빠가 보모를 들일 것을 권한다. 남의 손에 아이를 맡기는 것이 껄끄러웠지만 셋째까지 태어나고 한계에 다다른 마를로는 고민 끝에 '툴리'라는 이름의 야간 보모를 부르게 된다. 마치 가족처럼 아이들과 마를로까지 돌봐주는 툴리의 등장으로 그녀의 삶은 조금씩 활기를 되찾아 가는데….

툴리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라이프' 잡지사에서 16년째 근무 중인 월터 미티. 특별한 일을 해본 적도 없고, 멀리 여행 한 번 가본 적 없이 반복되는 일상을 사는 네거티브 필름 인화가인 그는 때때로 상상을 통해 일상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날 뿐이다. 그러던 그의 삶이 폐간을 앞둔 '라이프'지의 마지막 호 표지 사진을 찾아와야 하는 미션으로 큰 변화를 맞이한다. 사진을 찾아 그린란드와 아이슬란드 등을 넘나들며 평소 자신의 상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어드벤처를 시작한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꾸뻬씨의 행복여행

매일 우울해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런던의 정신과 의사 헥터. 평소처럼 환자들을 진찰하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진정한 행복이란 무엇인지 그 답을 찾기 위해 훌쩍 여행을 떠난다. 그는 여행길에서 행복의 비밀을 알고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만나며 행복에 다가가기 위한 배움의 문장들을 하나씩 채워간다. 다양한 삶과 마주한 여행의 순간들 속에서 그는 진정한 행복의 답을 찾았을까

꾸뻬씨의 행복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