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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심리학

가족의 기원

우리나라의 1인 가구 수가 600만 가구를 넘어 전체 가구의 3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1인 가구를 '1인 가족'으로 부르지 않는 걸 보면 가족은 최소 2인 이상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로, 생활을 함께 공유하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현대 가족의 형태는 워낙 다양하지만, 가족 내 관계는 크게 부모·자식의 혈연관계와 부부로 이뤄진 인연관계로 나눌 수 있다. 전통적인 대가족뿐만 아니라 산업사회의 핵가족에서도 최근까지는 비교적 한 가족 내에 두 가지 관계가 모두 존재해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자녀 없이 부부 두 사람만으로 이뤄진 가족이나, 어머니나 아버지 둘 중 한 부모와 자녀로만 이뤄진 가족도 늘고 있다. 과연 인류 최후의 핵가족 형태는 부부관계가 될지 부모-자녀관계가 될지 자못 궁금하다. 그런데 인류 최초의 가족은 어떤 가족이었을까?

[글 유지현 (진화인류학자)]



인류 최초의 가족

아프리카 탄자니아 라에톨리 지역에서 360만 년 전 초기, 인류의 조상인 '호미닌'의 발자국 화석이 발견되었다. 화산재와 빗물이 섞이면 시멘트처럼 변하는데, 그 위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 3명이 걸어간 발자국이 뚜렷하게 찍혔고, 이후 다시 화산재가 그 위를 덮고 굳어버렸다가 350만 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풍화작용에 의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발자국을 분석한 결과 두 명은 큰 체구, 한 명은 작은 체구의 개체들로 확인되었는데, 마치 남녀 짝과 아이의 발자국 같은 인상을 주어 인류 최초의 가족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발자국만으로는 가족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고 심지어 체구가 큰 두 명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성별도 확인할 수 없기에 추측만 난무할 뿐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 세 명이 어떤 관계였든 간에 오늘날의 가족 관계와는 비슷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류 최초의 가족

성적 이형성과 짝 결속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남성은 여성에 비해 체구가 1.5배 정도 크다. 그에 반해 호모 사피엔스 남성은 여성에 비해 평균적으로 약 1.15배 정도만 클 뿐이다. 같은 종 간에 남녀 또는 암수의 차이를 '성적 이형성'이라고 하는데, 성적 이형성이 큰 종일수록 암수 간 짝 결속이 약하고 성적 이형성이 작은 종일수록 짝 결속과 일부일처제 형태의 번식 전략을 갖는 경향이 있다. 성적 이형성이 큰 고릴라나 침팬지의 경우 수컷은 암컷과 교미할 때 이외에는 특별히 함께 협력하지 않는다. 수컷은 수컷 간 경쟁을 통해 교배투자에 전념하고, 암컷은 양육투자에 전념한다. 반면 일부일처 관계를 맺고 새끼 양육을 암수가 함께하는 긴팔원숭이의 경우 수컷과 암컷의 크기가 거의 비슷하다. 인간의 경우 초기 인류에서 현생인류로 이르는 기간 동안 점차 성적 이형성이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고릴라와 침팬지의 중간 정도의 성적 이형성을 보이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침팬지(다부다처)와 긴팔원숭이(일부일처)의 중간 정도의 성적 이형성을 보인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짝 결속을 맺는 것이 유리한 선택압(개체군 중에서 환경에 가장 적합한 일원이 부모로서 선택될 확률과 보통의 일원이 부모로서 선택될 확률의 비율)이 작용한 것이 분명하다.

짝 결속과 성별 분업

현존 수렵채집사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남성과 여성의 노동 분화다. 사냥은 주로 남성이 담당하고 채집은 주로 여성이 담당한다. 남성이 사냥을 통해 얻은 고기는 매우 고급 열량원이지만, 사냥 성공률이 높지 않아 허탕 치고 오는 날이 대부분이다. 여성이 채집을 통해 얻을 식물성 식량 자원은 단위 그램 당 열량은 낮지만 매일매일의 채집량이 큰 변화 없이 꾸준하여 식구들을 먹여 살린다. 수렵채집사회에서 수렵과 채집은 둘 다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며, 서로 상호 보완적이다. 그런데 사냥과 채집은 모두 복잡한 기술과 지식을 필요로 한다. 예를 들면 사냥을 위해서는 독화살 만드는 법, 활 쏘는 기술, 사냥감을 추적하는 기술 등을 숙련해야 한다. 채집을 위해서도 어떤 식물이 식용 가능하며, 땅 밑에 있는 구근류를 어떻게 발견하고 미량의 독소를 제거하기 위한 후처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을 익혀야 한다. 이렇게 복잡한 일들은 전문화할수록 더 잘 할 수 있다. 남성과 여성의 짝 결속은 효율적인 노동 분업과 협력에 의한 이익을 극대화하고 자식에 대한 부모 양쪽의 양육 투자를 이끌어낸다(짝 결속이 없는 종은 한쪽 성별, 주로 암컷이 양육투자를 전담한다). 이로 인해 인간은 거대한 뇌를 가진, 자라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자식을 키우면서도 오히려 번식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아버지의 탄생

아버지의 탄생

거의 모든 인간사회에서는 남성과 여성의 짝 결속 규범이 존재한다. 횡문화적으로 나타나는 결혼 규범은 원론적으로 배타적 성관계를 함축한다. 이를 통해 남성은 혼인관계에서 태어난 아이에 대한 부성 확실성을 확보하고, 여성은 남성의 양육 투자를 확보한다. 반면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등의 대형 유인원은 수컷이 전혀 새끼의 양육을 돕지 않는다. 짝 결속이 반드시 일부일처 관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산업화 이전의 대부분의 전통사회에서는 제도적으로 일부다처가 허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일부다처가 제도적으로 용인되는 사회에서도 일부다처혼은 일부 남성만이 가능하고 대부분의 혼인관계는 일부일처 관계이다. 티베트 일부 지역에서 일처다부제 혼인 관습이 존재하는데 여러 명의 형제들이 한 여성과 결혼하는 형제연의 형태를 띤다. 일부 모계사회에서는 짝 결속이 약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데, 이러한 사회에서는 성에 대해 비교적 자유로운 대신, 남성의 부성 확실성이 낮아 아버지의 양육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으며, 남성은 누이의 자식(조카)에게 양육 투자를 제공한다.

다양한 인간 사회에 대한 비교문화적 분석과 다른 영장류들과의 계통발생학적 비교분석을 통해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두 가지다. 첫째로 인간은 생물학적으로는 아직 일부일처제 짝 결속에 완벽하게 적응한 종은 아니라는 점이다. 두 번째로는 인간은 생태적 상황에 따라 사회 규범화된 결혼제도를 이용해 다양한 짝 결속 방식에 적응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가족과 친족

전 세계 인구 집단의 유전자 분석 결과, 한 집단 내에서 여성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자가 남성의 Y염색체 유전자보다 변이가 훨씬 크게 나타났다. 이는 여성이 남성보다 주거지를 더 많이 이동했다는 의미로, 여성이 집을 떠나 이웃 부족으로 혼인하는 여성 족외혼이 오랜 세월 반복되었음을 암시한다. 많은 부족 사회에서 집단 간 여성을 교환하는 방식을 통해 혼인하는 방식의 교환혼 문화가 존재했던 사실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결혼 규범은 일반적으로 짝 결속을 더 오랫동안 유지시키고, 부성 확실성을 높이며,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인척 관계를 통한 인적 연결망의 확장을 제공한다. 여성이 집단을 옮겨서 번식하는 경우, 짝 결속을 통해 부성 확실성이 확보되면 어머니와 자식 관계만으로 이뤄진 혈연관계가 더 광범위한 친족 관계로 크게 확장될 수 있다. 새로 태어난 아이는 공동체 구성원 중 아버지의 혈연들과 친족관계가 된다. 예를 들어 친할머니는 자기 아들과 짝 결속을 맺은 여성이 낳은 아이를 자신의 손주로 인식할 수 있다. 또 여성이 낳은 자식들 간에도 아버지가 같은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유전적 혈연관계 지수가 두 배가 되기 때문에 형제자매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가족과 친족

많은 종에서 혈연관계는 이타적 행동과 높은 상관관계가 있는데, 대표적으로 진사회성 곤충인 벌목 곤충들이 보이는 자매간의 협력 활동이 있다. 인류학자 와이즈너가 186개의 전통 사회들을 분석한 결과 어머니가 혼자 육아를 책임지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았고, 평균적으로 낮 시간의 절반 정도를 친모 이외의 다른 양육 도우미들이 아이를 보살핀다. 이들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양육 도우미는 유아의 할머니나 손위 형제자매다. 현대 사회에서 행해진 실험에서도, 참여자들에게 스쿼트 자세(기마 자세)를 유지한 시간에 비례해 다른 사람에게 돈을 지급하겠다고 했을 때, 돈을 받게 될 사람이 혈연관계일수록, 그리고 혈연 중에서도 유전적 관계가 높은 사람일수록 더 오랫동안 힘든 자세를 유지하는 경향이 있었다.

흔들리는 가족

그렇다고 부모와 자식 간이나 형제자매 사이가 이타적이고 협력적이기만 한 관계라는 말은 아니다. 우리는 남보다 못한 가족도 얼마든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여기서는 생물학적인 설명을 해보자. 나는 나와 유전자를 100% 공유하지만 가장 가까운 혈연인 부모와 자식 간이나 형제자매 사이에서도 50%의 유전자만을 공유할 뿐이다. 최대한 단순화해서 예를 들면, 엄마가 빵을 세 개 가지고 있을 때 두 명의 자식이 동일하게 엄마의 유전자를 50%씩 가지고 있으므로 두 형제에게 각각 한 개 반씩 나눠 주는 것이 부모 입장에서 가장 유전적으로 이득이 된다. 하지만 형 입장에서 동생은 형의 유전자 중 50%만을 공유하므로 엄마가 자신에게 두 개를 주고 동생에게 한 개를 주는 것이 가장 이득이다. 이는 동생도 마찬가지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상 그렇다는 이야기지 우리가 의식적으로 이렇게 계산하고 행동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얼마든지 피를 나눈 혈연 간에도 갈등이 존재할 수 있다는 이론적 증명일 뿐이다.

그런데도 인간이 오랜 세월 동안 가족제도를 유지해온 것은 손해보다 이익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은 당면한 생태환경에 따라 다양한 가족 제도를 만들고 유지하고 변화시키면서 그 이익과 손해 사이의 균형을 맞춰왔다. 인간의 삶이 점점 더 다양해지는 현대 산업 사회에서는 더 이상 특정한 한 가지 형태의 가족제도로는 그 균형을 맞추기가 어렵다. 앞으로 가족제도는 점점 더 다양한 모습으로 분화돼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우리는 또 그에 적응할 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항상 그래왔듯이 말이다.

따뜻한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영화 셋

저 산 너머

모두가 어렵고 가난했던 일제강점기 시절, 옹기장수 아버지와 행상을 하며 집안을 꾸려나가는 어머니를 보며 수환은 얼른 커서 부모님께 힘이 되고픈 마음뿐이다. 건강이 좋지 않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윤 신부가 찾아와 수환의 조부모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다. 한편 처음 사제서품식을 보게 된 어머니는 수환이 신부가 되길 바란다. 7살 아이의 시선을 따라 흐르는 가족의 삶과 고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엿볼 수 있는 영화다.

저 산 너머

코코

대대로 신발 만드는 일을 해온 리베라 집안에서는 평소에는 물론 잔칫날에도 음악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미겔 리베라의 고조할아버지가 가족을 버리고 음악을 하겠다고 떠나면서부터 음악은 이 집안에서 금지된 행위가 됐다. 하지만 가수의 꿈을 품은 미겔은 자신의 우상인 델라 크루즈가 자신의 고조할아버지일 거라 확신하며 그의 무덤 옆 기념관을 찾아갔다가 우연히 가타를 발견한다. 망자의 날에 유품을 만진 대가로 미겔은 죽은 자의 땅에 들어가게 되는데….

코코

빅피쉬

에드워드 블룸은 젊은 시절 자신의 모험담을 들려주는 것이 삶의 낙이다. 아들 윌리엄은 그런 아버지를 허풍선이라 여기며 발길을 끊고 지냈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거인과 마녀, 샴쌍둥이를 만났다는 둥 믿기 힘든 영웅담을 늘어놓기 때문.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돌아온 윌리엄은 여전한 아버지의 모습에 또 다시 실망하며 진실을 알기 위해 창고를 뒤진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버지의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문서를 발견하게 된다.

빅피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