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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 본능

고과 시즌이 돌아왔다! 이런저런 고과를 따져봐도 특별한 실적이 없다 싶으면 항상 고민되는 것이 바로 '고과에 도움 되는 자격증이라도 하나 따 놓을 것을' 하는 후회다. 직장인이라면 다들 한 번쯤 해봤을 테다. 아직 늦지 않았다며 연말이 되기 전 벼락치기로 자격증 시험에 도전하기도 한다. 학교를 졸업하면 공부는 끝인 줄 알았는데 웬걸, 사회생활하면서도 공부에는 끝이 없다. 그나마 학교에서는 하라는 대로 하면 됐지만, 이제는 무엇을 공부해야 하는지도 스스로 찾아야 히니 더 어렵다. 또 공부 안 한다고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닌데,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혼자 뒤처지는 것 같아 불안하다. 공부라면 질색인데 어쩌다 21세기를 살게 되어 이런 기구한 운명에 처했을까 우울하다면 다시 생각해보자. 우리 안의 학습 본능을!

[글 유지현 (진화인류학자)]



학습 본능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가? 사실 학습이 생존과 직결된 문제였던 것은 유독 현대인에게만 주어진 슬픈 운명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조상들에게 사냥이나 채집 방법에 대한 학습뿐만 아니라 집단의 사회 문화에 대한 학습 능력은 문자 그대로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였다. 심지어 일부 동물들에게도 이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예전에는 인간만이 학습하는 유일한 동물이라 여겨지기도 했지만, 이제는 인간 이외에도 많은 동물들이 학습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학습 능력을 위한 뇌 기능이 진화했다는 것은 학습 능력이 있는 개체가 살아남았고, 학습 능력이 없는 개체는 도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사회적 동물들에게는 세대를 통해 전수되는 학습이 존재한다.

학습 본능
학습 본능

예를 들어 일부 지역의 침팬지는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흰개미를 사냥하는데, 아직 어린 침팬지들은 어미나 친척이 흰개미를 사냥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모방하면서 배운다. 흰개미 사냥 학습 기회가 없었던 다른 지역의 침팬지를 흰개미 집 앞에 두고 나뭇가지를 건네준다 한들, 그들은 전혀 감을 잡지 못한다. 미어캣들은 더욱 뛰어난 교습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어캣의 주식 중 하나인 전갈 사냥은 아직 어린 미어캣들이 바로 시도하기에는 위험하다. 성숙한 미어캣은 어린 것들에게 처음에는 꼬리의 독을 제거하고 거의 다 죽어가는 전갈을 가져다주면서 사냥 연습을 시킨다. 그러다가 학습자가 점차 익숙해지면 독만 제거한 전갈을, 그리고 나중에는 온전한 상태의 전갈을 연습용으로 준다. 그동안 미어캣 교수자는 미숙한 학습자 곁에서 그 과정을 지켜보며 도움이 필요할 때는 개입하기도 하고, 학습자의 수준을 파악하고 다음 연습 단계의 난이도를 조절한다.

사회적 학습과 문화의 전수

이렇듯 다른 동물들도 학습 능력이 일정 정도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인간의 학습 능력수준은 다른 동물들과의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가히 독보적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이는 인류의 선조가 그 어떤 동물들보다 학습 능력에 대한 강한 선택압을 받았음을 의미한다. 인간의 학습 능력과 다른 동물들의 차이는 특히 사회적 학습 능력에서 두드러진다. 이는 다른 사람을 모방하는 능력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따라쟁이 원숭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원숭이보다 인간이 훨씬 더 따라쟁이다. 한 심리학자가 침팬지를 인간과 함께 키우고 가르치면 인간 아이처럼 행동하리라 생각하고는, 새끼 침팬지를 자신의 집에서 자신의 아기와 함께 키웠다.

하지만 침팬지가 아이를 따라 하기보다는 아이가 침팬지의 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 더 많았고 결국 실험은 중단됐다. 최근의 실험들도 두 살배기 정도 되는 어린아이들이 침팬지보다 훨씬 정교한 모방 학습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재미있는 점은 침팬지들은 실험자의 시범 행동 중 문제 해결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행동만을 모방하려고 하는 반면, 어린아이들은 실험자의 행동 중 문제 해결과는 관련 없는 행동도 그대로 모방한다는 점이다. 이는 어린아이들이 인과관계 추론 능력이 침팬지보다 미숙해서라기보다는 인간의 사회문화적 학습에 인과관계에 따른 추론 능력보다 학습 대상을 가능한 한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이익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떤 인간 사회에서도 문화적 전수 없이 생존할 수 없다. 오랜 세대동안 지식과 기술이 전수되고 노하우가 축적되기 위해서는 정교한 모방이 선행돼야 한다.

순응 편향과 명성 편향

그런데 누구에게 무엇을 배울 것인가? 사실 우리는 아무나 보고 배우지 않는다. 사회적 학습에는 대표적으로 순응 편향 학습과 명성 편향 학습이 있다. 순응 편향 학습은 집단의 대부분이 하는 것을 따라 하는 행동이다. 일견 비합리적인 듯하지만, 사실 비슷한 환경에서 많은 사람들이 하는 행동은 생존에 이익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진화적 시간에서 보면 그행동의 실제 손익을 확인한 후에 학습할지 말지 결정하는 것보다, 대부분의 사람이 하는 대로 바로 따라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옆자리 동료가 무슨 자격증을 땄는지에 관심이 많다. 명성 편향은 집단 내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모방하는 학습이다.

서점에 가면 넘치도록 쌓여 있는 자기계발서에는 한결같이 성공한 사람들이 무엇을 했는지 적혀 있다. 그런 책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그만큼 궁금해한다는 것이리라. 이러한 편향적 학습 기제는 우리 선조들에게는 유용한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순응 편향이나 명성 편향에도 불구하고 왜 같은 학급 친구들이 모두 공부하고, 우리 학교 전교 일등도 공부하던 미적분 공식을 외우는 일은 그토록 어렵고 하기 싫은 것일까? 반면, 컴퓨터에 미적분을 풀게 하는 것보다, 인간처럼 유창하게 언어를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 더 어려운데도 인간은 어떻게 아주 어린나이에도 언어를 학습하고 구사할 수 있는 것일까?

준비된 학습, 가르시아 효과

20세기 초에 유행한 행동주의 심리학에서 학습은 조건-반사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어떤 행동에 대한 결과가 긍정적인 부정적인지에 따라 긍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행동은 강화하고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행동은 소거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우리는 미적분을 풀었을 때 긍정적 보상이 주어지면 점점 더 미적분을 풀고 싶어져야 할 테지만, 전국의 수학 선생님들의 증언에 따르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미국 심리학자 존 가르시아는 야행성 쥐에게 특정한 색의 먹이, 또는 특정한 냄새의 먹이를 주고 방사선을 쪼여 배탈이 나도록 한 후 다시 동일한 먹이를 주었을 때 쥐의 반응을 확인하는 실험을 진행했다.

쥐에게 동일한 색의 먹이를 다시 준 경우에는 배탈과 연관 학습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동일한 냄새의 먹이에는 연관 학습이 일어나 먹이를 먹지 않았다. 동물의 학습 능력이 모든 면에서 동일한 것이 아니라 진화적 환경에서 반복적으로 생존에 더 중요한 영향을 미쳤던 것들을 더 잘 학습하도록 준비돼 있다는 것이다. 이후에 점점 더 많은 동물에게 선천적으로 준비된 학습능력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리 선조들에게 사회적교류에 필요한 언어 능력은 생존에 필수적이었겠지만, 사실 추상적인 수 개념은 그다지 생존과 직결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미적분보다 더 고도의 알고리즘이 필요한 언어 학습은 생후 수개월부터 자동으로 일어나지만, 고등학생이 되어도 미적분 공부는 쉽지 않은 것이다.

현대 사회에 필요한 학습 중에는 과거에는 생존과 직결되지 않았던 문제들이 많다. 미적분 공식이나 원소의 주기율표를 외우는 일은 우리 선조들에게는 생존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가 가진 학습 본능을 충분히 자극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준비된 학습만 우리가 학습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뇌는 새로운 것을 배우길 좋아한다. 흔히 흥분과 쾌락을 추구하는 호르몬이라고 알려진 도파민은 새로운 것을 학습하기 위한 호르몬이기도 하다. 도파민은 학습에 필요한 주의집중과 목표 지향적 행동을 유발한다.

새로운 경험이 예상치 못하거나 예상보다 더 큰 보상을 가져올 때, 도파민은 이를 잊지 않고 기억해두었다가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같은 행동을 다시 하도록 돕는데, 이 같은 반응이 학습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도파민의 신경생리학적 작용은 코카인 등의 중독성 약물보다도 더 강력한 반응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평생 학습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삶이 너무 고단하다고 우울해하지 말자. 선조들의 삶 역시 학습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고, 학습 능력이 더 뛰어났던 선조들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의 학습 본능은 아주 먼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유산일 테니 말이다.

공부 의욕을 자극하는 영화 셋

행복을 찾아서

의료기기를 판매하던 영업사원 크리스 가드너는 매일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파산에 이르게 된다. 생활고로 아내도 떠나고 어린 아들과 함께 거리에 나앉게 된 크리스 앞에 어느 날 근사한 자동차한 대가 멈춰 선다. 크리스는 차에서 내린 사내에게 성공의 비결을 묻고, 그는 수학을 잘하고 사람만나기를 좋아하면 성공한다는 대답을 해준다. 그길로 크리스는 아들과의 행복한 삶을 꿈꾸며 주식중개인이 되기 위해 노력한다.

행복을 찾아서

무한대를 본 남자

직관에 따라 수학 공식을 만들어내는 인도 빈민가의 청년 라마누잔은 그의 천재성을 알아본 영국 왕립학회 하디 교수의 도움으로 학교의 반대를 무릅쓰고 케임브리지 대학에 입학한다. 교수들이 힘들게 증명해내는 과정을 공식으로 쉽게 만들어내는 그의 천재성이 교수들 눈에는 곱게 보이지 않는다. 문화도 종교적 신념도 다른 타국에서 오로지 수학에 대한 열정으로, 그를 믿어준 하디 교수와 공동연구를 펼쳤던 젊은 천재 수학자의 이야기다.

무한대를 본 남자

박사가 사랑한 수식

교통사고로 사고 이전의 기억 외에는 80분밖에 기억하지 못하는 고령의 수학자. 박사의 일상에 그의 괴팍함을 버티지 못하고 거듭 바뀌어 열 번째로 찾아온 도우미 쿄코가 들어온다. 오로지 숫자로 세상과 소통하는 박사의 풀이에 쿄코는 순수함을 알게 된다. 우연히 쿄코에게 아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된 박사는 매일 아들을 데려와서 함께 저녁을 먹자고 제안한다. 이후 쿄코의 아들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할아버지의 따뜻함을 느낀다.

박사가 사랑한 수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