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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플라스틱의 쓰임을 찾는
플라스틱 제빵사 플라스틱베이커리 박형호 대표
세상에 쓸모없는 게 있을까. 우리가 쓰지 않을 뿐, 버려지는 모든 것을 새로 쓸 수 있지 않을까.
플라스틱베이커리 박형호 대표는 이 같은 생각으로 버려진 플라스틱을 빵처럼 구워내 새로운 쓰임새를 부여한다.
새로운 쓰임을 얻은 플라스틱은 갓 구운 빵인 양 신선하다.

글. 이은정 사진. 김범기 영상. 이덕재

신선한 수제 플라스틱 오브제 ‘먹지 마세요’

분명 겉바속촉 카눌레인데 한가운데 펜이 꽂혀있다. 먹음직스러운 타르트 사이에는 액세서리가 담겨있고, 바삭한 와플 위엔 버젓이 명함이 놓여 있다. 흡사 ‘먹지 마세요, 소품에 양보하세요’라는 말이 나올 법한 이 상황. 플라스틱베이커리의 작품이다. 카눌레, 타르트, 와플 모두 버려진 플라스틱 뚜껑을 모아 만든 오브제다.
플라스틱베이커리는 2020년 11월에 첫발을 내디딘 업사이클링 브랜드다. 버려진 플라스틱, 그중에서도 음료 등의 플라스틱 뚜껑을 재활용해 따끈따끈한 빵을 오븐에 구워내듯이 새로운 쓰임새의 오브제로 만든다.

플라스틱베이커리에서는 사용 후 버리는 뚜껑들을 재활용해 생활에 필요한 용품을 개발, 제작하고 있어요. 버려지는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다양한 움직임 중 하나로, 제품을 보는 순간 ‘와-’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예쁘면서도 실용적인 오브제로 탄생시키고자 해요. 캐치프레이즈가 ‘신선한 수제 플라스틱 오브제’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오브제 제작 과정은 빵을 굽는 것과 유사하다. 다양한 플라스틱 뚜껑을 비슷한 색상끼리 분류해 작은 조각으로 분쇄한다. 이후 분쇄한 조각의 무게를 달아 빵틀에 넣고 오븐에서 일정 시간 동안 적당한 온도, 적당한 압력으로 구워서 식히면 완성. 자타공인 ‘플라스틱 제빵사’ 박형호 대표는 그간 다양한 레시피를 개발했다. 카눌레와 타르트를 굽는 데는 플라스틱 뚜껑이 13개 정도, 와플을 굽는 데는 70개 정도 필요하다. 같은 색, 같은 무게의 플라스틱 조각을 사용하더라도 완성된 제품은 어느 것 하나, 같지 않고 제각각 독창적이고 새롭다. 박형호 대표는 이것이야말로 수제 플라스틱 오브제만의 매력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쓰임새를 찾는 데서 느끼는 성취감

  • 플라스틱베이커리는 요리를 좋아하는 친구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됐다. 버려진 플라스틱을 녹이고 몰드를 사용해 형태를 잡는 과정이, 빵을 굽는 것과 비슷하다는 데서 착안한 것.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새로운 제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움직임은 많아요. 이미 산업적으로 접근하는 부분도 있고요. 플라스틱베이커리는 뻔하지 않고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에 무게 중심을 두고 있어요. 전혀 예상치 못한 오브제에 새로운 쓰임을 부여하고 싶었는데, 요리에서 메타포를 가져온 것이 마침 잘 맞았죠.

    물론, 수제 플라스틱 오브제를 재탄생시키는 게 그리 간단한 건 아니다. 손맛에 따라 음식 맛이 달라지듯이, 오브제로 완성되어 나오기까지는 그 모양과 텍스처를 확신할 수 없다. 작은 온도 차, 미세한 압력 차에도 완성도가 확연히 달라지므로 아주 세심하게 조절해야 한다. 플라스틱베이커리는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변수를 최소화하고 최적의 조건을 데이터베이스화하고 있다. 버려지는 플라스틱 중에서 뚜껑만을 선별해 재활용하는 이유도, 성분이 PE(폴리에틸렌)인 뚜껑이 재활용하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오븐에서 구울 때 유해 가스 배출이 적기 때문이다.
    박형호 대표는 어린 시절부터 버려진 물건에 유독 관심을 가졌다.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는데 무참히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웠고 그에 대한 연민으로 업사이클링을 고민하게 된 것.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활용하는 움직임 대다수가 환경을 생각하고 지구를 위하는 철학적 바탕에서 시작하는 것과 다르게, 플라스틱베이커리가 물건의 변화와 새로운 쓰임에 관심을 두고 출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박형호 대표는 “쓰임을 다한 것 같은 플라스틱 뚜껑이 카눌레로, 와플로 바뀌고 유용한 생활용품으로 새로운 쓰임을 얻는 것에서 재미와 성취감을 느껴요.”라며 강조했다.

업사이클링이 문화로, 생활 방식으로 자리 잡기를

  • 플라스틱베이커리는 그간 여러 기업과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해왔다. 지난해에 록시땅과 협업해 록시땅 공병을 모아 베이킹 오브제, 업사이클링 솝(soup) 트레이를 제작했으며, 모나미와 손잡고 ‘베이크드 오피스’ 전시에 폐플라스틱 뚜껑으로 만든 다양한 굿즈를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엔 풀무원 샘물의 파트너로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친환경 클래스를 진행 중이다.
    제빵사들이 자신의 실력을 최대한 발휘해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것과 같이, 플라스틱베이커리도 우수한 품질의 다양한 오브제를 탄생시키려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최근, 피자 등 새로운 오브제를 개발하고, 생산성 향상에도 방점을 찍기 시작했다. 일일이 빵틀로 찍어내는 방식으로는 밀려드는 주문량을 감당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박형호 대표는 온전히 수제로 진행하는 방식과 상대적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한 방식으로 분류해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후자를 위해 트레이 모양의 금형도 제작했다. 생산성을 높여 더 많은 소비자가 접근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시장을 확장하겠다는 취지다. 이를 통해 플라스틱베이커리가 버려진 플라스틱을 재미있고 흥미롭게 활용할 수 있는 브랜드로서 공고히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플라스틱베이커리가 언제나 갓 구운 빵처럼 신선하게 다가가 임팩트를 남기고 업사이클링을 더 친근하게 느끼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생명을 다한 플라스틱이 생활 속에서 새로운 쓰임새를 찾는 활동에 더 많은 사람이 동참하면서 자연스러운 생활 방식으로 확장해 간다면, 플라스틱베이커리가 지구를 위해 작은 부분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