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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심리학


인사고과를 앞둔 영수 씨의 마음은 조금 착잡하다. 성과급이나 승진도 그렇지만, 서로 은밀하게 이전투구하는 모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평소 쌀쌀맞던 미영 씨가 갑자기 과장에게 커피를 타주지 않나, 회식은 질색하던 경태 씨는 어제 부장과 3차까지 갔었다는 이야기기를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늘어놓는다. 그런 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일까? 나도 그러한 정치판에 뛰어들려니 망설여진다. 잘할 자신도 없고, 괜히 평소 이미지만 깎아 먹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러다가는 만년 대리, 저성과자 낙인을 떼기 어려울 것 같다.
[글 박한선 교수]



박한선(신경인류학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 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마음으로부터 일곱 발자국] 등을 썼다.

야만적 본성

"왕은 신에게만 책임이 있고, 신하에게는 책임이 없다. 국왕은 법의 지배를 받지 않으며, 국왕이 곧 법이다." 1603년 잉글랜드 국왕에 즉위한 제임스 1세의 말이다. 뒤를 이은 찰스 1세는 자신에게 반대하는 의회를 해산하고, 의원들을 체포했다. 스코틀랜드와의 전쟁과 세금 문제로 의회와 여러 번 갈등하던 찰스 1세는 결국 내전을 벌인다. 잉글랜드 내전이다. 왕당파와 의회파는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지만, 결국 의회파가 승리하고 찰스 1세는 처형된다. 이후 잉글랜드는 왕정이 폐지되고 공화정이 선포된다. 물론 10년 만에 다시 왕정복고가 이뤄지지만 과거와 같은 전제군주제는 영영 사라져 버린다. 지금의 입헌군주제가 시작된 계기다. 기나긴 내전 중에 가장 고통받은 사람은 왕도 의원도 아닌 영국 국민이었다. 상당 기간 영국은 무정부 상태나 다름이 없었다. 국민의 삶은 피폐해졌고, 사회 질서는 무너졌다. 이러한 내전의 끔찍한 혼란을 목격한 토머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추악하며, 야만스럽고, 짧다." 직장 생활을 정치와 비견하기에는 너무 장엄한 말이지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이다. 마치 평생토록 한 직장을 다니겠다는 듯 서로 싸우던 이들은 어느새 모두 사라진다. 요즘 세상에 한 직장에서 십 년 넘게 근무한다는 건 드문 일이다. 고작 몇 년이나 더 버티겠다고 책임은 떠넘기고 공은 가로채는 것인지. 여전히 우리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추악하고 야만스럽고…, 짧다.

이기적인 인간

홉스는 '스스로 내맡겨진 인간은 끊임없는 투쟁과 갈등에 허우적거리며 살 뿐'이라고 생각했다. 국가가 개입하지 않으면 인간은 이기적 본성 탓에 서로 싸우고 빼앗고 죽이며 고통스러운 삶을 살 뿐이라는 것이다. 리바이어던은 바다에 사는 강력한 힘을 가진 상상의 괴물이다. 타고난 이기성과 폭력성을 다스릴 집행자, 즉 강력한 거대 괴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바로 집단의 힘으로 만든 중앙 정부, 국가다. 그런데 인간의 본성은 정말 추악하고 이기적이며 더러운 것일까? 법이나 제도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끝없는 투쟁만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라면, 절망적인 일이다. 게다가 국가가 과연 정의의 심판자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국가 자체가 비극의 집행자가 된 일은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홉스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었다. 원래 인간의 본성은 착하고 고결한데, 문명과 사회제도가 인간을 불필요한 경쟁과 타락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장 자크 루소다.

고귀한 야만인

1755년 루소는 이른바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라는 책에서 '문명 이전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는 고귀한 야만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사실 그의 주장에 대해서는 상당한 격론이 오갔지만, 루소의 주장은 그 당시 프랑스 사회의 지독한 타락, 데카당스를 꼬집으려는 목적이 깔려 있었다. 아무튼 현재까지도 고귀한 야만인, 즉 인간의 본성은 원래 자유롭고 이타적이며 지복하다는 믿음은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법도 제도도 없는, 그리고 슬픔과 고통도 없는 아름답고 영원한 원시의 파라다이스. 1925년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폴리네시아의 사모아 섬에서 다섯 달 동안 지내면서 그들의 삶을 기록하여 책을 펴냈다. 《사모아의 사춘기》는 일약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서구에서는 당시뿐 아니라 지금도 꼭 읽어야 할 책으로 꼽힌다. 성적인 시기심이 없으며 사춘기의 방황도 겪지 않는 우아한 삶을 사는 사모아 소년, 소녀의 이야기는 마치 루소의 주장을 실증하는 것과 같았다. 그녀에 따르면 사모아 인들은 폭력도 거의 저지르지 않았고, 죄책감 없이 성관계를 즐겼다. 어떤 사회적 제도의 도움 없이도 사람들은 경쟁과 갈등 없이 살았다. "인간의 본성과 전쟁 간에는 어떤 관련성도 없다. 물론 인간에게 공격적이며 파괴적인 본성도있을 수 있지만, 잠재적으로 인간의 본성은 질서정연하고 건설적이다." 마거릿 미드가 한 말이다. 이러한 믿음은 서구 문화에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 브룩 쉴즈가 주연한 《블루 라군》을 기억하는지? 바로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자연에서 순수한 행복을 얻는다는 보편적 판타지를 그린 영화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인간의 본성은 처참하게 폭력적이라는 주장에는 좀처럼 동의하고 싶지 않지만, 무조건 밝고 건설적이라는 주장도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설탕 두 스푼 소금 두 스푼

이기성의 대표 주자는 바로 사이코패스다. 정확한 정신의학적 진단명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다. 다음과 같은 특징이 있다.

  • 공감이나 반성을 하지 않는다.
  • 차가운 마음을 가지고, 이기적이며, 무감각하다.
  • 자기중심적이고 냉담하며 공격적이다.
  • 타인의 협력과 신뢰를 이용한 범죄, 예를 들면 사기나 중혼 등을 저지른다.
  • 충동적이고 흥분을 갈망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전체 인구의 약 1~3%에 달한다. 교도소 수감자 다섯 중 하나가 반사회적 인격장애다. 정말 동정하기 어려운 '국가 공인 나쁜 사람'이다. 정반대도 있다. 착함을 넘어서서 바보처럼 보이는 사람이다. 저래서 거친 세상 살아갈까 싶은 '천사표'다. 린다 밀리 등은 이른바 혼성 진화적 안정 전략이라는 가설을 제시했다. 즉 인구 집단 안에서 여러개의 진화적 전략이 협력하고 경쟁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사이코패스 개체가 유리하고 어떤경우에는 협력적인 개체가 유리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비율은 조금씩 변동하면서 일정하게 유지된다. 수학적으로는 입증이 어렵지 않은 가설이다. 조물주는 세상을 만들 때 천사표도 한 움큼 집어넣고 사이코패스도 몇 스푼 더했을 것이다. 맛있는 요리를 위해서는 달콤한 설탕도 짜디짠 소금도 필요하다. 신은 단짠을 좋아한다.

단짠 인간

인간의 마음은 하나의 본성이 지배하는 일사불란한 특공대가 아니다. 수많은 정당이 서로의 목소리를 높이는 의회와도 같다. 마음속에는 이기당과 이타당이 서로 갈등한다. 연말을 맞는 당신의 마음도 그럴 것이다. 이전투구 같은 동료 모습에 혀를 끌끌차면서도, 동시에 '나도 가만있을 수 없지'라는 생각이 든다. 또 한 해가 지나가고, 직급은 그대로, 월급도 그대로, 통장도 그대로다. 경쟁자를 슬쩍 비난해볼까 하다가도 이내 자책하는 심정이 든다. 우측 정수리의 천사와 좌측 정수리의 악마가 늘 싸우고 있어, 자신의 마음도 종잡을 수 없다. 원래 이렇게 복잡한 존재다. 인간은 단짠이다. 하지만 주변 여건은 마음의 여론을 한쪽으로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 나라가 어려워지면 이기당이 더 큰 발언권을 가진다. 당장 굶어 죽게 생겼는데 양 심이고 체면이고 차릴 것이 없다. 곳간이 그득하면 이타당이 득세한다. 두둑한 지갑이 좋은 사람을 만든다. 선인도, 악인도 다 나름의 긴 사정이 있다. 무조건 칭찬할 것도, 무조건 욕할 것도 아니다.

가장 긴 밤, 바로 새 빛이 시작되는 순간

올해 동지는 12월 22일이다. 해가 가장 짧은 날이다. 하지만 동지는 어둠의 날이 아니다. 태양이 부활을 시작하는 날이다. 그래서 동서양에서는 동지에 큰 축제를 벌이곤 했다. 율리우스력에 의하면 동지는 12월 25일이다. 사실 성경에는 예수의 탄생일에 대한 언급이 없다. 언제부터인가 이집트의 기독교에서 1월 6일로 성탄일을 축하하다가, 4세기경에 이르러 '야만적인' 동지 축제와 합쳐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류학자 제임스 조지 프레이저의 이야기다. 아무려면 어떨까? 연말은 괜히 마음을 들뜨게 하는 힘이 있다. 2019년 한 해 동안 서운한 사람이 없을 리 없다. 마음 같아서는 한 대 쥐어박고 싶다. 하지만 내 마음속 이기심이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득세했듯이, 아마 그도 그랬을 것이다. 뭐 원래 나쁜 놈이라고? 상관없다. 천하의 죄인이라면 어쩌랴. 대역죄인도 풀어주던 동지 축제 아닌가. 이런저런 시름을 다 잊고 같이 즐기자. 어둠이 길었던 만큼 이제 밝은 날이 점점 길어질 것이다. 고대 이집트인은 동짓날 자정에 신전의 내실에 들어가 큰소리로 외쳤다. '동정녀가 빛을 낳았도다! 빛이 퍼져나가는 도다!'

달콤함 속 짭짤함이 녹아든 연말 추천 영화 셋

이터널 선샤인

  • 장르 : 로맨스
  • 감독 : 미셸 공드리
  • 출연 : 짐 캐리, 케이트 윈슬렛

잠에서 깬 조엘은 이유없는 공허함에 출근하던 도중 몬탁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열차 안에서 그는 묘하게 시선을 끄는 한 여성을 만난다. 이둘은 서로의 연인이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실연의 아픔을 견디지 못해 기억을 지웠기 때문이다. 서로를 향한 감정까지는 어쩌지 못하는 것일까. 지워지고 있는 기억 속에서 이들은 눈물의 탈출을 감행한다.

완벽한 타인

  • 장르 | 코미디
  • 감독 | 이재규
  • 출연 | 유해진, 조진웅, 이서진

오랜만의 커플 모임에서 한 명이 게임을 제안한다.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자신의 휴대전화로 들어오는 전화와 문자 메시지 등 모든 내용을 공유할 것. 재미로 시작한 이들의 게임은 하나씩 숨기고 싶었던 비밀이 밝혀지면서 상상하지 못한 결말로 흘러간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친구 사이가 휴대전화가 품은 비밀 때문에 완벽한 타인이 될 위기를 맞게 된다.

히 러브스 미

  • 장르 : 로맨스 스릴러
  • 감독 : 래티샤 콜롱바니
  • 출연 : 오드리 토투, 사뮈엘 르 비앙

미술학도인 안젤리끄는 유부남 심장전문의 뤼끄를 사랑한다. 그는 아내도 있고 곧 있으면 아이도 생기지만, 안젤리끄는 언젠가 그가 자신을 선택할 것임을 믿고 기다린다. 뤼끄의 아내가 유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안젤리 끄는 그와의 사랑을 꿈꾸며 여행을 계획하지만, 뤼끄는 여행 당일 연락도 없이 그녀를 바람맞힌다. 그런데 어쩐지 그는 그녀를 모르는 듯한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