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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이탈리아인에게 볼로냐는 '뚱보 볼로냐'라는 애칭으로 익숙하다. '미식의 수도' '아케이드의 도시' '붉은 지붕의 도시' 등 따라다니는 수식어는 다채롭다.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 밀라노, 피렌체의 중간지대에 위치한 도시는 요리, 건축, 역사 등의 사연이 두루 얽힌 곳이다.

[글 사진 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여유와 맛의 도시 볼로냐

볼로냐가 이방인들에게 유명 관광지로 언급되는 것은 아니다. 볼로냐의 매력은 오히려 그런 면에 있다. 도시는 현지인과 관광객을 이분법적으로 갈라놓지 않는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이 소개해 주는 건물 모퉁이 레스토랑의 파스타는 썩 괜찮은 편이며, 현지인들이 들락거리는 작은 샌드위치 가게도 맛과 정겨움이 묻어난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피렌체를 방문할 때면 단골로 들리던 곳이 볼로냐다. 하루키는 이곳에서 쇼핑을 하고 산책을 즐겼으며 한적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피렌체, 밀라노처럼 번잡하지 않은 볼로냐는 삶의 질에 있어서 늘 이탈리아 최고 순위에 랭크되는 풍요로운 땅이기도 하다.

볼로네제 파스타의 원조 도시

볼로냐에서는 맛집들만 찾아다녀도 하루해가 짧다. 볼로냐의 음식들이 뚱보를 양산한 데는 사연이 있다. 포 강과 아펜니노 산맥 사이에 위치한 도시는 비옥한 곡창지대에 둘러싸여 있다. 볼로냐 음식들은 조리할 때 올리브 대신 버터와 돼지비계를 정제한 '라드'를 고집한다. 어느 식당을 기웃거려도 기본 음식에 돼지고기, 치즈 등이 넉넉하게 담겨 있다. 볼로네제 파스타로 불리는 미트소스 파스타 역시 볼로냐가 원조다. 볼로냐는 달걀을 사용하는 북부식 파스타의 본고장으로 가게에서 직접 만든 생 파스타들은 유달리 쫄깃쫄깃한 맛을 자랑한다. 육류나 치즈를 파는 델리카트슨 식당은 다소 조명이 어두워도 도심 골목의 숨은 보물들이다. 돼지고기를 가공해 썰어 내는 살라미, 모르타델라 등이 곁들여진 메뉴를 좇아 줄을 서는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볼로냐에서는 아름다운 음식에 건축미까지 곁들여진다. '회랑(아케이드)의 도시' 볼로냐는 기둥이 노천 지붕을 받치고 있는 '포르티코'로 불리는 회랑이 구시가 전역을 감싸고 있다. 구시가를 잇는 아케이드의 길이는 무려 53km에 달한다. 회랑 지붕에는 다양한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기도 하다. 이탈리아뿐 아니라 유럽 전역에서도 이런 회랑의 도시는 드물다.

끝없는 아케이드 늘어선 구시가

도심에서 언덕 위 산 루카 수도원까지는 총 666개의 아치로 연결된 세계에서 가장 긴 포르티코길이 3.8km 이어진다. 수도사들이 기거하는 산 루카 수도원을 잇는 계단 회랑길을 현지인들은 조깅 코스로 택하기도 한다. 포르티코 언덕길을 걷다 보면 '붉은 지붕의 도시' 볼로냐의 자태가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구시가 대로인 우고 바시 거리 정면에는 볼로냐의 이정표인 가리센다, 아시넬리 쌍둥이 탑이 우뚝 솟아 있다. 시인 단테는 가리센다 탑의 기울기에 매료돼 <신곡> 지옥 편에 탑에 관한 글귀를 남겼다. 볼로냐에서 가장 높은 아시넬리 탑은 붉은 지붕의 도시 볼로냐가 선명하게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골목 사이로는 크고 작은 탑들이 버섯처럼 봉긋 솟아 있다. 볼로냐의 탑들은 중세 군주들의 권위와 세력을 대변한다. 한때 200개가 넘었던 볼로냐의 탑들은 지금은 80여 개만 그 흔적이 남아 있다. 방사선으로 뻗은 12개의 문을 통과한 볼로냐의 길들은 구도심의 중앙인 피아자 마조레 광장에서 한데 모인다. 피아자 마조레 광장은 과거 왕궁이 있던 터임을 강변한다. 포데스타 궁전, 엔초 왕궁, 반키 궁전 등 이름도 제각각인 궁전들이 광장 주변을 에워싸고 있다. 꼼꼼히 살펴보면 1200년대 후반 세워진 건축물들은 15세기까지 증축돼 시대별 양식이 가지런하게 남아 있다. '팔라조 다쿠르지오'에는 볼로냐가 배출한 정물화가 조지오 모란디의 작품이 전시 중이다. 모란디의 작품을 사랑했던 성악가 파바로티의 자녀들이 기증한 그림들도 미술관 한편을 채우고 있다. 넵튠 분수, 산 페트로니오 성당 등 광장의 건축물들은 여느 중세 이탈리아 도시들처럼 단아하다. 세계에서 5번째로 크며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산 페트로니오 성당 역시 혼재된 외관으로 위용을 뽐낸다.

움베르토 에코의 볼로냐 대학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종합대학도 볼로냐에 있다. 잠보니 거리를 걷다 보면 골목에 그라피티(벽에 낙서처럼 긁거나 스프레이 페인트를 이용해 그리는 그림)가 그려져 있고, 벽화를 감상하며 걷다 보면 어느새 볼로냐 대학 캠퍼스의 한가운데 있음을 깨닫게 된다. 세계적인 작가 움베르토 에코는 기호학 교수로 볼로냐 대학에 재직했다. 볼로냐 대학은 지동설을 주장한 코페르니쿠스, <신곡>을 쓴 단테 등 명망 있는 인사들을 배출해냈다. 천년 역사를 자랑하는 오래된 대학에서는 수준 높은 클래식, 재즈 콘서트가 열리기도 한다. 볼로냐 대학 인근의 미술관에서는 라파엘로 등 에밀리아 지방의 화가들 작품을 만날 수 있어 볼거리를 더한다. 볼로냐가 품은 반전은 쉬지 않고 이어진다. 볼로냐는 레지스탕스의 도시이자 '명품 탈 것'들이 메카인 고장이다. 좌파들과 레지스탕스들은 볼로냐를 거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독재자 무솔리니에 대한 저항이 가장 강렬했던 도시로 독재에 저항해 목숨을 던졌던 시민들의 얼굴 조형물이 시청사 벽돌에 일일이 새겨져 있을 정도다. 반면에 볼로냐 인근에서는 세계적인 이탈리아의 승용차 브랜드인 페라리가 태동하기도 했다. 페라리, 람보르기니 박물관과 함께 모터사이클 두카티의 박물관이 도시 인근에 자리했다. 볼로냐 주민들은 기름진 음식에 이 일대에서 출하되는 람브루스코 와인을 곁들인다. 젤라토 아이스크림을 디저트로 선택하는 게 볼로냐식 식사의 수순이다. 피아자 마조레 광장 옆 골목에 들어선 노천시장에서는 맛 기행이 짧은 동선 따라 이뤄진다. 이웃 도시인 파르마, 모데나 역시 치즈, 발사믹 식초를 맛보는 여행 코스로 보조를 맞춘다. 끝없는 도심 회랑에 넋을 놓다가도 미식의 즐거움을 놓쳐서는 안 되는 곳이 바로 볼로냐다.

tip 지구를 생각하는 이탈리아 볼로냐 여행

에코여행하면 맛있는 선물이 따라와

볼로냐에서는 도보나 자전거로 도심을 구경하고 맥주, 아이스크림도 공짜로 먹어볼 수 있다. 도시에서는 '벨라 모사'라는 환경 프로그램을 진행 중인데, 스마트폰 앱을 깔고 자동차 대신 자전거나 도보로 이동하면 GPS를 추적해 이동거리만큼 포인트를 제공한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 쌓인 포인트는 지역 상점에서 맥주, 아이스크림 등으로 교환이 가능하다.

문화 환경 보존을 위한 차량통행제한

볼로냐에서는 시내 도심으로 들어서는 차량의 수가 엄격하게 제한된다. 구시가의 거리를 옛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통행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다. 렌트카 등 일반 차량들이 차량통행제한 구역인 구도심에 진입하려면 시의 허가를 사전에 받고 등록증을 지참해야 한다. 시에서는 문화적 가치를 지닌 회랑과 환경을 보존하기 위해 도로를 무분별하게 넓히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다.

시민 참여로 태어난 건강한 먹을거리

도심에서 만나는 볼로냐의 쇼핑몰들은 소비자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가게들이 대부분이다. 협동조합이 태동한 도시인만큼 다양한 협동조합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 쇼핑몰에서 제공되는 음식이나 제품들은 기본적으로 조합원인 시민들의 참가와 활동에 기반을 두고 있다. 시민이 곧 판매와 소비의 주체이기 때문에 친환경 식재료, 생필품 등을 다양하게 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