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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를 입은 힙스터 비건타이거 양윤아 디자이너
MBC 예능 <놀면 뭐하니> 속 ‘지미유(유재석)’가 입은 호랑이 패턴의 셔츠.
야생이 연상되는 강렬한 색채와 위트있는 표현이 매력인 이 셔츠엔 동물 착취 반대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지미유의 셔츠를 만든 비건 패션 브랜드 ‘비건타이거’의 양윤아 디자이너는
이처럼 패션을 통해 동물을 해치지 않는 진정한 ‘멋’에 대해 말한다.

글. 조서현 사진. 김범기 영상. 김지혜

패션계에 ‘크루얼티 프리’를 외치다, 비건타이거

찬 바람이 불어오는 겨울은 몸을 움츠리며 추위를 피하기도 바쁜 동물들에게 더욱 잔혹한 계절이다. 오리털 패딩, 밍크코트, 소가죽 장갑, 앙고라 니트 등 혹한을 견디기 위한 옷들에는 대부분 동물의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무심코 구매하는 옷가지에는 죄 없는 동물들의 비명과 억울함이 서려 있다. 오직 인간에게 입혀지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 평생을 보내야 하고, 잔인하게 도살되는 동물들의 고통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양윤아 디자이너는 이러한 동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비건타이거를 런칭했다. 물론 그가 처음부터 비건 패션을 지향한 것은 아니었다. 패션업에 종사하던 직장인 시절만 하더라도, 그에게 ‘서스테이너블’이나 ‘비건’은 관심 밖의 주제였다고.

당시에는 미디어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지 않았기에 비건 소재라는 것 자체를 몰랐어요. 저는 그냥 옷을 사고 입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죠. 하지만 동물 보호를 위해 들어간 NGO 단체에서의 3년간의 활동이 저를 변화시켰어요. 그곳에서 활동하면서 패션 산업에서 이뤄지는 동물 착취와 생명 경시에 대해 더 자세히 알게 되었거든요.

비건 패션을 시도하려고 마음먹었지만, 그 시장은 턱없이 좁았다. “제가 사려고 하는 옷들은 거의 다 동물성 부자재를 포함하고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인조 모피나 인조 가죽으로 만든 옷들을 선택하자니 패셔너블하지 않았어요. 어쩐지 당시에 제가 본 비건 패션은 진짜 동물 가죽과 모피를 입고 싶은 사람들에게 허락된 차선책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비건’보다 ‘옷’이 더 눈에 들어오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단다. ‘멋져서’ 선택했는데 알고 보니 ‘비건’이기까지 한 비건타이거는 그렇게 탄생했다. “털인데 동물의 털이 아니고, 가죽인데 동물의 가죽이 아닌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기존 패션 피플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을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멋지고 착해서 사랑받는 브랜드로 거듭나는 길

  • 비건타이거는 시즌마다 패션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콘셉트를 명확하게 정한 다음, 그에 맞는 소재와 프린트, 봉제 방법을 연구한다. 양윤아 디자이너는 입고 있는 옷을 들어 보이며 설명이 이어갔다. “이번 2023 F/W 시즌 컬렉션 옷 중 하나인데, 작년 한 해 우리나라에서 쓰인 실험동물이 무려 488만 마리였다고 해요. 그중 화장품 동물 실험에 가장 많이 희생되는 토끼를 활용해 디자인했어요. 안감은 폐페트병을 재사용한 리사이클 폴리에스터를 활용했고요.” 그제야 토끼 귀에 쓰인 ‘488’이라는 숫자와 안대를 쓴 토끼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렇게 옷이 담고 있는 메시지가 다소 심오할수록, 오히려 과감한 컬러와 개성적인 프린팅을 통해 ‘키치’한 느낌을 내는 것이 비건타이거만의 매력이라고 한다.
    인조 모피는 기본이고, 선인장 가죽, 와인 가죽, 오가닉 코튼, 리사이클 폴리에스터, 큐프라 원단, 텐셀 원단 등 비건타이거에서 활용되는 소재도 다양하다. 특히 한지의 원재료인 당나무에서 뽑아낸 실을 가공해 만든 한지 가죽은 국내에서 독점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비동물성 소재는 환경부담률도 낮고, 관리하기도 훨씬 쉬워요. 게다가 거친 털을 표현하거나 반짝이를 섞어서 가공하는 등 디자인 활용도 폭이 더 넓고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고요.”
    하지만 양 디자이너도 ‘착한 의도’ 하나만으로는 소비자의 지갑을 열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다. 특정한 신념을 추구하면서 시장에서의 상품성까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여타 브랜드가 공통으로 지닌 숙제일 테다.

    그래도 브랜드가 비건을 지향하기로 했다면, 일관성 있게 나아가야죠. 어떤 아이템은 비건으로 만들면서, 또 잘 팔리는 다른 아이템은 비건으로 만들지 않는다면, 사람들이 그 브랜드를 인정할 수 있을까요? 그것이야말로 ‘그린워싱’이 아닐까 싶어요.

동물들과 함께 웃는 패션의 미래

2018년 4대 패션위크 중 하나인 런던패션위크의 ‘퍼 프리(Fur-free)’ 선언을 시작으로, 패션계에도 모피 사용에 대한 비판적인 의식이 퍼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비건타이거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던 2016년까지만 해도 국내에 비거니즘이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고 한다. “비거니즘이 음식에 국한된 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에서 전반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임을 알리기 위해 3년간 비건 페스티벌을 진행했어요. 비거니즘을 친숙하게 만드는 작업이 필요했거든요.” 인조 모피의 매력을 알리는 광고 영상을 제작하고, 동물 단체에 의류 판매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하는 등 비건타이거는 자신들의 영향력이 미칠 수 있는 다양한 곳에 힘을 발휘한 바 있다.
어느덧 국내 패션계에 주목받는 브랜드로 성장한 비건타이거는 2020년 2월 국내 비건 패션 브랜드 최초로 뉴욕 패션위크에 오른 것은 물론, MBC <놀면 뭐하니>의 지미유(유재석)가 비건타이거의 옷을 착용하며 한 차례 화제를 몰기도 했다. 양윤아 디자이너도 비건 패션이 받는 관심이 나날이 커지고 있음을 체감하고 있단다.

패션 시장에서 동물성 소재가 차지하는 점유율이 줄어들고 있는 것 같아요. 동시에 비건 패션은 계속해서 호감을 사고 있고요. 비건 패션은 입고 있는 옷, 사려고 하는 옷이 어디에서 왔는지 고민하는 것부터가 시작이에요. 아우터 하나를 사더라도 이 옷의 소재가 어디에서 왔고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폐기된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떠올려 보는 거죠.

양윤아 디자이너는 앞으로 비건타이거가 패션뿐만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걸쳐 사람들의 비건 친화적 소비를 이끄는 브랜드로 거듭났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제까지 패션은 사회에 주요한 물음을 던지고 대화의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해왔다. 비건타이거 또한 비거니즘 메신저로서 지속 가능한 패션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해서 건넬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