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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수천 개의 섬과 만이 뒤엉킨 남동부 알래스카는 지구상에 남은 신성한 자연이 숨 쉬는 곳이다. 빙하, 고래, 곰…. 동화 속에나 등장할 듯한 흥분되는 광경은 알래스카의 마을로 향하는 뱃길에서 하나씩 베일을 벗는다.

[글·사진 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빙하의 바다를 지나 만나는 알래스카 마을

알래스카 남동쪽을 잇는 1,600㎞의 뱃길을 일컫는 말이 '인사이드 패시지'다. 1000여 개의 섬과 수천 개의 만들은 피오르드 해안선을 따라 깊게 늘어서 있다. 이방인을 실은 크루즈는 옛 원주민의 마을과 빙하의 바다를 지나 낯선 공간을 묵묵히 스쳐 지난다. 주노는 인사이드 패시지 뱃길 북단에 매달린 도시다. 미국 알래스카의 주도(중심도시)지만 뭍으로 닿는 길이 없다. 페리를 타거나 비행기로 다가서야 하는 외딴 공간에 이 도시가 들어서 있다. 알래스카에서 처음으로 금맥이 발견된 주노는 식민지 자치령에서 1906년 미국의 주도가 됐다. 도심 골목은 외지인과 원주민들이 공존하는 이채로운 풍경이다. 주노의 북쪽 외곽은 멘던홀 빙하계곡까지 이어진다. 알래스카의 마을은 옛 빙하가 녹아내린 비탈진 땅에 터를 잡은 모양새다. 경사진 언덕길과 비좁은 계단 골목은 주노의 오후 산책이 안겨주는 색다른 단상들이다.

'신의 자식'으로 불린 세계유산 빙하

주노는 빙하와 글레이셔베이 국립공원을 만나는 크루즈의 가장 가까운 기항지이다. 존스 홉킨스 빙하, 퍼시픽 빙하 등을 아우르는 글레이셔베이 국립공원은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돼 있다. 알래스카의 공기는 북쪽으로 다가설수록 외롭고 시리다. 빙하를 스친 바람은 살 속으로 파고든다. 베링해의 파도를 가른 배가 머무는 곳은 알래스카의 얼음 바다다. 알래스카 원주민들에게 수억 년 세월의 빙하는 '신의 자식'으로 불리는 영험한 존재다. 빙하는 소리로 첫인상을 남긴다. 거대한 빙하가 무너져 내리는 굉음은 파문을 만들어내고 감동은 뱃전까지 밀려든다. 이곳 빙하의 진수인 마조리 빙하 앞에서만은 모든 것들이 호흡을 멈추고, 빙하가 부서지는 소리만이 정적을 가른다. 글레이셔베이 국립공원의 빙하들은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부풀어 올랐다 스러지기를 반복한다. 빙하 뒤로는 페어웨더 산맥이 길게 드리워져 있다. 빙하의 여운은 수평선 위로 별이 뜰 때까지 어슴푸레하게 들썩인다. 언뜻 보면 거대한 고래 같기도 하고 몸을 웅크린 곰 같기도 하다. 알래스카 남부 원주민인 클링깃 족은 별과 바다는 토템 속 큰 까마귀가 만들어낸 피조물이라 믿고 살아왔다.

빙하계곡 끝, 외로운 도시 주노

달뜬 얼굴로 되돌아온 주노의 골목은 알래스카의 과거를 반추하게 만든다. 길목 한편에서는 흔하게 원주민 아저씨를 만난다. 옛 알래스카 주지사 관저에는 원주민의 토템 폴이 들어서 있다. 남동부에서 가장 오래된 세인트 니콜라스 러시아 정교회, 실물 독수리 둥지 등이 전시된 알래스카 주립 박물관 등은 주노에 얽힌 회상을 돕는다. 투박한 알래스카주를 상징하는 꽃은 앳된 물망초다. 물망초의 꽃말은 'forget-me-not'.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얘기다. 미국 본토와는 동떨어진 질곡의 과거를 지닌 땅, 원주민들의 숨결이 곳곳에 남은 외딴 마을의 자취는 물망초의 사연과도 멀지 않다. 주노 시청사 앞에는 잠시 러시아의 땅이었음을 추억하듯 러시안 만두(팔메니) 가게가 위치했다. 곳곳에는 인디언을 형상화한 벽화들이 담장을 채운다. 주노와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멘던홀 빙하는 헬기를 타고 올라 마주하면 윤곽이 또렷하다. 이곳에서는 개 썰매를 탈 수 있다. 주노는 고래투어의 출발 포인트이기도 하다. 여행자들은 대부분 크고 작은 망원렌즈를 들고 고래탐방선에 오른다. 탐방선은 링컨 아일랜드까지 고래를 보러 나선다. 운이 좋으면 상어를 잡아먹는다는 킬러 고래를 만날 수 있다.

헤인즈의 숲에서 야생곰을 만나다

헤인즈 마을에서는 곰을 만난다. 알래스카 회색곰인 그리즐리다. 코앞에서 야생곰을 보는 투어는 흥미진진하고 들뜬다. 바닷길 깊숙이 들어선 헤인즈는 대형 선박이 머무는 알래스카의 다른 도시들과는 사뭇 다르다. 좁은 수로는 번잡한 술집과 요란스러운 기념품 가게로부터 자유롭다. 대신 정갈한 무채색 담장의 목조가옥, 그 뒤로 연결되는 숲길, 작은 배가 닿는 포구와 마을주민들의 미소가 정답다. 헤인즈의 칠캣 주립공원 일대는 알래스카의 야생동물을 한 번에 만나는 포인트다. 연어를 우적우적 뜯어먹는 곰은 헤인즈의 칠캣 강으로 이어지는 길목에 살고 있다. 투어에 나서면 어미 곰을 따라 강변에서 주린 배를 연어로 채우는 회색곰 그리즐리를 만날 수 있다. 해달은 물길을 거슬러 오르고, 흰머리 독수리가 푸른 창공을 날아오른다. 알래스카에서 한번쯤 경험해 볼 낚시와 캠핑 역시 이곳 헤인즈가 탐나는 이유다. 알래스카의 야생 사진가 호시노 미치오는 그의 저서 [나는 알래스카에서 죽었다]에서 알래스카의 자연, 인디언, 토템과의 조우를 그려낸다. "숲과 빙하에 휩싸인 태고의 세계를 여행하고 싶었다"는 이방인의 염원처럼 알래스카에서 머문다는 것, 또 잠시 가로지른다는 것 자체가 전율이고 설렘이다. 스케그웨이는 헤인즈에서 짧은 뱃길로 연결되는 도시다. 피오르드 북쪽의 스케그웨이는 예전 금광으로 번성하다 쇠락했던 도시가 크루즈가 닿으면서 다시 분주해진 곳이다. 항구 주변으로는 서부영화에서 나올듯한 거리가 말끔하게 조성돼 있다. 마을은 흥미롭다. 골드러시 시기의 가장 오래된 가옥은 관광안내 센터로 변신했고 옛 술집과 홍등가도 유적으로 보존돼 있다. 광석을 실어 나르던 화이트패스 열차는 캐나다 유콘지역까지 아직도 추억을 싣고 오간다.

지구를 생각하는 알래스카 여행 Tip

1. 일회용품 NO!

빙하를 간직한 글레이셔베이 국립공원은 세계자연유산이다. 이곳 바다에서만큼은 빵조각, 담배 연기까지 엄격하게 규제된다. 국립공원 지대에 들어서면 공원 지킴이들이 배에 올라 자연에 누가 되는 일체의 행동을 제약한다. 바람에 날아갈 수 있는 비닐, 스티로폼 등은 아예 갑판으로 입장 금지.

2. 음소거

빙하의 진수인 마조리 빙하 앞에서만은 모든 소리는 일단 멈춤이다. 배 안의 엔진소리도 이때만큼은 '올스톱'. 모든 음향을 닫은 채, 빙하가 부서지는 소리만이 정적을 가른다. 알래스카의 자연을 만나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이 엄격한 룰에 기꺼이 동조한다.

3. 자연 그대로

알래스카의 도시와 마을은 외부와 격리된 경우가 다반사다. 가져간 쓰레기는 다시 챙겨가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개 썰매를 탈 수 있는 주노의 멘던홀 빙하에서는 정해진 길이 아니면 함부로 빙하를 밟고 다닐 수 없다. 빙하의 무분별한 훼손을 막기 위한 배려와 노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