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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심리학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 행동]를 옮겼고, 저서로는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등이 있다.

[글 박한선(신경인류학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인간은 누구나 속고 속인다. 토머스 홉스의 말에 따르면 인간은 외롭고, 비참하고, 잔인하고, 짧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여 있다. 과연 정말로 그럴까? 인간은 서로 믿을 수도, 믿어서도 안 되는 그런 비참하고 짧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속에서 살아가야만 할까?

인류는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고, 심지어 힘을 합쳐 전쟁도 벌이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높은수준의 문명을 건설하고 협력하는 세상을 만들기도 했다. 공감에 기반하여 병들고 소외된 사람을 위한 복지 제도와 의료 제도를 만들었다. 협력은 사실 조건 없는 사랑과 자비에서 비롯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서 시작한다. 소외된 사람을 돕는 것도 같은 원리라고 볼 수 있다. 자신에게 재난이 닥쳤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조건 자신의 것을 내어주는 사람을 천사가 아니라 '호구'라고 낮추어 말하는지도 모른다. 이렇듯 인간의 본성이 원래부터 이기적이라면, 이타적인 세상은 도대체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호구가 되지 않으려는 인류의 진화

인간은 호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아주 놀라운 인지적 능력을 진화시켰다. 바로 '타인을 식별하고, 그의 행동을 기억하는 능력'이다. 현대인은 수천 명의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들을 각각 다른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간의 후두엽에는 얼굴을 인식하는 별도의 부위가 있어서 타인의 얼굴뿐만 아니라 그의 행동과 수반되는 감정적 기억까지 같이 저장한다. 이러한 놀라운 인지 능력의 진화를 통해서 우리는 타인의 은혜에 보답하거나 철천지원수에게 복수할 수 있게 되었다. 각각의 사람과의 관계를 이른바 감정의 금전출납부에 기록하는 것이다. 출납부의 기록을 보고 도움을 줄지 보복을 할지, 아니면 좀 따져볼 것인지 결정할 수 있다. 장기적인 상호 관계의 대차대조표를 이용해서 행동을 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 번만 보고 절대 안 볼 사람이라면, 사기 치고 도망치는 것이 정답이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는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다른 사람이 알면 평판이 나빠진다). 피해를 입은 사람은 피해를 준 사람을 찾아내어 보복해야 정답이다. 즉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이다. 사기꾼 전략과 보복 전략은 서로 맞물리면서 적당한 수준에서 균형을 찾는다. 걸핏하면 사기를 치는 사람은 보복을 받아 제명에 죽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슬쩍슬쩍 기만 전략을 통해서 이익을 취하는 사람도 늘 존재한다. 협력과 배신의 전략은 점점 더 복잡하게 진행된다. 인간 사회에서 협력은 양 당사자에게 이익을 제공한다. 혼자서는 100만 원만 벌 수 있어도, 둘이 힘을 합치면 600만 원을 벌 수 있다. 협력해도 얻는 것이 없으면 누가 힘을 합칠까? 하지만 협력이 '만연'한 사회에서 배신은 더욱 유혹적이다. 협력하다가 마지막에 배신하면 모든이익을 독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방도 똑같은 생각을 한다면? 그럼 아무도 이익을 얻지 못하게 될 것이다.

협력과 배신의 토너먼트

앞서 말한 대로 로버트 액설로드는 이러한 몇 가지 조건을 두고 흥미로운 게임을 제안했다. 게임의 조건은 간단했다. 서로 협력하면 이익을 얻고, 배신하면 혼자 큰 이익을 얻지만, 상대는 큰 손해를 입는다. 둘 다 배신하면 둘 다 아주 보잘것없는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다. 전 세계의 학자들에게 각자 자신의 전략을 제시하며 토너먼트를 시작했다. 총 62개의 전략을 가진 선수가 출전했는데, 누가 승리했을까? 다음 선수 중에 어떤 선수가 우승했을지 골라보자.

1번 선수는 그냥 악당이다. 2번 선수는 앞서 말한 '호구'. 3번 선수는 '뒤끝 작렬', 4번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5번은 이상한 선수, 6번은 '사회적 평판을 중요하게 여기는 선수'이다. 이외에도 55개의 전략이 더 출전했지만, 대략 이 정도다. 아마 주변의 사람을 떠올려보면 각각의 전략을 주로 사용하는 선수가 생각날 것이다. 그리고 당신은 주로 어떤 전략을 사용하는지 생각해볼 수 도 있을 것이다. 과연 누가 승리했을까? 경기에서 승리한 선수는 4번 선수였다. 이를 어려운 말로 '팃포탯(Tit for Tat)' 전략이라고 한다. 팃(Tit)과 탯(Tat) 둘 다 의성어로 가볍게 소리가 나도록 때린다는 의미다. 일단 협력하되 상대가 배신하면 배신하는 팃포탯 전략은 상대가 다시 협력의 손을 내밀면 바로 용서하고 다시 협력하는 것이다. 아주 간단한 전략인데 이전략이 모든 전략을 압도했다.

가장 우수한 전략의 비밀

하지만 비밀을 말하자면 이 전략보다 더 우수한 전략이 있다. 바로 앞서 말한 팃포탯 전략보다 더 관대한, '두 번의 탯과 한 번의 팃' 전략이다. 한번은 상대가 배신해도 봐주는 것이다. 즉 왼뺨을 때리면 오른뺨을 돌려대고 겉옷을 달라 하면 속옷도 주는 것이다. 영국의 싱어송라이터 조앤아머트레이딩의 노래, 'Peace in Mind'에는 '분노는 천천히, 용서는 즉시(slow to anger, quick to forgive)'라는 가사가 나온다. 바로 관대한 팃포탯 전략(GTFT)'이다. '용서하면 마음이 편하니까, 혹은 나중에 선행을 쌓으면 천국에 갈 수 있으니까'라는 식의 논리가 아니다. 일반적인 상식에는 반하는 일이지만, 관대한 용서는 아주 강력하고 현실적인 진화적 적응 전략이다. 인류 역사상 이러한 전략을 취한 개체가 더욱더 높은 생존과 번식률을 보였다. 누가 오리를 같이 가자면 십리를 같이 가주어야 하는 이유다. 물론 호구가 되라는 말은 아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속아주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도, 사기꾼을 위해서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딱 한 번 정도는 잘못을 용서해주자. 그가 예뻐서도, 당신이 착해서도 아니다. 그렇게 한번은 용서해주는 것이 가장 현명하고 지혜로운 전략이기 때문이다.

믿음과 배신에 대한 영화 셋

토이스토리

  • 장르 | 애니메이션/코미디
  • 감독 | 존 라세터
  • 출연 | 톰 행크스, 팀 알렌 등

우디는 6살 앤디가 가장 아끼는 카우보이 인형이다. 어느 날나타난 최신 액션 인형 버즈로 인해 최고 인기 인형의 자리에서 밀려난 우디. 우디는 기세등등한 버즈를 없앨 계획을 세우지만, 서로 힘을 합쳐 살아남으며 라이벌이었던 그들은 진정한 친구가 된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명작으로 꼽히며, '애니메이션이 단순한 어린이용 볼거리'라는 편견을 깨뜨린 영화. 카우보이와 우주전사의 목숨을 건 모험을 통해 진정한 우정과 협력의 미덕을 배울 수 있다.

신세계

  • 장르 | 범죄/드라마
  • 감독 | 박훈정
  • 출연 | 이정재, 최민식, 황정민

경찰청 수사기획과 강과장은 국내 최대 범죄조직 '골드문'의 세력확장을 막기 위해 신입 경찰 이자성에게 잠입 수사를 명한다. 그로부터 8년 후, 자성은 골드문의 2인자이자 실세인 정청의 오른팔이 된다. 골드문 회장의 사망으로 시작된 후계자 전쟁, 경찰의 '신세계' 작전이 펼쳐지면서 자성은 시시각각 신분이 노출될 위기에 처한다. 언제 자신을 배신할지 모르는 경찰과, 형제의 의리와 믿음으로 자신을 대하는 정청 사이에서 누구를 믿어야 할까.

부당거래

  • 장르 | 범죄/드라마
  • 감독 | 류승완
  • 출연 | 류승범, 황정민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는 명대사를 남긴영화. 전국의 호구들이 이 대사를 듣고 울부짖었다고…. 온 국민을 충격으로 몰아넣은 연쇄살인 사건의 계속된 검거 실패로 대통령이 직접 사건에 개입하고, 경찰 수사 중 유력한 용의자를 사망에 이르게 하면서 경찰은 궁지에 몰린다. 가짜 범인을 만들어 사건을 종결하려 하는데…. 서로 속고 속이는 지독하게 꼬인 영화 속 그들의 거래가 왠지 낯설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