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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심리학


인류는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거짓말을 해왔다. 거짓말은 나쁜 일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 왜 하는 걸까? 자신이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이라면, 반대로 거짓말을 극도로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이 달의 칼럼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글 박한선(신경인류학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박한선(신경인류학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 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 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등을 썼다.

타고난 거짓말쟁이, 인간

거짓말을 하려면 고도의 인지 능력이 필요하다. 상대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해야 한다. 그리고 거짓말을 통해 얻는 이득과 손해를 판별하고, 거짓말이 들통날 경우에 입을 피해도 계산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서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억지로 설득한다는 느낌은 주지 않아야 한다. '자연스럽게' 해야 속아 넘어간다. 인간처럼 큰 뇌를 가진 동물만 가능한 일이다. 거짓말은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물론 동물이 거짓된 행동을 했다는 보고가 있지만, 인간의 '찬란한' 거짓말에 비견할 일이 아니다. 인간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이되면 제법 정교한 여우짓을 할 수 있다. 거짓말을 못하는 여우가 들으면 억울하겠지만. 아마 거짓말은 인간이 언어를 가지게 되면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말은 화석에 남지 않으므로 인류학적 논란이 분분하다. 3만 년 전이라는 주장부터 수백만 년 전이라는 주장까지 있다. 인류는 아마 약 20만 년 전부터 상당한 수준의 언어 능력을 갖게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요한복음 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태초에 말이 있었다". 아마도 '거짓말'도 그때부터 있었을 것이다. 거짓말쟁이가 많아지면 거짓말쟁이를 색출하는 능력도 함께 진화한다. 거짓말에 속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심리학적 군비경쟁이 시작된다. 거짓말쟁이의 마음은 점점 초조해진다. 아무리 좋은 스텔스기를 개발해도 곧 이를 탐지하는 더 좋은 레이더가 나오니 말이다. 결국 '특이점'을 넘은 거짓말이 등장한다. 바로 자기 자신도 속아 넘어가는 거짓말, '자기기만'이다. 자기 자신도 진실로 믿어버리면, 그에게는 진실이나 다름없다. '본인이 그렇게 믿고 있다는데' 뭐라고 하기 어렵다. 그래서 최고의 거짓말쟁이는 스스로 거짓말쟁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그들이 흔히 하는 말이 바로 이거다. "저는 천성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올시다."

거짓말쟁이의 가혹한 심판

사실 거짓말은 누구나 한다. 그 때문에 보통은 타인의 거짓말에 대해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지 못한다. 할머니 장롱의 눈깔사탕을 몰래 먹고 양 볼이 불룩해진 손주를 생각해보자. 사탕을 먹었냐고 추궁하자 귀여운 볼만 가로젓는다. 입을 벌리면 사탕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귀여운 손주를 본 할머니는 어떻게 할까? 경찰에 신고하여 즉시 체포할까? 저잣거리에 거꾸로 매달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뒷돈을 받고 안 받았다고 우기는 정치인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을 했으니 물론 벌을 받겠지만, 그렇다고 사형을 시키지는 않는다. 누구나 욕심이 있고, 누구나 곤경에 처하면 거짓말로 상황을 모면하고 싶어한다. 자신도 종종 거짓말을 하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타인의 거짓말에 대해서도 너그럽게 봐줄 수 있다.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자기기만에 빠진 사람은 그렇지 않다. 본인 스스로 '절대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한다. 반성이든 후회든 절대 발붙일 수 없다. 이들에게 거짓말쟁이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마땅한 사람이다. 어떻게 거짓말을 하느냐고 몰아세우며 길길이 날뛴다. 알고 보면 본인이야말로 '특이점이 온 거짓말쟁이'인데 말이다.

인간의 무의식에 자리한 이드나 초자아 일부는 강력한 힘으로 기억을 왜곡시킬 수 있다. 억압되고 변형된다. 실제 있었던 일을 부정하거나 없었던 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일어난 사건에 대한 감정이나 태도도 바뀔 수 있다. 호감은 악감으로 바뀌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거짓말의 역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히스테리아 환자들이 어린 시절에 성적 학대를 받은 적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그래서 히스테리아는 유년기 성적 학대가 원인이라는, 이른바 유혹 이론을 제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생각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최면중에 말하는 내용은 의사의 암시에 따라 이리저리 왜곡되었다. 꿈과 자유연상의 내용은 본인의 무의식적 욕망을 반영하는 일이 잦았다. 이들이 받았다는 성적 학대의 경험담은 사실 스스로 지어낸 성적 판타지였던 경우가 많았다. 인간의 무의식에 자리한 이드나 초자아 일부는 강력한 힘으로 기억을 왜곡시킬 수 있다. 억압되고 변형된다. 실제 있었던 일을 부정하거나 없었던 일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일어난 사건에 대한 감정이나 태도도 바뀔 수 있다. 호감은 악감으로 바뀌고, 가해자와 피해자의 위치가 바뀌기도 한다. 누군가에 대한 짝사랑의 기억이 짝사랑을 받는다는 기억으로 바뀌고, 다시 그 대상이 자신을 스토킹한다는 상상으로 바뀐다. 이러한 무의식적 욕망과 방어, 초자아의 검열은 어지럽게 섞이면서 스스로도 무엇이 진실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 빠지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진실과 거짓이 완벽하게 등가의 위치에 있게 되면 자기기만의 이익이 사라져버린다.

자기기만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타인의 거짓을 관대한 눈으로 바라보자. 너그럽게 타인을 바라보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도 조금씩 너그러워진다.

정신과 의사마저도 무엇이 진실인지 알아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철학자 알프레드 밀은 자기기만이 성공하려면, 동시에 두 가지 상태-진실이라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거짓이라고 생각하는 상태-가 가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완벽한 자기 기만적 거짓말을 하는 사람의 영혼 어딘가에는 '이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신은 '확실하게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있는가? '강한 감정이 동반된 기억'이나 '절대 의심할 수 없는 믿음'이 있는가? 그렇다면 역설적으로 그것은 자기기만적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아주 나약한 존재다.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 보인다. 자기기만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면 타인의 거짓을 관대한 눈으로 바라보자. 너그럽게 타인을 바라보다 보면, 자기 자신에게도 조금씩 너그러워진다. 시간이 오래 걸리겠지만 점점 자기 자신에게도 꼭꼭 숨길 수밖에 없었던 내적 진실이 조금씩 고개를 내밀 것이다. 내가 나에게 숨겨야만 했던 진실이다. 그 진실을 마주할 때 좀 더 성숙해질 것이다

귀여운 거짓말, 무서운 거짓말 영화 셋

거짓말의 발명

  • 장르 코미디/로맨스
  • 감독 릭키 제바이스, 매튜 로빈슨
  • 출연 릭키 제바이스, 제니퍼 가너

거짓말이 없는 세상이 있다면 어떨까? 사람들은 너무 솔직해서 마음을 숨길 수도 거짓말을 할 수도 없다. '거짓말'이라는 단어조차 존재하지않는 세상. 주인공은 거짓말을 '발명'해낸다. "내가 만약 사실이 아닌 걸 말하면 어떻게 될까?" 주인공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를 둘러싼 세상이 뒤바뀌기 시작한다. 거짓말은 나쁜 것일까, 좋은 것일까?

라이어 라이어

  • 장르 코미디
  • 감독 톰 새디악
  • 출연 짐 캐리, 마우라 티어니

거짓말을 너무 잘하는 남자 플레처는 소송에 이기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질 변호사다. 그의 아들 맥스는 생일파티에 꼭 오기로 한 아빠가 약속을 지키지 않자 '아빠가 하루만이라도 거짓말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데…. 맥스의 소원이 이뤄지고 플레처는의지와 상관없이 솔직하고 정직한 말만 하게 된다. 짐 캐리의 연기가 몰입감을 더한다.

리플리

  • 장르 범죄, 스릴러
  • 감독 안소니 밍겔라
  • 출연 맷 데이먼, 기네스 팰트로, 주드 로

별 볼 일 없는 삶을 가진 20대의 리플리. 우연히 찾아온 기회 덕분에 대부호의 아들과 어울리게 된다. 뛰어난 연기력, 거짓말과 서명 위조까지 잘하는 리플리는 결국 친구를 죽이고 신분을 위조해 친구 행세를 하면서 산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이 원작이며,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용어도 여기서 유래했다. 기네스 팰트로와 주드 로의 풋풋한 모습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