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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愛가면


흔히 영혼을 달래는 음식쯤으로 사용되는 '소울 푸드'는 미국 남부 노예 제도에서 비롯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전통 요리를 통칭하는 말이다. 1960년대 중반, 아프리카계 미국인에 관한 것에 자주 붙이던 '소울'(Soul)이라는 말이 정착한 용어다. 그 유래야 어떻든 음식은 곧잘 아련한 추억을 품는 법. 한 그릇의 음식은 오감에 새겨지고, 잊히지 않는 맛은 그때, 그곳의 기억을 소환하는 힘을 지닌다. 지역을 대표하는 맛은 어떻게 태어났을까? 그 기원을 찾아 '소울 푸드 여행'에 나섰다.
[글 편집실]


BUSAN

전쟁 속 피난민들의 상처를 보듬던 부산
돼지국밥

부산역에 내리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밀양이나 대구 등 인근 도시에서도 역사 깊은 그 음식을 맛볼 수 있지만 어쩐지 부산에서 먹어야 진짜 원조를 경험한 기분이 드는 '돼지국밥'이 그것이다. 소고기로 끓인 설렁탕과는 달리 돼지 육수 특유의 강렬한 향취가 매력인 돼지국밥은 돼지 뼈를 삶은 국물에 돼지고기 편육과 부추, 매운 양념, 새우젓 등을 넣어 먹는 국밥 요리로, 부산의 대표 향토 음식으로 꼽힌다.

돼지국밥의 유래에는 다양한 설이 있으나 6.25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비교적 구하기 쉬운 돼지 뼈와 부속물을 이용해 만들어 먹은 음식이라는 이야기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밀양 돼지국밥은 육수에 소뼈를 사용하고 대구는 향신료와 내장 부위를 다양하게 사용하는 반면, 부산 돼지국밥은 돼지 뼈를 우려 국물을 내고 그 위에 부추양념을 얹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고 부산 어느 가게에서나 똑같은 맛의 돼지국밥을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게마다 재료나 조리 방법,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 등이 다양해 부산에서 자신의 입맛에 맞는 돼지국밥을 찾아보는 것도 묘미다. 한편, 돼지국밥은 지난해 미래세대에게 남겨줄 부산의 유산인 '부산 미래유산'으로 꼽혔을 만큼 부산 시민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JEJUDO

기분 좋은 잔칫상에 오르던 귀하신 몸,
제주 몸국

봄이 가장 먼저 닿는 제주. 제주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이라면 흑돼지구이와 고기국수, 성게 미역국과 갈치구이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몸국'은 어떠한가? 외지인들에게는 그 이름도 생소한 몸국. 그도 그럴 것이 몸국은 제주인들의 잔칫상에나 오르던 귀한 음식이었기에 외지인이 접할 기회는 드물었을 터다. '몸'은 모자반의 제주 방언이다. 예로부터 제주에서는 관혼상제와 같은 특별한 날에 소 대신 돼지를 잡았는데, 소를 여유롭게 사육할 수 없었던 환경에서 번식력이 왕성한 돼지는 집집마다 가둬 기르며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동물이었다. 때문에 집안 대소사에는 돼지를 도축해 잔치를 치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잔칫날 두세 마리 정도를 잡아 부위별로 삶아내면 그 국물은 우러날대로 우러나 진국이 된다. 이 육수를 잔치기간 동안 동네 사람들과 나눠 먹기 위해서는 갖가지 식재료들을 넣어 양을 불려야 했다. 이때 제주 갯바위에 널린 모자반을 걷어다가 넣어 끓인 것이 몸국이다. 돼지고기 육수에 모자반과 김치, 미역귀 등을 넣어 끓이다가 메밀가루를 풀어 넣고 한 차례 더 끓이면 걸쭉하면서도 깊은 맛의 탕요리가 완성된다. 그 맛은 제주의 바다를 품고 있다.

NAJU

고향을 떠나온 헛헛함을 채워준
나주 삭힌 홍어

요즘 트렌드인 '뉴트로'를 여행 콘셉트로 삼는다면 나주 영산포 뒷골목은 멋진 목적지가 될 듯하다. 예로부터 곡창지대였던 데다 영산강 뱃길을 이용해 각 지역의 물자를 실어 나르기 용이했던 영산포구는 일제강점기 때 수탈지로 이용되며 많은 일본식 가옥이 세워졌고, 현재에도 그 잔재가 그대로 적산가옥 거리로 남았다. 여기에 70~80년대를 떠올리게 하는 산동네 골목길까지 더해져, 혼재된 시간이 공존하는 묘한 풍경을 이룬다. 여기에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강렬한 향과 맛을 지닌 삭힌 홍어다. 영산교를 지나면 홍어거리가 조성돼 있을 만큼 영산포 홍어는 유명한데, 거리 초입부터 방문객을 맞는 특유의 삭힌 홍어 냄새가 심상치 않다. 고려 말 흑산도를 비롯한 전라도 섬에는 왜구의 침입이 잦아 섬 주민들을 육지로 대피시키는 공도정책이 실시됐는데, 이에 따라 흑산도 주민들은 배를 타고 목포를 거쳐 영산강을 거슬러 올라와 나주에 주로 정책했다고 한다. 이주해서도 이들의 어업은 계속돼 흑산도 인근에서 고기를 잡아 배에 싣고 육지로 돌아왔는데, 다른 생선은 부패해 먹을 수 없게 됐지만 배 안에서 자연 발효된 홍어는 먹어도 탈이 나지 않아 계속 먹게 된 것이 이곳의 명물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