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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인도네시아 발리를 수식하는 언어들은 명료하다. 발리는 한때 허니문 열망지로 이름을 떨쳤고, '신들의 섬'으로 섬겨지는 아시아 최고의 휴양지다. 서핑, 풀빌라 등 화려한 포장을 한 꺼풀 걷어내면 예술과 맛, 치유가 깃든 소담스러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발리섬의 중앙 고원지대로 연결되는 길목에 '힐링의 땅' 우붓은 들어서 있다.

[글·사진 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배경

우붓에서의 일과는 유쾌하다. 식재료를 사기 위해 새벽시장을 기웃거리는 일, 펑퍼짐한 요가 바지 차림으로 골목을 서성거리는 행위들이 일상이 된다. 숲에 의지한 숙소에서 눈을 뜨거나, 논두렁 길을 산책하는 시간 역시 홀가분하다. 우붓이라는 이름은 옛 발리어 'Ubad'에서 유래했으며, '치유'의 의미가 담겨 있다.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는 발리 우붓이 배경으로 나온다. 화면에는 맨해튼의 저널리스트였던 한 여인이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자아를 찾고, 사랑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우붓은 영화처럼 느린 템포의 삶이 흐르는 곳이다. 코끼리 조각상으로 장식된 대문을 열면 배낭여행자의 게스트하우스로 이어지고, 이방인들은 현지 주민이 된 듯 요가 매트를 맨 채 자전거를 타고 거리에 나선다. 이끼 낀 연녹색의 골목, 짙은 향료 섞인 음식들은 우붓의 향취를 단장하는 오브제가 된다.

빠당푸드 맛보는 전통 백반집 '와룽

우붓에서의 맛에 대한 탐닉은 체험과 친숙하다. 숲속에서 진행되는 쿠킹클래스는 다른 지역과 사뭇 다르다. 관광객들로 북적이던 우붓시장은 새벽 시간이 되면 현지인을 위한 '일상의 물건'들로 채워진다. 채소, 과일 등 그날의 식재료를 구입한 뒤 음식을 직접 다듬고 배우며 만들어 먹을 수 있다. 채식주의자를 위한 '비건' 식단은 쿠킹클래스의 주요 프로그램이다. 우붓의 현지 음식을 맛보려면 '와룽' 식당을 두드린다. '와룽'은 현지인이 찾는 백반집 같은 곳으로 생선튀김, 국, 밥 등을 골라먹는 빠당 푸드를 파는 가게다. 여기에 발리식 아이스티인 '에스떼' 정도를 곁들이면 궁합이 맞는다. 인기 높은 와룽 식당은 외지인들 발길에 문전성시다. 구운 통돼지인 바비굴링이나 방목한 돼지에 소스를 바른 '스페어 립' 등은 놓치기 아쉬운 별미다. 이들 음식에는 공깃밥인 '나시뿌띠' 한 그릇이 곁들여진다.

인도네시아의 주종교가 이슬람이지만 발리섬 인구 90%는 토착신앙과 결합된 힌두교를 믿는다. 이슬람에서 금기인 돼지고기가 이 지역 잔치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메뉴로 등장하는 이유다. 매콤한 발리식 소스인 '삼발'은 볶음밥, 볶음국수인 나시고랭, 미고랭 외에도 꼬치구이 사테 등 대부분 음식에 함께 나온다. 즐겨 먹는 삼발 소스의 종류만 10여 가지가 넘는다. 매년 봄 열리는 '우붓 푸드 페스티벌'의 지난해 테마는 'Spice up The World(세계를 양념하다)'였다.

세계적 명성 지닌 발리 예술의 중심

우붓이 인도네시아 예술 도시로 자리 잡게 된 사연은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자바에서 번영하던 힌두 왕국이 발리로 망명하면서 함께 건너온 예술가들은 우붓에 터를 잡고 전통예술을 이어왔다. 발리 전통 회화인 바뚜안 외에도 은세공 작품, 석조 공예품 등은 신들에게 바치는 공물로 쓰였다. 발리의 자연과 예술에 감명받은 유럽 미술가들이 20세기 초부터 찾아들었고, 전통예술에 서양 미술 기법이 가미되며 '발리식' 작품들은 완성도를 높였다. 별도의 미술관 투어가 있을 정도로 우붓 곳곳은 갤러리들이 넘쳐난다. 뿌리 루끼산 미술관은 네덜란드 화가 루돌프 보네와 우붓왕가가 1950년대 함께 오픈한 곳이며 블랑코 르네상스 미술관에서는 '발리의 달리'로 불리던 스페인 화가 블랑코의 독특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발리의 예술가 네까의 방대한 컬렉션을 엿볼 수 있는 네까 미술관은 현지 예술의 흐름이 담겨 있다.

우붓의 랜드마크는 '뿌리 사렌 아궁'으로 불리는 왕궁이다. 우붓의 마지막 왕이 1900년대 초반까지 거주했던 삶터는 이방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열려 있다. 왕궁을 배경으로는 해 질 무렵이면 발리 전통 공연인 바롱 댄스가 펼쳐진다. 왕궁 건너편은 우붓 시장으로 이 지역의 심박동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우붓 시장에서 '잘란 하노만'으로 연결되는 뒷골목에 대부분의 맛집 식당들이 몰려 있다. 중심가로 알려진 '잘란 몽키 포레스트'는 왕궁에서 원숭이 숲인 몽키 포레스트로 이어지는 길이다. 여행자를 위한 깔끔한 레스토랑은 이곳에 오밀조밀하게 들어서 있다. 길모퉁이 골목에서 아담한 갤러리, 식당과 불현듯 조우하는 일상들이 우붓을 배회하는 소소한 재밋거리다.

화산호수와 고기잡이 바다의 앙상블

우붓은 외곽으로 벗어날수록 진면목을 선사한다. 북쪽 산악지대인 낀따마니는 반전의 땅이다. 화산이 열리고 산정호수가 광활한 자태를 드러낸다. 낀따마니의 바뚜르산은 20여 차례나 폭발한 전력을 지닌 활화산이다. 바뚜르 호수는 화산 분화구가 침몰하며 형성된 호수로 지름이 13km에 달한다. 비좁은 호숫가길을 따라 마을 깊숙이 내려서면 한가롭게 낚시를 하는 촌부들의 일상과 호숫가 마을 사람들의 삶터, 사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화산토가 어우러진 낀따마니 일대는 질 좋은 발리 커피를 수확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외딴 발리의 산정호숫가 마을에서 그들만의 의식을 지켜보는 것은 색다른 볼거리다. 종교와 축제가 결합된 다양한 행사는 발리 사람들의 일상에 가깝다. '오달란' 등 마을 사원의 창립일 날 치러지는 축제에 주민들은 전통의상으로 곱게 차려입고 참석한다. 이때 종종 신들에게 음식을 보내기 위해 꽃과 장식으로 꾸민 전통 음식을 머리에 이고 가는 현지인들을 만날 수 있다. 우붓에서 낀따마니를 잇는 길목인 뜨가랄랑 마을은 계단식 논으로 유명하다. 우붓에서 차량으로 두 시간 남짓 남쪽으로 달리면 발리의 바다다. 닭 모양의 형상을 한 발리에서 발목 아래쪽에 해당하는 지역에는 발랑안, 빠당빠당 등 어여쁜 비치들이 밀집해 있다. 발리의 바다 중 가슴에 남는 해변은 짐바란이다. 짐바란 일대는 본래 어부들의 오랜 삶터였다. 짐바란의 끄동안 어시장과 해산물 레스토랑은 여행자들의 단골 방문코스다. 아침 무렵 햇살을 머금은 짐바란 해변은 고깃배가 너울거리고, 어부들이 그물을 던지는 아득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tip. 지구를 생각하는 인도네시아 우붓 여행

쓰레기 줄이기 위해 환경세 부과

한해 약 6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발리 섬은 최근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이기 위해 비닐봉지, 플라스틱 빨대, 스티로폼 등의 사용을 규제했으며, 환경오염과 문화재 훼손 문제 해결 차원에서 외국인 관광객에게 10달러의 환경세를 부과하는 조례를 추진 중이다. 여행자들에게도 세계적 여행지를 지켜내려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힐링의 시간을 위한 슬로우 투어

우붓의 대표적인 투어는 숲과 언덕과 논두렁길을 걷는 것이다. 자연의 코스를 걸으며 새 소리를 듣고, 벼가 자라는 모습을 보고, 아침 바람을 느끼는 힐링의 시간을 갖는 데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 우붓에서는 자전거도 주요한 여행수단이다. 낀따마니 화산지대 사이클링은 인기 투어중 하나로 발리의 마을과 문화, 자연을 고스란히 만나는 기회가 주어진다.

자연을 생각한 친환경 쉼터

우붓의 숙소는 남쪽 발리 해변의 리조트들과는 다르다. 고급 리조트일수록 열대우림 깊숙이 들어서 있으며 친환경을 표방하는 곳도 다수다. 스파, 수영장 역시 자연경관을 훼손하지 않은 채 숲과 공존한다. 첨단 편의시설을 최대한 배제한 자연친화적 숙소에서 묵어보는 시간이 마련된다. 숙소에서는 요가를 배우며 채식을 하는 프로그램도 갖춰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