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COLUMN

우주의 시작부터 함께한 수소와
황금률 이야기

writer이독실
과학칼럼니스트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의 특징을 알고 싶다면 무엇부터 공부해보는 것이 좋을까. 시공간, 빅뱅 우주론, 핵융합, 블랙홀, 암흑에너지 등 다양한 요소들이 있지만 반드시 확인하고 가야 하는 것은 수소에 대해서이다.
우리 우주에 가장 흔한 원소는 수소이다. 가장 많은 양이 있는 수소와 두 번째로 많은 헬륨의 질량비는 3:1로, 우주의 원소들 중 수소가 무려 75%를 차지하고 있다. 수소 질량의 ⅓에 불과한 헬륨이 나머지 대부분을 차지한다. 수소 원자(1H)는 가장 단순한 원자로 양성자 1개와 전자 1개로 이루어져 있다. 빅뱅 직후,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만들어지고 이들이 결합하면서 원자들이 만들어졌는데, 양성자 → 중성자 반응보다 중성자 → 양성자 반응이 조금 더 오랫동안 일어났다. 그래서 우주에는 양성자가 훨씬 많다. 이 양성자가 바로 수소 원자핵이다. 시간이 지나 수소 원자들이 중력으로 인해 서로 뭉치기 시작했다. 온도와 압력이 올라가고 어느 순간 핵융합 반응이 시작되었다. 별이 만들어진 것이다. 별을 구성하는 수소의 양에 따라 별의 수명과 미래가 결정된다. 즉 수소는 우리 우주를 이루는 가장 흔한 물질이며 가장 단순한 원소이자 별들이 빛나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 정도면 우리 우주를 알기 위해 수소에 대해 아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수소하면 생각나는 이미지는 ‘뽁’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물을 전기분해하는 실험을 했다. 수소와 산소가 반응하면 물이 되는데, 전류를 사용해서 반대로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는 실험이다. 수소는 (-)극에서, 산소는 (+)극에서 만들어진다. (-)극에서 올라오는 기체가 수소라는 것은 불을 붙여보아 확인할 수 있다.
실험은 간단하다. 전류가 흐르고, 전극 위로 기포가 올라오고, 각 전극의 기체들이 2:1의 부피비로 모인다. 산소 기체를 포집한 시험관에는 꺼져가는 성냥불을 넣어서 다시 불꽃이 확 살아나는 것을 확인하고, 수소 기체를 포집한 시험관에는 불을 붙여보는 실험이다. 먼저 산소의 조연성을 확인한다. 다 꺼진 성냥의 불꽃이 확 되살아나는 것을 본 뒤 수소 기체 실험으로 넘어간다. 수소 기체는 공기보다 가볍기 때문에 시험관을 뒤집어서 모은 뒤 그대로 꺼낸다. 불붙인 성냥을 시험관 입구로 가져간 그때, “뽁!” 순간적인 불꽃과 함께 예상외의 큰 소리가 났다. 실험 전 책에서 확인한 내용은 작은 ‘펑’ 소리와 함께 연소한다는 것이었으나 직접 들은 소리는 예상보다 훨씬 큰, 분명한 ‘뽁’이었다. 어쩌면 그리 큰 소리는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바로 눈앞에서 수소에 불을 붙여 본 어린 날의 기억은 아직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다.
밤 하늘 이미지
우주에 수소가 가장 많은 이유는 수소의 원자핵이 양성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결합한 형태인데, 예컨대 탄소(12C) 원자핵은 양성자 6개(중성자 6개)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력 발전의 연료가 되는 우라늄(235U)은 원자핵이 무려 양성자 92개, 중성자 143개로 이루어져 있다.
원소의 종류는 원자핵의 양성자의 개수로 결정된다. 구조가 아주 단순해서 양성자 1개로만 이루어진 원소도 있고, 양성자 2개(+ 중성자 2개)로 이루어진 원소도 있다. 우리는 양성자 1개인 원소를 수소로, 양성자 2개인 원소를 헬륨이라고 부른다. 즉 우주에 수소가 가장 많은 이유는 양성자 하나로 이루어진 단순한 원소이기 때문이다. 헬륨이 두 번째로 많은 이유도 비슷하다. 양성자 2개씩을 가진 단순한 형태의 원소이기 때문인데 정확하게는 우주에 중성자가 적기 때문이다.
빅뱅 우주론에 의하면 빅뱅 직후 양성자와 중성자가 7:1의 비율로 만들어졌다. 양성자 14개와 중성자 2개의 비율이며, 이 중 중성자 2개가 양성자 2개와 결합하여 헬륨 원자 1개가 되고 남은 양성자 12개는 그대로 수소 원자 12개가 되었다. 즉 수소와 헬륨의 개수 비율은 12:1이고, 헬륨은 수소보다 4배 무거우므로 수소와 헬륨의 질량비는 12:4, 즉 3:1인 것이다.
빅뱅 직후 우주는 매우 뜨거워서 우주 전체에서 핵합성이 일어났는데, 우주가 빠르게 팽창하며 식어서 합성은 주로 헬륨까지만 일어났다. 만약 높은 온도의 상황이 좀 더 오래 지속되었다면 양성자가 여러 개인 무거운 원소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빅뱅 이후 3분 후 이미 우주의 온도는 핵합성이 가능한 온도 아래로 떨어졌다. 헬륨보다 무거운 대부분의 원소들은 별의 중심에서 핵융합을 통해, 혹은 초신성 폭발로 인해 만들어졌다.
수소원자이미지1
수소 원자핵은 양성자 그 자체이다. 양성자에 전자 하나를 더하면 수소 원자가 된다. 물의 전기분해 시 수소 기체가 (-)극에서 만들어지는 이유이다. 물속에서 수소 원자핵인 H+이온(H3O+이온)은 전자가 풍부한 (-)극에서 전자를 받아 수소 원자가 된다. 그런데 양성자 1개에 전자 1개인 수소 원자는 안정적으로 혼자 존재할 수 없다. 전기적으로 중성이라는 것은 원자가 안정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원자 내에서 전자들은 전자껍질을 채워나가는데, 각 전자껍질을 안정하게 하는 전자의 수는 정해져 있다. 원자핵에 가까운 제일 안쪽 껍질은 2개의 전자가 들어갈 때 안정적이다. 그래서 수소 원자들은 두 원자가 힘을 합친다. 자신들의 전자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 결합에 참여한 두 수소 원자는 각각 자신의 전자 1개를 공유하기 위해 내놓는다. 그 결과 두 원자 모두 전자 2개씩을 가진 셈이 된다. 이렇게 공유결합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기체 상태의 수소는 단일 원자 H가 아닌 H2분자의 형태로 존재한다.
산소는 총 8개의 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첫 번째 껍질에 2개를 채우고 최외각전자로 6개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두 번째 껍질은 8개를 채워야 안정적이다. 산소가 안정해질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일까?
전자 2개가 모자라기 때문에 자신도 2개를 공유하면 된다. 그럼 나만의 전자 4개(고립전자쌍 2쌍), 공유된 전자 4개(공유전자쌍 2쌍)해서 총 8개의 전자를 가질 수 있다. 이렇게 공유된 전자가 4개, 즉 2쌍인 경우를 이중결합이라고 한다. 즉 산소 기체는 이중결합을 가진 O2분자의 형태로 존재한다. 같은 원리로 질소는 전자 3개씩을 공유하여 N2분자를 이루는데 공유전자쌍이 3쌍이므로 삼중결합을 이룬다고 말한다.
안정적이 되기 위해 필요한 전자 개수만큼 자신도 공유를 한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의 원칙이 원자 하나하나에 적용되어 있는 우주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물론 한 원자가 일방적으로 공유전자쌍을 제공하는 배위공유결합도 있다. 모든 윤리적 사회는 언제나 예외가 존재하고 비윤리도 실재한다.)
수소원자이미지2
헬륨이 어떤 형태로 존재할지 예상해보자. 헬륨은 양성자 둘로 이루어진 원자핵과 전자 둘을 가지고 있는 원자이다. 첫 번째 껍질은 전자 두 개를 채우면 안정적이라고 했다. 중성상태의 헬륨 원자는 이미 첫 번째 껍질에 전자 두 개를 채운 상태이다. 헬륨은 아무것도 공유할 필요가 없으므로 He2분자를 이루지 않고 He 원자 상태 그대로 존재한다. 이렇게 원자 하나로 이루어진 분자를 단원자분자라고 한다. 스스로 안정하기 때문에 다른 원자와 공유결합을 할 필요가 없으니 반응을 하지 않는다. 지구 대기에 있던 헬륨은 워낙 가벼운 관계로 일찌감치 우주로 날아가 버렸다.
1868년 피에르 장센은 일식 때 태양의 스펙트럼을 관측한 결과 지구에 존재하지 않는 원소가 태양에는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리스 신화의 태양신 헬리오스의 이름을 따서 헬륨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원소를 지구에서 발견하고 생산하게 된 것은 20세기의 일이다. 주로 지구 내부의 방사성 원소가 붕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
황금률을 따르는 수소는 물의 형태로 지구에 풍부하게 존재한다. 반면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 안정적인 헬륨은 우주에는 그렇게 풍부함에도 지구에서 발견된 것이 불과 100여 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아무것도 공유하지 않는 혼자 잘난 원소는 우리 지구에 발붙일 곳 없다고 알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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