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봉계주(筆鋒繼走)

지나간 것을
너무 슬퍼하지 말자

writer정보보안센터 보안운영부 김예솔 직원

벌써 스페인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지 5년이 다 되어간다. 지난 2018년, 20대 초반의 나는 카자흐스탄에서 온 3명의 동생들과 스페인에서 6개월 동안 함께 생활했다. 스페인어도 할 줄 몰랐던 우리는 타지에서 외로움과 즐거움을 공유하며 지냈고, 서로의 문화를 이해시켜주려 노력했다.
가끔 한식이 그리웠던 나는 마트에서 최대한 한식 재료를 찾아서 친구들에게 해주었고, 그중에 떡볶이와 콩나물국이 인기가 참 좋았다. 나는 그녀들에게 간단한 한국어를 알려주어 “맛있다”라는 말을 듣는 일이 내심 기분이 좋았다. 한창 BTS 덕에 한국 문화 열풍이 일던 시기라, 그녀들은 K-POP과 K-Beauty를 참 좋아했다. 덕분에 그녀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깃거리가 많았고 항상 집안은 K-POP이 흘러나왔다.
카자흐스탄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카자흐스탄은 러시아어와 카자크어를 동시에 사용하는 나라였고, 말고기와 차 종류가 유명한 나라였다. 한 번은 그녀들의 선생님이 찾아와 카자흐스탄 정통 토마토 요리를 해준 적도 있었다. 스페인에 가지 않았다면, 카자흐스탄이라는 나라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처음 겪어보고 앞으로도 없을 경험을 그녀들과 함께했기 때문에 지내는 동안 이 순간이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참 많이 했다.
시험이 끝나고 혼자서 먼저 집을 떠나는 날에, 평소처럼 놀다 그녀들이 마지막으로 편지를 나눠주고 버스 터미널로 나를 데려다 주었다. 나는 순간 앞으로 보지 못한다는 생각과 스페인을 떠나야 한다는 생각 등 아쉬움이 몰려와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안나’라는 당시 18살 친구가 해줬던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지나갈 것들을 너무 슬퍼하지 마, 앞으로도 행복한 일들이 있을 것이고, 그땐 웃으면서 이때를 기억할 거야.”
내가 가는 곳이 어디든
스페인에서 돌아온 후에도 SNS를 통해 그 친구들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벌써 결혼해 아이를 키우는 친구도 있었고, 각자 다른 방식으로 행복을 찾아가고 있었다. 그걸 보면서 나는 안나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영원한 것은 없기에, 그 시간과 공간과 사람들도 영원하지 않으며 이를 받아들이고 나아가야 한다는 뜻인 것 같았다. .
나는 그 이후 안나의 말을 꼭 기억하며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여행 중 만났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조차 아쉬워했던 나는 우리가 각자 다른 공간에서 또 행복을 찾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되뇌었다. 이렇게 하니 변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그라지고, 아쉬운 감정이 슬픔으로 변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항상 나는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것보다, 환경이 변하는 것에 아쉬움을 더 많이 느꼈던 것 같다. 익숙하고 편안한 환경에서는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기가 쉽다. 그렇기 때문에 이 편안함을 벗어나 다시 약간의 경계심을 가지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움을 자아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나의 정신으로 모든 상황을 대면한다면, 두려운 것이 없다! 이 변화들은 결국 내가 적응해낼 것들이고, 가면은 언젠가 벗겨진다고 생각하면, 나 자신을 꾸미고 새로운 환경에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심한 자는 위험이 닥치기 전, 겁쟁이는 위험이 닥쳤을 때, 용기 있는 자는 위험이 지난 뒤 두려움을 느낀다.” – 장 폴 리히터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
벌써 유행이 지나가 버린 말이지만,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절실히 느껴지는 순간들이 있다.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것만 같았던 취업 준비 시절, 나의 소확행은 아침에 마시는 차가운 아메리카노 한 잔이었다. 주머니가 두둑하지 않았던 그때는 값비싼 브랜드 커피숍을 자주 가지 못했기 때문에 학교 앞에서 파는 저렴한 테이크아웃용 아메리카노를 자주 마셨다. 특히 뜨거운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스터디카페로 가는 길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서 한 모금 마시는 순간은… 가슴을 답답하게 누르고 있는 무언가가 한 번에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스페인에 있을 때는 해외로 여행을 자주 가고 비싼 음식을 먹으며 고가의 문화생활을 즐겨야만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스페인에서 돌아온 직후부터 전공 시험과 실험에 시달리던 나는 어느 날 문득 스페인에서의 일상과 현재를 자꾸 비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화려한 건축물들과 길거리의 음유시인들은 없었지만, 현재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전공 공부를 마치고 난 후에 친구들과 마시는 맥주 한 잔, 자취방에서 에어컨을 18도로 맞춰놓고 이불 안에 들어가 있기, 보고 싶던 드라마 몰아보기 등 평상시에 누리고 있는 것들이 나를 상시 행복하게 해주고 있었다. 이런 순간의 행복을 느끼는 일에 감사하기로 마음먹다 보니, 순간이 지속되어 하루를 꽉 채우게 되었고 행복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꼭 화려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을 가지고 있으면 욕심이 줄어들고, 사소한 것에도 행복을 느끼게 된다.
“행복은 축복의 횟수가 아니라 행복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일 뿐이다.” – 알렉산더 솔제니친
행복은 내가 존재하는 모든 공간에, 나의 선택에 따라 존재한다. 남은 일생 더욱 적극적으로 행복하기를 선택하기로 다짐한다.
다음호 필봉계주(筆鋒繼走)의 주인공은 신성장사업처 수송LNG사업부 박지호 직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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