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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愛온도

글씨란 기록을 위한 수단이며, 정보를 담는 그릇이다. 하지만 삶의 모든 재료가 예술이 될 수 있듯 글씨로도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컴퓨터에 서체의 아름다움을 입힌 스티브 잡스가 이를 증명했고, 손글씨에서 찾자면 추사 선생의 작품이 그렇다. 한글도 그 멋을 살려 쓰면 오랫동안 눈길이 머문다. 붓끝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살려내고 그우수성을 강연을 통해 세상에 전하는 캘리그라피 강병인 작가를 만났다.

[글 김승희 사진 김지원]


캘리그라피 작가 강병인
강병인 작가는 1990년대 말부터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캘리그라피를 통해 한글 글꼴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KBS드라마 [대왕 세종][엄마가 뿔났다][정도전], tvN [미생], 서울시 슬로건 [희망서울], 진로 [참이슬 Fresh], 배상면주가 [산사춘], 광주요 [화요], 류시화의 [외눈박이 물고기의 사랑] 등이 있다. 캘리그라피를 통해 한글의 디자인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확장해 온 노력을 인정받아 2012년 대한민국디자인대상 은탑산업훈장을 수훈했다. 현재 '강병인글씨연구소 술통'을 운영하며 후학 양성과 더불어 한글디자인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 Q
  • 중학생 때부터 서예가의 꿈을 키우셨다고요.
  • A
  • 중학교 교과서에 실린 추사 선생의 작품과 그의 생애를 짧게 요약한 글을 접하고부터였어요. 어린 마음에도 '조선 시대 최고의 서예가'일뿐 아니라 '혁신가이자 철학자'였다는 선생의 생애가 본받고 싶을 만큼 근사했나 봅니다. 그때부터 저도 평생 먹과 함께 살겠다고 마음먹고 '영묵'이라는 호도 지었어요.

  • Q
  • 정통 서예가 아닌 캘리그라피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 A
  • 중학교 때 추사 선생을 제 정신적 스승으로 섬기며 든 생각이, '내가 아무리 잘 쓰더라도 추사 선생의 글씨를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라는 한계였어요. 그렇다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끝에 '한글 서예'를 써보자고 생각했지요. 그때가 아마 막연하게나마 캘리그라피 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첫 번째 순간이었을 거예요. 성인이 되고 여러 디자인회사에 다니다 회사를 차렸는데 얼마 안있다가 IMF를 맞았어요. 힘든 시기를 보내며 이후의 삶을 생각하다 어릴 적 생각했던 캘리그라피 작가의 꿈을 진지하게 다시 고민하기 시작했지요. 이후 유홍준 작가가 펴낸 [완당평전]을 통해 추사의 삶을 제대로 알게 되면서 결심은 더 단단해졌어요.
  • Q
  • 서예와 캘리그라피의 차이점은 뭔가요?
  • A
  • 서예에 디자인을 접목한 것을 캘리그라피라고 정의할 수 있어요. 저는 작업할 때 두 가지 목표를 세워놓습니다. 한글의 의미적 상형성에 따른 다양한 꼴과 조형미를 보여주겠다는 것이 첫 번째고, 이를 디자인 장르로 발전시켜보겠다는 것이 두 번째 목표입니다.

  • Q
  • 캘리그라피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 A
  • 활자는 정보를 왜곡 없이 전달하고 저장하는 기능에 충실한 반면, 손글씨는 사람의 감정은 물론, 내용까지도 글씨에 녹여낼 수 있지요. 제품명을 예로 든다면, 제품의 제작 과정이나 시간, 정성은 물론, 맛까지도 글씨에 담아낼 수 있어요. 캘리그라피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글씨로, 감성과 정보를 모두 전달할 수 있어 그 쓰임은 무궁무진합니다. 모든 것이 디지털화되더라도 캘리그라피의 쓰임과 가치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봐요. 아날로그 감성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요.

  • Q
  • 말씀을 듣고 보니 서체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던 스티브 잡스가 생각나네요.
  • A
  • 스탠퍼드 대학 졸업식 연설 때도 서체 디자인이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밝힌 바 있지요. 그 영감은 스티브 잡스와 애플을 대표하는 'Think different(다르게 생각하라)'를 통해 구체화되고, 이러한 생각과 실천이 결국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 됩니다. 이 같은 혁신가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을 수 있어요. 세종대왕은 15세기에 이미 다름을 실천했던 인물입니다. 한글을 만든 이유를 훈민정음 서문에 밝혀두고 있지요.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이것이 한글이 만들어진 출발점입니다. 우리말은 중국과 다른데 왜 한자를 쓰고 있지? 하는 물음이 창조를 이끌어냅니다. 저 역시 남들과는 다른 글씨를 쓰고자 제자리에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하지요.
  • Q
  • 그런 고민의 결과물들이 다양한 작품들로 대중에게 선보여졌는데요. 어떻게 접근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시는지 궁금해요.
  • A
  • 순수서예는 순간순간의 감정을 글씨에 담기에 바로 나오는 반면, 제품 캘리그라피 작업은 그 회사의 역사와 이념, 제품 타깃, 특징, 디자인 방향, 소비자 니즈, 글씨가 새겨질 패키지의 디자인 등 되도록 충분한 자료를 기업으로부터 받아요. 또 평소에도 대부분의 기업동향을 살피고, 제가 작업한 결과물이 아니어도 관심을 놓치지 않고 분석해놓습니다. 그다음부터 어떻게 풀어낼지는 순전히 제 몫이에요. 안 풀리면 풀릴 때까지 계속 써야죠. 제가 생각하는 글씨가 안 나오면 작업은 끝나지 않아요. 제품 캘리그라피 작업은 앞으로 길게는 10년 이상 갈 한 제품의 얼굴을 만드는 일이기에 그만큼의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야 소비자에게도 전달됩니다.

  • Q
  • 시대가 원하는 글씨체도 바뀌기 마련인데, 늙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하겠네요.
  • A
  • 대하 드라마 [정도전]이 끝나고 며칠 뒤에 [미생]의 타이틀 의뢰가 들어왔어요. 신기하고 반가웠죠. 몇백 년의 시대를 흘려보내야 하는 작업이었으니까요. 저도 제 글씨가 나이 먹는 게 싫어요. 그래서 젊은 감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중요한 비결 하나를 꼽자면 '모난성격'이 아닐까 싶어요.(웃음)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인데, 이 점이 글씨를 쓰는 데 제법 도움이 됩니다. 글씨는 삼라만상, 희로애락을 모두 담을 수 있어야 해요.

  • Q
  • 얼마 전 뜻깊은 전시를 준비하셨죠? 3.1운동 100주년 기념 [독립열사 말씀, 글씨로 보다] 전시의 소회를 부탁드립니다.
  • A
  • 독립열사들의 말씀을 글씨로 옮긴 전시는 2014년과 2015년에도 꾸준히 해온 활동입니다만, 올해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어서 더욱 뜻깊었습니다. 마침 마포중앙도서관에서 의뢰해주셔서 한 달이라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독립열사 24인의 말씀을 30점 작품에 담아냈는데, 전과는 또 다른 감정이 들더군요. 지금의 우리는 타인의 평가에 예민하고 남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며 살지요. 이 나라 독립을 위해 자신의 굳건한 생각을 직접 몸으로 실천한 분들의 말씀은 그 어떤 말보다 강하게 다가옵니다. 오늘부터라도 온전히 나다운 삶을 살아야 개인도, 나아가 사회, 국가도 이롭다는 것을 이번 전시를 통해 새삼 느꼈습니다.
  • Q
  • 한국가스공사에서도 다양한 문화지원사업을 하고 있는데요. 작가님께서도 문화지원 특강 등의 활동을 펼치시는데, 그 가치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 A
  • 문화지원사업의 활동 방식이나 내용은 모두 다르겠지만, 우리 문화의 위대함을 전해 자긍심을 갖게 하는 데에는 뜻이 같다고 봐요. 우리나라에서 주체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한글'뿐이라고 해요. 그런면에서 세종은 단순히 군주가 아니라 철학자였지요. 세종의 정신을 알고, 계승하는 노력이 필요하리라 봅니다.
  • Q
  • 계획 중인 활동과 앞으로의 목표를 말씀해 주시자면요?
  • A
  • 캘리그라피를 쓴 게 지난해로 20주년이 됐어요. 첫 10년까지는 한글의 조형미를 찾으려 했다면, 이후 10년은 그 나름의 성과가 아니었나 싶어요. 지금껏 인간이 가진 삶의 소리를 적극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문자로서 한글의 가치를 알렸다면, 앞으로는 한글 이야기 말고 내 이야기를 글씨에 담아보고 싶습니다. 저는 '최고'나 '대한민국 1호'라는 수식어가 거북해요. 저 이전에도 디자인적인 글씨 작업을 해온 선배들이 있었으니 1호는 틀린 수식어고요. 어떤 분야든 최고는 없기에 제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다만 듣고 싶은 수식어가 있다면 '글씨 쓰는 것을 좋아하고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이라는 말이에요. 그런 말을 들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즐기며 쓰겠습니다.
  • Q
  • [KOGAS] 독자에게 한 마디 부탁드려요.
  • A
  • 세종의 삶을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군주국가에서 백성에게 글을 가르치면 반란이 일어나기 십상인데, 세종은 문자를 몰라 핍박받는 이들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세상에서 가장 쉽게 배워 쓸 수 있게끔 한글을 만드셨어요. 우리 역사 속에서 이렇게 창조적이며 애민정신과 실용정신이 뛰어난 인물이 또 있던가요? 개인은 물론, 사회와 조직 모두가 세종의 한글창제 정신을 삶의 바탕으로 한다면 세상은 이로운 변화를 맞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강병인 작가의 추천작

도서 [훈민정음 해례본]

  • 원작 : 세종대왕
  • 출판사 : 달아실

한국인이라면 한 번쯤 읽어봐야 할 책으로, 대상과 연령에 따라 쉽게 풀어쓴 훈민정음 해례본 해석집이 다양하게 나와 있으니 잘 골라서 읽어보면 어렵지 않게 세종의 뜻을 헤아릴 수 있다. 이제는 사라진 아래아, 반치음, 옛이응 등의 쓰임을 새롭게 알아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

도서 [백범일지]

  • 저자 : 김구, 도진순
  • 출판사 : 돌베개

김구는 독립투사나 정치가이기 이전에 문화인이었다고 강병인 작가는 말한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를 통해 우리나라가 독립이 되면 문화강대국으로 키우겠다고 밝혀놓기도했다. 자신의 생애를 조국과 민족을 위해 바친 겨레의 큰 스승 백범의 삶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가르침을 준다.

도서 [추사 김정희: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 저자 : 유홍준
  • 출판사 : 창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로도 유명한 저자는 1988년 성균관대 박사과정 연구 주제를 추사 김정희론으로 삼아, 그성과로 2002년 [완당평전]을 펴냈다. 추사에 대한 30년간의 도전을 갈무리한 이 책은 추사 예술세계의 진면목은 물론, 예술사적 지평을 넘어 조선 후기의 문화와 격동의 역사까지 함께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