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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심리학


[글 박한선 (신경인류학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박한선 (신경인류학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 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 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등을 썼다.

신래침학의 오랜 전통

조선 시대 과거를 막 급제한 사람을 신래(新來)라고 불렀다. 새로 왔다는 뜻으로, 지금으로 따지면 신입 사원 격이다. 홍패와 어사화를 쓰고 의기양양하게 자랑했을 것 같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선배, 즉 자신보다 먼저 급제한 선배들의 신고식이 기다리고 있었다. 선배들을 불러 모아 큰 연회를 열어야 했다.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시키면 그대로 따라서 해야 했고, 가혹한 매질도 당했다. 형틀에 묶여 맞기도 했는데, 심하게는 맞다가 죽기도 했다. 율곡 이이는 이러한 악습에 한탄하면서 신래침학을 받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결국 직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일도 있었다. 유능한 젊은 관리가 폐습에 희생양이 된 것이다. 얼마나 공고한 악습이었는지 알만한 일이다.

인간은 왜 텃세를 부리는가?

아마 닭을 키워본 사람은 잘 알 것이다. 좁은 닭장 안에서 살아야 하는 똑같은 처지건만, 그 안에서도 상당한 위계가 생긴다. 힘이 센 닭이 약한 닭을 부리로 쪼아 괴롭히는데, 모이가 부족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모이가 넘치도록 많아도 괴롭힘은 계속된다. 모이를 먹으려면 부리에 쪼여 죽을 것이고, 구석에 피해있다가는 굶어 죽을 것이다. 인류는 오랫동안 추운 기후에서 살아왔다. 그런데 약 11500년 전 뜻밖의 간빙기가 찾아왔다. 무려 일만 년 이상,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기후가 온난해지면서 거주할 수 있는 곳이 늘어났고, 인구도 많아졌다. 몇몇 지역에서는 전에 없던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늘 이동하며 살아오던 인류의 조상 중 일부가 정착을 결심한 것이다. 이제 행복한 시대가 찾아온 것일까? 하지만 도리어 인간의 삶은 전보다 더 나빠졌다. 좁은 곳에 모여 살면서 자연스럽게 집단은 작은 집단으로 나뉘고, 위아래가 생겨났다. 평등한 수렵 채집사회는 불평등한 농경 사회로 변화했다. 중층복합사회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위계질서다. 그렇게 일만 년을 살았다. 우리 마음에는 서열에 대한 강력한 본능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구를 만나도 상하를 바로 나누고, 네 편과 내 편을 나눈다. 집단에 소속이 되려면 통과 의례를 거쳐야 하는데, 단지 '의례'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텃세는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 전반에서 관찰되는 현상이지만, 인간의 복잡한 문화와 결부되면서 점점 완고한 전통으로 굳어졌다. 아직 앳된 중학생이 전학생을 집단으로 괴롭히고, 이제 스무 살이 갓 넘은 대학생이 신입생에게 가혹한 신고식을 강요한다. 기성세대를 보고 따라 하는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텃세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약해진다. 텃세는 우리 마음에 깊이 자리 잡은 어두컴컴한 진화적 본성이다.

불일치 현상과 텃세

불일치 현상이라는 진화적 개념이 있다.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형질의 상당 부분은 과거 사회에 적합하게 빚어졌다. 그런데 세상은 우리의 몸이나 마음보다 더 빨리 바뀌기 때문에,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불일치가 일어나는 것이다. 텃세는 좁은 곳에서 평생, 아니 몇 대를 이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분명 적응적인 형질이었다. 한 고장에서 대를 이어 살아간다면 텃세는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다. 이미 누구의 자식, 누구의 손주라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을 뿐 아니라 고장 사람들은 다 가까운 친족이거나 인척이다. 가끔 찾아오는 외부인에게는 심한 텃세를 부리지만,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모든 사람이 고향에서 평생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방인이라니? 일단 의심부터 하고 보는 것이 옳다. 가혹한 신고식을 견뎌낼 수 있다면, 그때야 비로소 집단의 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전통이지만 신혼 첫날밤에 신부 마을의 청년이 신랑을 괴롭히는 인습이 있었다. 술을 먹이고 노래를 시키고 춤을 추게 한다. 모욕을 잔뜩 주다가 묶어놓고 발바닥을 때린 다. 왜 그러는 것일까? 자기 마을의 처녀를 데려가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일까? 그런 면도 있겠지만 사실은 텃세를 부리는 것이다. 과거 사회에는 보통 신부가 신랑의 집으로 시집을 갔을 것 같지만, 신랑이 신부의 집으로 들어가 사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우리 고장에 새로 들어온 이방인에게 신고식을 가하는 것이다. 그 정반대의 현상이 혹독한 시집살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다르다. 여러 곳을 이동하며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고향이라는 개념은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매일같이 다른 곳에서 살 수 있다. 어떤 면에서 보면 현대인의 삶은 수렵 채집인의 삶과 닮았다. 높은 수준의 이동성이 보장된 곳이라면 텃세를 부릴 방법도, 텃세를 감내할 이유도 없다. 설령 텃세를 부린다면 그냥 그곳을 떠나버리면 그만이다.

현대 사회의 텃세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텃세를 제외한다면, 현대 사회에서 텃세가 일어나는 곳은 주로 직장이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명확하던 시절에는 신입 사원이나 중도 입사자에 대한 제법 심각한 텃세가 공공연하게 일어났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당장 내일 누가 이직할지 모르는 일이다. 십년 이상 같은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손에 꼽는다. 텃세는 과거의 흘러간 유산이다. 모두 신입사원이나 진배없는데, 누가 누구에게 텃세를 부릴 수 있을까? 텃세가 주는 이점도 이제는 없다. 집단을 결속하는 힘도 없고, 외부인을 검증하는 기능도 없다. 그저 부작용만 남은 폐습이다. 철 지난 폐습이 남아 있는 곳에 가려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전에는 어쩔 도리가 없으니 꾹 참고 견뎌야 했겠지만, 지금 세상이라면 그냥 때려치우고 새로운 곳으로 떠나면 그만이다. 조직의 활력은 떨어지고 유능한 사람은 점점 사라진다. 인간다운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조직에는 똑똑하고 진취적인 사람이 모일 것이다. 선조 2년, 율곡 이이는 다음과 같이 임금에게 아뢰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곰곰이 곱씹어볼 일이다. "처음 과거에 급제한 선비들은 사과四科, 즉 성균관, 예문관, 승문원, 교서관에서 신래로 지목하여 곤욕을 주고 괴롭히는데, 그 하지 않는 짓이 없을 정도입니다. 대개 호걸의 선비는 과거시험자체를 그리 대단히 여기지 않는데, 하물며 갓을 부수고 옷을 찢기며 흙탕물에 굴러 체통을 잃고 염치를 버린 후에야 벼슬에 오르게 된다면, 그 어떤 호걸의 선비가 세상에 쓰이기를 원하겠습니까?"

시대 어두운 단면 '왕따 문화'를 다룬 영화 셋

우리들

  • 장르 : 드라마
  • 감독 : 윤가은
  • 출연 : 최수인, 설혜인, 이서연

방학식 날, 늘 혼자였던 선은 홀로 교실에 남아있다 전학 온 지아를 만난다. 처음으로 친구를 사귀게 된 선은 지아와 비밀을 나누며 순식간에 가까워지지만, 어쩐지 개학 후 학교에서 만난 지아는 다른 아이들처럼 선을 차갑게 대한다. 다시 외톨이가 되고 싶지 않은 선은 관계 회복을 위해 결국 지아의 비밀을 폭로한다. 과연, 선은 지아와 다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목소리의 형태

  • 장르 : 애니메이션, 멜로/로맨스
  • 감독 : 야마다 나오코
  • 목소리 출연 : 이리노 미유, 하야미 사오리

학교생활이 따분하기만한 쇼야 앞에 귀가 들리지 않는 쇼코가 전학을 온다. 쇼야는 쇼코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쇼코는 견디다 못해 결국 또 전학을 간다. 외톨이가된 쇼야는 긴 세월이 흐른 뒤 쇼코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와 그녀의 삶은 바뀌기 시작한다. 말하지 않으면 전해지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다. 진심을 전하는 '형태'를 그린 작품.

월플라워

  • 장르 : 드라마
  • 감독 : 스티븐 크보스키
  • 출연 : 엠마 왓슨, 로건 레먼, 에즈라 밀러

찰리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서툰 고등학생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날 타인의 시선에 아랑곳 않고 스스로 삶을 즐기는 샘과 패트릭 남매가 나타나 삶을 변화시킨다. 조금씩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배워가는 찰리. 행복한 나날도 잠시, 과거의 상처가 그를 괴롭혀오고 세 사람의 우정은 흔들리기 시작하는데…. 영화는 주류에서 밀려난 학생들의 성장담을 섬세하게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