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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스위스 알프스에 의지하는 방법은 소박하다. 한적한 마을에 머물며 아침 치즈 가게에 들려 "Guten morgen!(구텐모르겐: 아침인사)"도 해보고, 해 질 무렵 노천 바에 앉아 만년설 봉우리를 벗 삼아 맥주도 들이켜본다. 스위스 베르너 오버란트의 벵엔, 뮤렌 등은 알프스의 향취가 묻어나는 청정마을들이다.

[글·사진 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4000m 봉우리에 기댄 간이역과 마을

산악 마을은 융프라우, 아이거, 묀히로 대변되는 베르너 오버란트의 4,000m급 봉우리에 몸을 기대고 있다. 아이거의 터널을 뚫고 융프라우와 연결되는 융프라우요흐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역(3454m)이라는 매혹적인 수식어를 지녔다. 그래서 열차로 휙 한 번 올라보고 알프스를 답습한 듯 의기양양하게 내려오는 경우가 다반사다. 호흡을 가다듬고 무심코 스쳐 지난 역과 마을에 시선을 돌리면 웅대한 산봉우리는 넉넉한 배경에 가깝다는 것을 깨닫는다. 가슴에 '나만의 추억'으로 남는 잔영의 주인공은 산 아래 작은 마을들이다. 이 일대의 산악열차는 간이역과 산악마을의 숨겨진 사연을 간직한 채 묵묵히 덜컹거리며 달린다. 마을 주변으로는 70여 개의 하이킹 코스가 별처럼 흩어져 있다.

아이거와 융프라우를 잇는 터널

융프라우요흐로 오르는 마지막 관문인 클라이네 샤이텍은 단순한 환승역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해발고도 2,061m 클라이네 샤이텍 정면으로는 아이거의 거친 절벽이, 발아래로는 그린델발트 마을의 정경이 펼쳐진다. 클라이네 샤이텍에서 융프라우요흐를 잇는 암벽 터널은 100년 넘는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1896년 스위스 '철도의 왕'으로 일컬어지던 아돌프 구에르 첼러는 아이거와 묀히의 암벽에 터널을 뚫어 융프라우까지 톱니바퀴 철도를 건설하는 야심찬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혹한, 폭설, 사고 등으로 철도 완공에는 16년이나 소요됐지만 덕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융프라우 봉우리와 알레취 빙하를 눈앞에서 마주할 수 있게 됐다. 여름, 가을 해발 3,000m 만년설의 빙하를 직접 밟는 체험이 융프라우요흐에서 비로소 현실이 된다. 클라이네 샤이텍은 수많은 산악인의 도전과 사연이 서린 역이기도 하다. 알프스의 3대 북벽 중 하나인 아이거 북벽은 한때 등반금지령이 내렸을 정도로 험난한 코스였다. 70여 년 전, 초등 등정을 위해 사투를 벌였던 청년 등반가들의 도전과 떠남의 이야기는 빛바랜 철로 위에 남아 있다. 그들의 도전 정신을 기리며 매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자락에서 스노우펜 에어 콘서트도 열린다. 터널 앞, 아이거글레처 역에는 해발 가장 높은 고도(2,320m)의 초콜릿 공방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는 아이거의 빙벽을 테마로 직접 수제 초콜릿을 만든다. 레스토랑 야외 테라스에는 최고의 풍광과 함께 따뜻한 커피 한잔이 녹아든다.

전기차 오가는 청정마을 '벵엔'

클라이네 샤이텍에서 열차로 좀 더 가면 청정마을인 벵엔에 닿을 수 있다. 벵엔은 전기자동차만 오가는 무공해 마을이다. 앙증맞게 생긴 소형 자동차가 다니는 길목에는 거친 소음도, 먼지도 없다. 가을을 맞는 교회당 너머 길에는 종소리와 젖소들의 방울 소리가 은은하게 뒤섞인다. 노천카페에 잠시 몸을 기대면 봉우리 사이로 어슴푸레 달이 뜨고, 한 잔 맥주에도 얼굴은 달아오른다. 벵엔 마을 깊숙이 들어서면 오래된 영화관이 들어서 있고 교회당에서는 매년 멘델스존을 기리는 음악제가 열린다. 그 옆 골목에는 마을 단위의 치즈 가게와 채소 가게가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치즈는 젖소를 사육하는 마을 사람들이 공동 제조해 분배하고 남은 것들만 판매한다. 치즈 1kg을 만들어내는데 젖소의 우유 100kg이 필요하다는데 이곳 주민들이 말하는 진정한 '알프스 치즈'란 해발 1,400m 이상의 목초지에 방목된 소들에서 나온 것만을 의미한다. 치즈 가게 지하 창고에는 세수대야만 한 알프스 치즈들이 퀴퀴한 냄새로 미각을 자극한다.

샬레하우스에서 맞는 가을 아침

알프스를 거슬러 오르던 톱니바퀴 열차는 벵엔 아래 라우터브룬넨에서 무게를 던다. 역 건너, 샬레풍 민박집 창문 너머로는 계곡 물소리와 함께 폭포와 교회당이 그림엽서처럼 다가온다. 라우터브룬넨에는 인터라켄이나 그린델발트처럼 화려한 숙소들이 즐비한 것은 아니다. 협곡에 들어선 마을은 건물도 낮게 웅크려 있다. 오히려 그런 모습에 정감이 간다. '울려 퍼지는 샘'이라는 뜻을 지닌 라우터브룬넨으로는 세계유산인 알레취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이 흘러든다. 빙하가 만든 크고 작은 폭포들은 마을 인근에만 수십 개에 달한다. 괴테가 시의 영감을 얻었다는 슈타우바흐 폭포는 교회당 너머 절벽에서 수려하게 쏟아져 내린다. 라우터브룬넨 역에서 케이블카와 열차로 닿는 뮤렌은 외딴 산악마을의 향수를 만들어내는 곳이다. 1,639m에 자리 잡은 마을에서는 아이거, 융프라우, 묀히가 가깝게 보인다. 100년이 넘은 고풍스러운 가옥 지붕에는 집이 지어진 연도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창문들은 앙증맞은 종과 산양 머리뼈로 장식돼 있다. 뮤렌은 겨울에 스키 마니아들이 몰려들 뿐, 봄가을에 는 인적이 뜸해 밀애를 즐기려는 허니무너들에게 사랑받는 마을이다. 뮤렌에서 간이역인 그러취알프 역까지는 알프스를 바라보며 철로와 나란히 걷는 평화로운 산책 코스가 이어진다.

산악 액티비티의 아지트 그린델발트

라우터브룬넨, 뮤렌이 고즈넉하다면 산악 액티비티의 아지트인그린델발트는 한껏 들떠 있다. 하이킹 시즌에는 세계 각지의 이방인들이 어우러져 마을이 흥청거린다. 그린델발트에서 곤돌라로 이어지는 휘르스트 역(2,168m)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 들어서 있다. 절벽 길을 따라 아찔한 클리프워크가 가능하며, 이 일대 최고의 패러글라이딩 출발 포인트로 자리잡았다. 휘르스트 트레킹의 클라이맥스는 바흐알프 호수에서 완결된다. 호수는 설산과 알프스의 봉우리가 데칼코마니로 찍어낸 듯 대칭을 이루며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휘르스트에서는 플라이어나 글라이더를 타고 집라인에 매달려 하강하는 체험이 짜릿하다. 세 바퀴 달린 마운틴 카트나 페달 없는 트로티바이크 역시 내리막길을 한적하게 내달린다. 바이크에 몸을 실으면 알프스의 전원마을과 풍경이 슬라이드처럼 흘러간다. 역과 마을을 잇는 길들은 철로 위에 눈이 내리기 전까지 다양한 추억의 자국을 새긴다. 알프스의 흙을 밟고 질주하는 꿈같은 일들이 이곳에서는 일상으로 채워진다.

지구를 생각하는 융프라우 여행

세계유산 보호를 위한 지정 루트

융프라우 봉우리와 알레취 빙하는 2001년 알프스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됐다. 융프라우요흐 정상 역에서 묀히요흐 산장까지 1.7km를 걷는 하이킹 코스도 마련돼 있다. 단, 빙하 위를 걸을때는 세계유산 빙하를 훼손하지 않도록 정해진 루트를 따라서만 이동해야 한다. 비닐 등을 빙하 위에 버리는 행위도 삼가야 한다.

청정마을 내 외부 차량 진입 금지

산악마을 중 벵엔, 뮤렌 등은 산 아래 외지인의 차량이 직접 닿을 수 없는 청정마을이다. 휘발유차 대신 전기차가 오가며, 마을 안의 환경문제에 각별하게 신경을 쓴다. 여행자들에게는 이동 중 발생한 쓰레기는 산 아래로 되가져가는 마음가짐이 요구된다. 또 호텔 등 숙박업소에서는 일회용품이 지급되지 않으니 유념해야 한다.

융프라우 일대 방문 시 물 절약 실천

융프라우 일대의 시설들은 열차가 내려가는 동력이나 계곡물의 수차를 활용해 전력을 얻기도 한다. 빙하에서 녹아내린 물은 성분 상식수로는 활용할 수 없어, 특히 융프라우요흐와 정상 인근 간이역에서 사용하는 물은 산 아래에서 열차를 이용해 별도로 공급받는다. 이에 화장실 등 정상 부근에서 물을 이용할 때는 절약의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