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COLUMN

당신이 수소를
발견했다면

writer과학칼럼니스트
이독실

1700년대 중반을 사는 당신이 어느 날
우연히 철가루에 식초를 흘렸더니 거품이 나는 것을 확인한다.
호기심이 생긴 당신은 그 기체에 냄새도 맡아보고 불을 가져다 대어 보기도 하는 등 실험을 진행하고,
그 기체는 단순히 불에 타는 것 뿐 아니라 연소 생성물이 ‘물’이라는 사실을 알아낸다.
산과 금속이 만나면 발생하는 이 기체에 ‘수소’라는 이름을 붙인 당신은 이제
이 기체의 성질을 알기 위한 실험들을 시작한다.
같은 부피 대비 더 많은 수소를 공급하는 방법
불에 잘 탄다는 사실도 알아내고, 상당히 가볍다는 것도 알아낸다. 불에 잘 타기 때문에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 가볍다는 성질을 이용하면 ‘하늘을 날게 하는 기구’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수소는 산소가 없으면 불에 타지 않으니 순수한 수소를 잘 구획화해서 담고 새어 나오지 않도록 잘 밀봉한다면, 특히나 정전기로 인한 화재를 예방할 수 있다면 사람을 태우고 하늘을 날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당신이 주목한 점은 수소가 에너지원이라는 사실이다. 이 무색투명한 기체를 이용하면 연료와 난방이 해결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도 그을음 하나 없이 청정하게.
연료로 이용하기 위해서는 부글부글 거품이 나는 수준으로는 안 된다. 대량의 수소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수소 기체는 밀도가 무척 낮으므로 부피당 열량이 높지 않다. 연료통의 부피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보통 연료를 공급할 때는 부피 단위로 공급한다. 이제 우리는 같은 부피에 더 많은 양의 수소를 담아 공급할 필요가 생겼다. 어떡하면 좋을까?
첫 번째 방법은 그냥 더 높은 압력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기체는 압력을 가하면 부피가 줄어드는 성질이 있다. 보일의 법칙이다. 이를 이용한 것이 천연가스인 메탄을 높은 압력으로 압축해 부피를 줄인 CNG(압축천연가스)이다. 시내의 천연가스버스는 CNG를 이용하는데 가스탱크 안의 압력이 200기압 정도의 높은 압력을 유지하여 많은 양의 천연가스를 담고 있다.
두 번째 방법은 온도를 낮추는 것이다. 기체는 온도를 낮추면 부피가 줄어든다. 미시적으로 보자면 기체는 입자들이 직진 운동을 하는 상태고 다른 입자를 만나면 튕겨 나오는, 마치 당구공 같은 형태의 운동을 하는데, 온도를 낮추면 기체가 지닌 내부 에너지가 줄어들고 입자의 속도가 줄어들게 된다. 이런 경우 온도가 높은 경우에 비해 입자들이 상대적으로 금방 다른 입자와 충돌해서 방향을 바꾸게 된다. 즉 활발하게 움직이는 입자들이 점유하는 공간이 줄어듦을 이해할 수 있다. 샤를의 법칙이다.
물론 온도를 낮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이 1700년대 중반이라면 더욱 그렇다. 기화열을 이용해서 서늘하게 만드는 것까지면 모를까, 기체의 온도를 크게 낮추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이는 현대에도 마찬가지인데, 에어컨이나 냉장고의 원리를 보면 주로 기체의 부피를 갑자기 크게 팽창시켜 그 온도(내부 에너지)를 낮추는 단열 팽창의 방식을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온도를 낮춰야만 액체로 변하는 천연가스
일반적으로는 압력을 가하거나 온도를 낮추면 기체가 액체가 되고 고체가 되는 것을 생각한다. 어떤 기체는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에서 액체가 가능하기 때문에 적당한 압력만 가해주면 실온에서도 액체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우리가 자주 쓰는 휴대용 가스가 그렇다. 주성분이 부탄-프로판인 휴대용 가스는 흔들어보면 찰랑거리는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가스통 내부에 액화된 상태의 연료가 들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를 LPG(액화석유가스)라 한다. 그러나 어떤 가스는 온도를 낮추지 않으면 아무리 압력을 가하더라도 액체가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앞서 이야기한 천연가스가 그렇다. 메탄가스는 상온에서는 아무리 고압을 가하여도 액체가 되지 않는다. 그냥 고압인 유체 상태로 있는 것이다. 만약 액화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냉각 장치가 필요한데 이는 지속적인 에너지를 필요로 하므로 천연가스버스의 경우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용하지 않고 압력을 이용해 부피를 줄인 압축천연가스(CNG)를 이용한다.
그러나 LNG 수송선을 생각하면 알 수 있듯 대량의 수송을 위해서는 액화시켜 부피를 줄여 단위 부피당 질량을 늘리는 것이 효율적이다. LNG 수송선 혹은 LNG 탱크는 -163℃ 이하의 저온을 유지하는 상태인데 이렇게 저온/단열 상태를 유지해야 하므로 추가적인 에너지가 들어가지만 버스 등에서 사용되는 약 200기압의 CNG에 비해 LNG는 부피가 1/3에 불과해 한 번에 더 많은 양을 수송할 수 있다.
압축수소기체보다 더 안전한 액화수소
메탄보다 더 단순한 구조의 수소 기체를 액화시키는 것은 더 어려울 것이라고 쉽게 유추해 볼 수 있다. 수소자동차 등에 사용하는 고압의 압축수소기체의 경우 700기압 정도로 CNG보다 훨씬 높은 압력을 사용하는데 이 또한 더 많은 양의 수소 연료를 탱크에 보관하기 위한 것이다. 액화수소를 사용한다면 압축수소보다 훨씬 작은 부피가 가능하므로 단위 부피당 연료의 양도 늘릴 수 있고 특히 보관 압력도 더 적기 때문에 오히려 압축수소보다 더 안전하다는 장점이 있다.
수소를 액화시키기 위해서는 최소한 얼마 이하로 온도를 낮춰야 할까? 액체 수소는 무려 영하 253℃에서 생산되는데, LNG보다 100도가량 낮은 온도이다. 이는 현대 기술로도 적은 에너지로 쉽게 생산할 수 있는 온도가 아니다. 무엇보다 ‘온도’라는 것은 무한정 낮게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온도는 어떤 입자가 가진 내부 에너지의 양으로 결정되는데, 만약 온도가 점점 낮아져서 어떤 입자의 움직임이 멈춰버리면, 즉 입자의 내부 에너지가 0이 되면 더 이상 온도가 낮아질 수 없다. (정지한 상태보다 더 느린 상태가 어디 있겠는가?) 입자의 내부 에너지가 0이 되는 온도는 정해져 있다. -273.15℃ 가 그것이다. 이를 절대 0도라고 한다. 우리 우주에서는 이보다 더 낮은 온도는 온도의 정의상 불가능하다.
다시 수소의 액화 온도를 살펴보자. -253℃면 대략 절대온도 20K 정도이다. 대단히 낮은 온도로 실험실 환경에서 달성하기도 쉽지 않은데, 이를 상용화해서 극저온의 수소를 큰 에너지 손실 없이 수송·보관하며 안전하게 사용하는 것은 그 자체로 첨단 기술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친환경·고효율의 수소경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술이기도 하다. 만약 액화수소를 공급하지 못해 고압의 압축수소만 사용해야 한다면 친환경적일지는 몰라도 효율이 기존의 연료보다 훨씬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산업 현장 구석구석까지 널리 쓰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환경 위기 극복 위해 필요한 액화 공법 개발
이쯤 되면 궁금함이 하나 생긴다. 활발하게 움직이는 기체들의 공간에 압력을 가하면 기체들 사이가 줄어듦은 직관적이다. 온도를 낮추면 기체의 내부 에너지가 줄어들어 기체의 움직임이 둔해지면서 서로 가까워지고 기체들의 점유 공간이 줄어드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왜 특정 온도 이하에서는 특정 압력 이상을 가할 때 어느 순간 갑자기 부피가 확 줄어들면서 액체가 되는 것일까? 입자들은 당구공이 아니다. 기체 분자의 궤도에 있는 전자들이 언제나 균일한 상태로 있는 것이 아니고 확률적으로 한 쪽으로 전자가 쏠리게 되는데 이때 생기는 정전기적 인력으로 인해 인접한 다른 분자도 전자가 쏠리고, 또다시 인접한 분자도 전자가 쏠리고... 이렇게 서로 +, -극을 유도하게 된다. 이런 인력을 분산력이라고 하는데 전자가 있으면 반드시 발생하는 힘이다. 즉, 오히려 분자는 당구공보다는 끈끈이 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 어느 정도 서로 가까워지면 어느 순간 찰싹 달라붙어 액체가 되고, 다른 분자와의 틈바구니에서 회전도, 진동도 가능하지만 직진 운동은 불가능해지는 것이다.
1700년대 중반에 수소를 최초로 발견한 당신이 수소라는 에너지원을 사회 전반에 사용하는 수소경제를 실현하지 못한 이유는 사실 복합적이다. 무엇보다 천연가스, 칼슘카바이드와 물을 이용한 아세틸렌가스 등이 훨씬 저렴하다는 것이 첫 번째이다. 금속이 귀한 시대에 수소를 만들겠다고 금속에 산을 반응시켜 녹여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두 번째, 수소경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수소 운송·저장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단순히 압력을 가한 압축수소가스를 넘어 액화수소를 경제적으로 대량 생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게 심지어 현대에 와서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결국 수소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환경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로서의 액화 공법 개발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우리 인류의 지혜를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 1700년대 중반의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제 이룰 수 있을 테니.
인쇄 URL 복사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