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COLUMN

산업혁명 이전엔
어떤 연료를 사용했을까?
에너지 이용의 역사 ①

writer과학칼럼니스트
이독실

풍족한 에너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가까운 과거의 연료들조차도 가물가물해져간다. ‘연탄’이라는 것을, 고기를 구울 때나 유명인들의 봉사활동 모습에서만 본 사람들에게 추운 겨울 새벽에 졸린 눈 비비고 나와서 보일러실로 가서 하얗게 타 버린 연탄을 꺼내고 까만 새 연탄을 포개놓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대체 무슨 말인가 할 것이다.
연탄의 위치를 교환해서 새 연탄이 위로 올라와야 한다는 이야기에는 경험 있는 사람은 공감하며 과거를 회상할 것이고, 도무지 상상이 안가는 사람은 매일 직접 연탄을 갈아야 했다는 이야기를, 연탄가스를 들이마시고 머리가 아팠던 경험 이야기를 그저 흔한 소싯적 고생 이야기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당시 오래되어 갈라진 바닥 틈 사이로 꺼져가는 연탄이 내뿜는 일산화탄소가 방 안으로 스며들어 일가족이 사망하는 비극적인 기사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연탄은 저렴하고 편리했지만 위험성을 지닌 연료였다.
시간이 지나 연탄보일러는 석유나 LPG를 이용하는 보일러를 거쳐 이제 대부분의 대도시에서는 집집마다 공급되는 도시가스(LNG)를 이용하는 가스보일러로 대체되었다. 석탄, 석유에 비해 훨씬 깨끗한 LNG의 보급과 정기적인 안전 점검은 비극적인 일가족 일산화탄소 중독 기사를 과거의 일로 만들었다. 최근에는 캠핑 난방기구 사용과 관련한 안타까운 일산화탄소 중독 기사가 보이곤 한다. 원인은 대부분 숯이나 석유난로를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사용한 경우가 많다.
자동차는 이제 내연기관에서 전기자동차, 수소연료전지자동차로 점차 옮겨가는 형국이다. 더 깨끗하고, 더 효율적인 에너지원이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다. 신재생에너지의 사용이 확대되고 궁극적으로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되면 인류는 드디어 우주의 가장 강력한 에너지원을 사용하게 된다. 인류는 계속 진화하며 더 깨끗하고 효율적이며 강력한 에너지원을 개발하여 사용하고 있는 듯하다.
과거는 어땠을까? 화석연료가 에너지원인 것이 당연한 세상이 아닌 그 이전의 삶과 당시의 에너지원을 상상해보자. 석탄, 석유 중 무엇이 더 먼저 사용되었을까? 원유 형태로는 사용이 제한되는 석유보다는 석탄이 먼저 사용되었을 것 같다. 석유는 시추부터 정제, 가공 전체가 거대한 산업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지만 석탄은 어쨌든 탄광에서 캐면 되니까. 근대의 상징인 증기기관차의 보일러에 석탄을 퍼 넣는 화부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 유명한 ‘타이타닉’ 영화에도 힘차게 출항하는 장면을 비롯해, 많은 장면에 화부들이 등장하지 않는가. 석유를 연료로 사용하는 내연기관은 그 이후에 사용된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 생각들은 모두 틀렸다. 적어도 석탄과 석유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극히 일부 사용처에서만 특수한 형태로 사용된 것을 넘어 제법 널리 사용된 기간도 한참 되었다.
석탄이 사회 전반에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당시의 영국이 최초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는 불에 타는 검은 돌을 연료로 사용한다고 했던 때가 13세기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석탄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의 비옥한 평야는 높은 식량 생산량을 보이는데, 높은 식량 생산량은 인구 증가로 이어지고, 많은 인구는 연료, 특히 임업 자원인 목재를 빠르게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중국 인구는 전 세계 인구 대비 높은 비율을 유지했는데 당, 송의 전성기 때는 전 세계 인구의 40%를 차지하기도 했다. 만약 중국이 석탄을 사용하지 않았다면 목재는 중국 전역에서 일찌감치 고갈되었을 것이다. 석탄은 기원전부터 금속의 제련 등에 제한적으로 사용되어왔으나 송나라 시기 이후에는 부족한 목재 자원을 대체하기 위해 널리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만 특별했던 것은 아니다. 로마인들도 탄광을 개발하고 석탄을 수송하고 사용했다. 노천 광산 등 석탄을 쉽게 채굴할 수 있는 지역에서는 석탄이 일찍부터 널리 사용되었고 특히 철의 제련 등에는 더욱 중요했다. 그러나 우리는 석탄하면 산업혁명을 제일 먼저 떠올리곤 하는데 당시 엄청난 경제 팽창으로 인해 실제로 매우 많은 양의 석탄이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1700년에 전 세계 석탄의 80% 이상이 영국에서 채굴되었다. 우리가 석탄과 산업혁명 영국을 연관 짓는 것이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도 석탄은 다양한 지역에서 다양하게 사용된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주로 목재를 대체하고 보조하는 역할이었지만 우리 생각보다는 훨씬 오랜 기간에 걸쳐 널리 사용되고 있었음은 분명하다.
석탄에 비해 나중에 개발되었으나 효용성과 편리함으로 인해 단숨에 전략자원으로 등극한 석유는 어떨까? 짐작했다시피 아주 오래전부터 사용되어왔다. 물론 과거에 사용되던 방식은 현대와 같이 산업적으로 증류/정제 시설을 갖춘 시스템적인 것은 아니었다. 석유가 함유된 토양이 지표에 노출되면 휘발 성분들은 날아가고 비활성 성분이 반고체 상태로 끈적하게 남는데 이것이 바로 아스팔트이다. 고대부터 사용되던 아스팔트는 주로 접착제, 선박의 방수 도료로 사용되었다. 휘발 성분들이 모두 날아가기 전의 석유를 머금은 토양은 그대로 연료로 사용되기도 했다.
액체 형태의 석유를 에너지원으로 사용한 최초의 기록도 중국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증류를 통해 정제한 것은 페르시아와 아랍의 화학자들이 처음이다. 증류 기술은 스페인의 이슬람 왕국을 거쳐 서유럽으로 전해졌으나 석유의 생산량은 석탄보다 훨씬 적은데다 증류 과정을 거치는 관계로 비용 면에서도 불리했기 때문에 석유의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널리 사용되지는 못하였다. 현대적 시스템의 유정과 정유 산업은 19세기에 시작되었다. 석유는 연료로서의 장점 하나만으로도 전략 물자 대우를 받았으나 이후 유기화학의 발달을 통해 현대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물질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러나 수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고비용의 이유로 지금도 여전히 석탄 화력발전소가 운용되고 있다.
에너지원으로서 석탄과 석유가 사용된 형태를 보면 산업적으로 채굴/시추 및 정제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목재를 비롯한 다른 에너지원의 보조적인 역할만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산업 수준이 높은 에너지 밀도의 화석연료를 필요로 할 정도로 발달하지는 않았던 이유도 있을 것이고, 역으로 높은 에너지 밀도의 화석연료가 귀한 탓에 산업 발달이 주춤했던 부분도 있을 것이다. 사실 정제하기 전의 원유는 단점이 많고 활용도가 제한되는 물질이었다.
산업혁명 이전, 거대한 기기들을 증기 기관으로 움직이기 전에는 연료의 주 사용처 중 하나가 바로 조명장치였다. 지금도 가정에 상비하고 있는 양초의 경우 현재는 석유 화합물인 파라핀으로 만들지만 석유의 대중화 이전에는 주로 소기름을 사용했다.
그보다 더 이전에는, 기록에 의하면 이미 기원전 3,000년에 이집트에서 밀랍으로 초를 만들었다고 한다. 벌집을 구성하는 성분이 바로 밀랍인데, 밀랍을 태워 빛을 내는 조명 기구라니 얼마나 귀하고 비쌌을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고체 형태인 양초와 달리 오일 램프는 일반적으로 액체 연료를 이용한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이미 기원전 4,000~6,000년 전부터 올리브 오일을 사용했던 고고학적 증거가 있다. 불에 타지 않는 몸체와 화력을 집중하는 심지만 있으면 연료를 보충하며 재사용이 가능한 오일 램프는 식물의 기름과 어유, 밀랍 가공품들을 연료로 수천 년 동안 사용되었다. 이후 가스등의 시대가 잠시 열렸다.
석탄을 증류한 석탄 가스가 가연성인 것은 이미 17세기에 알려졌지만, 가스 생산지에서 도시까지 파이프를 연결하여 가스등을 조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의 일이다. 최근 심리학 용어로 사용되는 ‘가스라이팅’이 바로 가스등을 의미한다. 20세기 초까지 유럽과 미국의 집과 거리에는 가스 램프와 가스 가로등이 있었다. 이후 전등이 가스등을 대체하게 된다.
가스등은 밝고 깨끗하고 효율적이었지만 가스 파이프 인프라가 필요하다. 휴대용 조명기구로는 사용할 수 없었기에 19세기 중반까지 사용되던 휴대용 오일 램프의 연료를 대체한 것은 바로 등유이다, 석유 산업이 발달하며 점차 등유 가격이 하락하자 등유가 향유고래의 경뇌유를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향유고래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기름’, 즉 경뇌유를 추출하기 위해 무분별하게 남획되었는데, 향유고래 경뇌유의 품질이 매우 좋아서 조명용으로 쓸 경우 기존의 어떤 연료보다 밝으면서도 냄새와 그을음 없이 깨끗한 품질을 보였고, 고온과 산패에 강한 특성으로 인해 윤활유로도 최상의 품질이었다. 산업용으로도 많이 사용되었는데 자동변속기오일의 첨가제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러나 향유고래가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되고 남획이 금지되었고 그 결과 한동안 자동변속기 고장이 증가했을 정도로 고품질의 기름이었다.
최상급의 조명 연료와 윤활유를 지니고 있다는 이유로 멸종 위기까지 갔던 향유고래를 구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고품질의 화석연료였다. 경뇌유를 대체할 수 있는 저렴한 대안들이 개발된 것이다. 그러나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인류 물질문명은 거대하게 팽창했고 인류는 땅 속에서 잠자고 있던 탄소들을 깨워 공기 중으로 방출해대기 시작했다.
지금은 균형이 깨져 지구온난화로 인한 파국으로 달려가는 형국이다. 파국을 막기 위해서는 화석연료를 대신할 대체품은 물론 기존에 배출된 탄소를 줄여나가는 과정까지 필요하다. 이를 위해 탄소 중립 실현, 수소경제 활성화, 신재생에너지 개발은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인류의 의지와 지혜를 하나로 모으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게 요구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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