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봉계주(筆鋒繼走)

신입직원
투자 실패기

writer신성장사업처 수송LNG사업부 박지호 직원

한국가스공사에 막 취직하여 원룸 보증금을 이체할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이제 재테크를 해야 한다! 취업준비를 하며 SNS에서 돈 자랑하는 젊은 부자들, 수많은 재테크 성공담을 보며 ‘돈을 빨리 불리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보증금 500만 원을 엄마에게 빌려 그렇게 아낀 내 돈 500만 원으로 재테크를 시작했다. 신입직원 재테크 실패기의 시작이었다.
불운한 행운
물론 처음에는 경제 강의를 듣고, ‘월가의 영웅들’로 대표되는 여러 금융 서적을 읽으며, 재무제표 공부를 하며 ‘우량한 미국 ETF를 적립식으로 투자하는’ 비교적 안전한 투자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ETF를 사고 나니 재미없는 방식의 투자에 질린 나는 곧바로 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적립식 ETF 투자를 할 건데 굳이 어려운 경제공부를 해야 할까? 메인 재테크를 적립식 투자로 하고, 다른 재테크를 따로 공부하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희한한 자기합리화를 계속하던 중, 코인으로 돈 좀 벌었다는 친구의 추천을 받아 당시 새로운 코인 투자 수단으로 유행하던 P2E(Play to Earn) 게임에 속는 셈치고 100만 원을 투자했다. 일주일마다 60만 원 정도의 배당을 주는 엄청난 효자 게임이 되었다. 대박을 친 것이다.
무절제
한 번 대박을 맛보니 이제 다른 재테크 수단은 보이지도 않았다. 친구와 함께 잠도 줄여가며 두 번째 P2E 게임을 찾아냈다. 사실 이 게임의 플레이 화면만 보면 2000년대 초반에 나왔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수준이었지만 아무렴 어때, 100만 원 투자해서 일주일마다 60만 원을 버는데!
P2E 게임 특성상 초반에 진입할수록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두 번째 게임은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70만 원을 투자했다. 그리고 딱 7만 원을 회수했다. 그러나 별생각 없었다. 일주일만 기다리면 60만 원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저 이 실패를 통해 코인 게임을 바라보는 내 안목이 높아졌다고 착각했다.
돈 벌기가 왜 이렇게 쉬울까?
이번에는 또 코인 ‘디파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했다. 예금처럼 코인을 특정 프로젝트에 일정기간 예치하면 코인을 빌려주는 대가를 이자처럼 코인으로 주는데 이자율이 연 수십만%가 넘었다. 코인 100개를 예치하면 1년 후 수십만 개로 돌아오는 것이다. 2~3일 간격으로 이자가 계속 붙으니 코인 개수가 순식간에 늘어나는데, 코인 자체 가격 또한 올라 며칠 사이에 수십%의 이득을 봤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실제로 돈을 벌고 있으니 그런 것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월급 받을 때마다 돈을 넣으니 시드도 점점 늘어났다. 비슷한 프로젝트가 보이면 설명 몇 줄 읽고 몇 백만 원을 분산(!) 투자했다. 대부분 해외 프로젝트에다 복잡하고 귀찮은 절차 때문에 보통의 투자자들은 접근하기 힘들었는데, 오히려 이 사실이 내가 지금 선구적인 코인 투자를 하는 것이라 착각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폭락은 동시에, 하루아침에 온다
그러나 사실, 연 수십만%의 이윤을 내는 사업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먼저 투자했던 큰 손들이 예치한 코인을 빼 매도하기 시작하자 코인 가격은 폭락했다. 그것도 반토막 수준이 아니라 백 토막, 천 토막이 나며 들고 있던 코인들은 먼지가 되었다. 한 프로젝트가 이렇게 되니 다른 프로젝트들도 연쇄적으로 몰락했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들은 제대로 사업을 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슬프게도 처음 투자했던 P2E 게임 또한 수익은 점점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결국 0에 수렴하게 되었다.
그래서 첫 대박 게임 구조를 똑 닮은 아류작에 수백만 원을 투자했다. 이 방식의 P2E 게임으로 큰 이득을 봤으니 이번에도 또 그런 수익을 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물린 자금이 많아 정상적인 판단이 힘들었다. 분명 계산상으로는 게임으로 벌어들이는 코인을 바로바로 매도하면 2주일 안에 원금 환수가 전부 가능했는데…. 다른 투자자들도 똑같이 생각했기에 도저히 코인 가격 방어가 안 됐다. 가격 방어가 안 되니 다들 더 맹렬하게 매도했다. 넉 달을 버텼던 첫 게임과는 달리 이 게임은 일주일 만에 코인 가격이 1/2,000로 떨어졌다. 벌었던 모든 돈을 날렸고 동시에 내 원금도 반토막이 났다. 폰지 사기의 시작과 종말을 경험한 것이다.
결국 공부해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내게 코인을 추천했던 친구는 지금까지도 엄청난 수익을 벌고 있다. 친구는 첫 게임 투자의 대박 후 엄청나게 공부해 정말로 코인의 ‘고수’가 되었다. 결국 난 코인을 해서 돈을 잃은 게 아니라 그냥 쉽고 빠르게 돈을 벌려는 욕심을 부리다가 오히려 큰 손실을 본 것이다. 주식도 똑같다. 코인의 손실을 조금이라도 복구하고자 2021년 유망했던 빅테크 종목들을 ‘공부 없이’ 2022년 초에 투자했다가 끊임없는 하락을 겪었다. 내가 돈이 많아 부동산 투자했더라도 똑같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애초에, 월급 몇 백만 원을 벌기 위해서도 직장에 엄청난 투자를 해야 한다. 모르면 배우고, 하면서 익히고, 일이 잘 안 풀리면 집에서도 끊임없이 걱정하고 고민한다. 이렇게 노력하고, 공부하고, 시간을 투자해야 돈을 버는데, 난 직장에 다니면서도 잃고 나서야 이를 깨달았다.
지금은 달러 매수 외에 모든 투자를 중단했다. 재무제표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업무에도 도움이 되고 조금이지만 그간의 손실을 메워주니 즐겁다. 사회 초년생 수준에선 많이 잃었지만, 인생 전체에서 내가 앞으로 벌 수많은 돈으로 따지면 티끌이니 수업료라고 생각 중이다. 재테크 또한 취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처음에는 못했고 수없이 떨어졌지만 죽을 만큼 노력하니 결국은 붙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창대할 것이다.
다음호 필봉계주(筆鋒繼走)의 주인공은 도입처 도입전략계약부 정민희 직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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