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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여행자


시애틀은 추억하기 좋은 도시다. 바다와 커피 향이 어우러지고, 비탈진 거리 너머 인디언의 토템과 아티스트들의 일상이 뒤엉킨다. 캐피탈 힐의 청춘들, 골목 카페의 바리스타는 시애틀의 이미지를 담아내는 오브제들이다. 빛바랜 담벼락, 녹슨 신호등에도 도시의 온기가 서려 있다. 시애틀의 추억 만들기 속도는 '안단테'로. 조금 느리게 마주할 때 여운은 에스프레소처럼 짙다.

[글·사진 서영진(여행칼럼니스트)]



커피를 사랑하는 도시

한낮 기온이 오르더라도 시애틀의 가을 아침 공기는 차다. 커피한 잔씩 들고 버스에 오르는 사람이 다반사다. 시애틀 버스 정거장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제발 뚜껑 없는 커피를 들고 버스에 타지 마시길!" 커피는 시애틀을 추억하는 촉매다. 가을의 문턱을 넘어서면 시애틀의 날씨는 고독 모드다. 흐리고 우울한 계절을 애인처럼 다독여주는 게 커피다. 비행기나 호텔에도 시애틀 커피에 대한 애정과 인심만큼은 각별하다. 시애틀 추억여행은 커피 향과 어우러진 따뜻한 사람 냄새로 무르익는다. 시애틀 관광의 대명사가 된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을 굳이 찾는 것도 사람에 취하기 위해서다. 사과 두 알 산다고 타박하는 상인 없고, 러시아 만두, 수제 치즈를 사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배를 채워도 눈치 볼 필요 없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은 낮에는 구경꾼 덕에 흥이 오르고 해 질 무렵이면 사람들 너머 석양이 내린다.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의 스타벅스 1호점은 구경꾼들로 늘 문전성시다. 커피 공정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공장형 커피숍들도 파인스트리트 곳곳에 문을 열었다. 대형 커피 회사의 마케팅은 주효했고 관광객들이 몰려들지만, 시애틀 주민들의 생각과 삶은 조금 다른 듯하다. 캐피탈 힐이나 파이오니어 지구에서는 일상 속에 녹아든 동네 카페들을 발견하게 된다. 편한 옷차림으로 가을오후의 커피 한 잔을 즐기는 모습이 오히려 익숙하다.

현대예술 녹아든 시애틀센터

다운타운의 시애틀센터 주변은 늘 분주하다. 로큰롤의 전당인 'EMP' 박물관에 이어 유리공예의 거장 데일 치훌리의 전시관이 가세했다. 치훌리정원은 시애틀의 유리공예가인 치훌리의 작품이 전시된 공간이다. 시애틀의 바다, 인디언의 공예품, 어머니의 정원 등을 자유로운 감각으로 형상화했다. 유리 정원은 시애틀센터의 스페이스 니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풍광을 만들어낸다. 스페이스 니들은 추억의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덕분에 명성을 얻었다. 여유로운 여행자라면 케리파크에 올라 스페이스 니들을 본다. 케리파크에 오르면 체스 두는 연인, 춤추는 이방인 등 풍경도 제각각이다. 공원 뒤로는 시애틀의 다운타운과 바다가 어우러진다. 그 중심에 스페이스 니들이 있다. 언덕 위 케리파크 길에 만나는 오래된 가옥들은 풍채도 색감도 다르다. 케리파크에서 내려서면 올림픽 조각공원이다. 바다가 현대조각 작품 뒤로 자맥질을 한다. 예술에 목마르다면 1번가의 시애틀미술관(SAM)이나 센트럴 도서관으로 달려간다. 시애틀 센트럴 도서관은 시애틀 건축 분야의 한 획을 그은 도서관이다. 네덜란드의 렘 콜하스가 설계한 내부 디자인이 더욱 도드라진다. 10층 높이 도서관 천장으로 햇볕이 내리쬐고 주변 건물과 바다가 보인다. 가을이면 책 한 권 읽고 싶어지는 도서관이다.

인디언의 추억 깃든 골목

파이오니어 지구는 시애틀의 태동과 19세기 옛 벽돌 건물을 만나는 곳이다. 광장 한쪽에는 옛 시애틀 추장의 동상이 있다. 시애틀이란 이름도 추장의 이름에서 따왔다. 이 일대는 120여 년 전 큰 화재 뒤, 거리의 1층을 덮어 건물을 세우는 질곡의 과정을 거쳤다. 도시의 과거 중 일부가 지하로 잠들었다. 맨해튼 이외 지역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던 스미스타워는 순백 연필 모양의 아담한 자태로 서 있다. 오랜 세월의 정거장 뒤로는 인터내셔널 지구로 향하는 트램이 가로지른다. 트램 외관은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시애틀을 대변하듯 일본, 중국, 베트남 문양으로 단장돼 있다. 파이오니어 지구는 도심 재생 예술 프로젝트의 중심에 서 있다. 옥시덴털 공원에서 만나는 인디언 토템은 분위기를 돋운다. 노숙인은 햇살 아래 두꺼운 책을 읽고 있다. 토템이나 조각물 외에도 오래된 길목에 들어서면 버려진 물건들이 예술로 다시 숨을 쉰다. 갤러리와 벽돌 빛만큼 고풍스러운 카페들도 거리 한편을 채운다.

언덕 위 청춘의 거리, 캐피탈 힐

시애틀은 비탈 위에 들어선 도시다. 해변에 서면 굴곡진 거리의 윤곽이 파도처럼 너울거린다. 오르는 행위는 비탈의 도시 시애틀의 일상에 가깝다. 해 질 무렵, 시애틀의 청춘들은 캐피탈 힐을 향해 공간이동을 한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언덕을 오르는 모습은 밤의 의식을 치르는 듯하다. 캐피탈 힐의 핫 플레이스는 브로드웨이를 중심으로 파인 스트리트와 파이크 스트리트 일대. 자정 넘도록 레스토랑, 바, 골목이 흥청거린다. 캐피탈 힐의 횡단보도는 무지개색이다. 시애틀의 열린 문화를 강변한다. 시애틀 출신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동상은 거리 한편을 지키고 동성애자들의 결혼식도 바에서 열린다. 캐피탈 힐에서는 노천에 앉아 맥주 한잔 들이켜야 제격이다. 시애틀 수제 맥주는 커피만큼 유명하다. 맥주의 맛과 향도 도시처럼 달곰하다.

프리몬트, 아티스트들이 머물다

예술가의 향취는 북쪽 프리몬트에서 강렬하다. 프리몬트는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등 아티스트들이 머물던 동네다. 메인스트리트에 레닌 동상과 로켓이 등장하고, 오로라 다리 밑에는 집채만 한 괴물 트롤 동상이 웅크리고 있다. 레닌 동상은 가산을 탕진한 괴짜 수집가의 유물을 동네 주민들이 사들인 결과다. 트롤의 제작 역시 주민 대부분이 공정 작업을 도왔다. 주민들은 정기적으로 동상을 모자, 스카프, 넥타이 등으로 장식하는 행사를 연다. 프리몬트 선데이 마켓은 시애틀의 장터로는 꽤 이름난 명소로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수공예품이 좌판을 채운다. 시장 옆길, 유니언 호수로 향하는 수로에는 연인들이 옹기종기 앉아 발을 담그고 논다. 그 사람들 앞으로 작은 요트가 지나고 뒤로는 자전거가 달리는 한가로운 풍경이다. 시애틀의 외곽 동네에서는 도심보다 더디게 시간이 흐른다.

[TIP] 지구를 생각하는 시애틀 여행

일상에 파고든 친환경용품

시애틀의 커피 전문점에서는 1회용 빨대를 찾아보기 힘들다. 도시 차원에서는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비닐봉지 사용제한과 함께 식당에서 일회용 플라스틱 식기를 이용할 수도 없다. 식당에서는 대신 재생 가능하고 분해가 되는 컵, 스푼 등을 제공한다. 시애틀 여행에서는 일상의 소비 속에서 친환경 삶에 동참하게 된다.

환경을 생각하는 교통 문화

커피에 대한 사랑만큼이나 시애틀 주민들의 환경에 대한 관심은 각별하다. 시애틀의 도심을 오갈 때는 환경 정책에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해도 좋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오는 '우버' 택시는 대부분 하이브리드 차량이다. 다운타운을 가로지르는 버스 역시 전기로 운행되는 트롤리 차량이 주를 이룬다. 배기가스 배출을 막기 위해 '카풀'도 일반화돼 있다.

청정 도시 지키는 공유 자전거 문화

친환경 라이프스타일도 도드라진다. 시애틀은 다채로운 자전거 공유 시스템이 활성화된 도시로 여행자들도 수월하게 자전거를 빌려 도심을 둘러볼 수 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저렴하게 시애틀 해변과 골목 등을 자전거 투어로 즐기는 게 가능하다. 시애틀이 청정 도시로 자리매김한 것은 곳곳에서 진행되는 작은 노력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