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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유혹

"커피의 본능은 유혹, 진한 향기는 와인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은 키스보다 황홀하다. 악마처럼 검고 지옥처럼 뜨거우며 사랑처럼 달콤하다." 커피를 '악마의 유혹'에 비유하는 프랑스의 작가 탈레랑의 커피 예찬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커피 음료광고 카피로 쓰여 익숙한 글귀다. 당시 캔 커피 일색이던 냉장 커피음료 시장에서 혁명적인 제품이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우리나라에도 커피전문점들이 생기기 시작해 카페모카, 캐러멜마키아토 같은 화려한 메뉴들이 등장했다. 하지만 가장 충격적이었던 메뉴는 아메리카노! 그전까지의 커피는 항상 단 것이었다. 쓴맛도 분명 존재했지만, 압도적인 단맛으로 쓴맛을 가리고도 남았다. 탈레랑도 분명 커피는 달콤하다고 했는데. 뭔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 처음엔, '이 쓰기만 한 걸 왜 돈 주고 사먹나?' 했다. 그땐 몰랐다. 내가 하루에 아메리카노를 최소 석 잔씩 마셔야 일상생활이 가능한 '아메리카노중독자'가 될 줄은. 그리고 탈레랑이 커피를 '악마의 유혹'에 비견한 진짜 이유를.

[글 유지현 (진화인류학자)]



언제부터 커피를 마셨을까?

직장인과 커피를 떼어 놓을 수 있을까? 만성피로에, 야근에, 회식으로 지친 직장인들이 다음 날 이른 아침부터 사무실에서 멀쩡한 정신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은 정신력이 반, 커피 카페인이 반이다. 하루에 한 잔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면, 한 잔, 두 잔 점점 마시는 양이 늘게 된다. 그 외에도 회의하면서 한 잔, 점심 먹고 한 잔 마시다 보면, 하루에 두세 잔은 쉽게 넘기기 일쑤인데, 그때마다 크림과 설탕을 듬뿍 넣은 커피를 마시기엔 입이 너무 달고 기름지다. 하지만 카페인은 계속 필요하고, 어쩔 수 없이 궁여지책으로 아메리카노로 갈아탔다. 하지만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쓰기만 하고 맛없게 느껴졌던 아메리카노의 진한 향과 깔끔한 뒷맛을 알게 됐다. 아메리카노는 인생의 쓴맛을 깨달은 자의 음료였다. 그런데, 얼마 전 이탈리아 출신 유튜버가 아메리카노에 대해 혹평을 하는 것을 들었다. 커피에 물을 잔뜩 타서 향도 맛도 다 밍밍하고, 거기에 얼음까지 넣어서 차갑게 식은 커피라니 정말 끔찍한 맛이라는 것이다. 커피로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의 커피 자부심이 대단하구나 했다. 그 유튜브 방송을 보고 누군가 우리나라 사람으로 치면 소주에 얼음 잔뜩, 물 한 컵 타서 마시는 느낌일지도 모르겠다며 그를 대변하기도 했다. 정말 그럴수도 있겠다. 그럼 나도 이건 소주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겠지.

아이스아메리카노
비엔나커피

하지만 그렇다고 이탈리아가 커피의 종주국인 것은 아니다. 유럽에 커피가 전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7세기에 이슬람문화를 통해 오스트리아 빈에 전해졌는데, 유럽사람들이 처음에는 커피의 쓴맛을 즐기지 않아 잘 팔리지 않자, 커피에 크림과 설탕 등을 첨가해서 내놓았다. 아직까지도, 비엔나커피로 알려진 달콤하고 부드러운 커피의 시작이다. 중동지역에서 커피를 언제부터 마셔왔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문헌상에서 확인되는 바로는 최소 천 년 전이다. 커피의 유래에 대한 가장 유명한 설화는 목동 칼디 이야기다. 칼디라는 이름의 목동이 염소들이 갑자기 밤에 잠을 자지 않고 흥분한 상태로 날뛰는 것을 보고, 염소들이 독을 먹은 것이 아닌지 살펴보다가 커피 열매를 발견했다고 전해진다. 목동 칼디의 출신지가 예멘인지, 에티오피아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두 지역 모두 현재 세계 최대 커피 산지1, 2위를 다툰다. 에티오피아 지역 고고학 유적지에서 가재도구들과 함께 커피콩이 발견되었는데,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최소 1,800년 전이었다고 한다.

악마의 유혹, 범인은 커피인가 카페인인가?

칼디 설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인간에게 커피가 알려지게 된 것은 그 맛보다, 커피가 심신에 미치는 영향 때문이다. 이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 성분때문이다. 찻잎이나 코코아 열매 등에도 카페인이 포함되어 있지만, 자연 상태에서 커피만큼 카페인 함량이 높은 식품은 거의 없다. 카페인은 우리가 정말로 커피에 '중독'되게 만드는 주범이다. 커피는 술, 담배와 함께 일종의 기호 식품인데, 이러한 기호식품들의 특징은 미각이나 후각 정보를 통하지 않고도 뇌의 신경세포에 직접 작용하는 약리활성 성분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가장 잘 알려진 카페인의 효과는 각성 작용과 불면 증상이다. 인체가 활동할수록 뇌에서 아데노신이 증가하는데, 뇌 신경 세포 중 아데노신 수용체와 결합하여 우리 몸의 움직임을 둔화시키고, 졸음을 유발한다. 그런데 카페인의 분자구조가 아데노신과 유사한 까닭에 아데노신 대신 카페인이 아데노신 수용체와 결합하게 된다. 하지만 카페인과 결합된 아데노신 수용체는 움직임을 둔화시키는 기능을 하지 못한다. 프랑스에서 진행된 실험에서 참여자들을 각각 일반 커피와 디카페인 커피를 마신 그룹과 30분간의 짧은 잠을 잔 그룹, 세 그룹으로 나누어 야간에 고속도로를 운전하는 동안 도로선을 밟는 횟수로 운전 정확도를 측정했다.

결과적으로 카페인이 들어있는 커피를 마신 그룹이 가장 높은 정확도를 보였다. 다른 많은 연구에서도 카페인이 신경계를 활성화하여 피로감소, 집중력 증가에 효과가 있다고 보고되었다. 특히 카페인이 아데노신 수용체와 결합하는 과정에서 뇌 속의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 물질을 증가시켜 중추신경 흥분과 각성, 쾌감들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카페인은 정신뿐만 아니라 육체적 기능에도 영향을 미친다. 한때 국제반도핑기구의 금지약물 중 하나였을 정도로 카페인은 다양한 운동 능력 향상 효과를 가지고 있다. 집중력 향상, 반응 시간 감소뿐만 아니라, 카페인은 신체가 주요 연료 공급원으로 지방을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 신체적 피로 지연과 컨디션 유지에 도움을 준다. 심지어 카페인이 시험 성적에도 영향을 준다는 주장이 있다. 한 실험에서 학생들에게 단순계산 문제를 풀게 하고, 쉬는 시간 동안 한 그룹에는 일반 커피를, 다른 집단에는 디카페인커피를 준 다음, 다시 비슷한 문제를 풀게 하자 카페인이 든 일반 커피를 마신 집단의 성적이 훨씬 더 좋았다. 또 다른 연구에서는 카페인이 기억력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 밝혀졌다.

왼쪽 : 동료와 커피를 마시고 있다 /  오른쪽 : 커피를 마시며 업무에 집중하고 있다.

상위 1%의 특권에서 자본주의의 마약으로

커피가 심신에 미치는 즉각적이고 강력한 효과 때문에 커피 산지 이외에서 커피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어갔고, 이를 수입해서 소비해야 하는 지역에서는 곧 고가의 기호식품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종 황제가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이란 설이 있을 정도로, 커피가 도입된 초기에는 황실이나 양반,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다. 이는 이슬람으로부터 유럽에 커피가 처음으로 도입되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왕족이나 귀족들의 사치품이었다. 커피의 수요가 전 세계적으로 넓어지자 커피는 상업 작물이 되었고, 공급이 점점 늘어나면서 커피 가격은 급락했다. 특히 제2차 대전에서 군인들을 위해 인스턴트 가루 커피가 지급되면서부터 가루 커피 시장이 커져,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인 식품이 됐다. 전쟁이 끝난 후, 공장화된 생산 시스템에서 커피는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높여주는 값싼 약물이었다. 하지만 커피의 효과에 긍정적인 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카페인이 아데노신 대신 아데노신 수용체와 결합하여 나타난 작용들은 실제로 신체의 피로를 줄여주는 것이 아니라, 피로감을 느끼는 것을 지연시켜 줄 뿐이다.

믹스커피

아데노신과 아데노신 수용체가 우리 몸속에서 굳이 우리를 괴롭히고 싶은 마음에 피로감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니다. 피로감은 신체가 다시 회복되도록 충분히 휴식이 필요하다고 몸이 알려주는 신호다. 일시적으로는 커피로 버틸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심신의 피로를 풀 수 있는 방법은 숙면과 규칙적인 운동, 그리고 건강한 식단이다. 수면 부족이 누적되면 카페인의 각성 효과도 약해져서 더는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원래 불면증이 있다거나 카페인에 민감한 사람은 커피의 각성 작용이 수면의 질을 더 나쁘게 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커피 한 잔 생각나게 하는 영화 셋

카페 벨에포크

아날로그를 사랑하는 빅토르는 디지털의 발달로 자신이 신문에 기고하던 만화 그리는 일마저 빼앗기게 된다. 가족과의 대화에도 끼지 못하는 신세가 된 빅토르는 시간여행초대장을 들고 아들의 친구인 앙투안의 회사로 향한다. 고객이 원하는 시간, 장소, 상황을 완벽하게 재현해준다는 이곳에서 그는 만화가의 꿈을 키우고, 첫사랑과 처음 만난 1974년 5월 16일, 카페 벨에포크에서의 소중한 추억을 의뢰한다.

카페 벨에포크

더 테이블

볕이 잘 드는 한 카페 창가 자리. 이곳에는 화려한 배우가 된 유진과 전남자친구 창석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서먹하게 다시 만나 서로의 마음을 조심스레 터놓는 경진과 민호, 사기결혼을 통해 만난 가짜 모녀 은희와 숙자의 대화, 그리고 결혼을 눈앞에 두고 흔들리는 혜경과 운철의 이야기가 하루 동안 머물다 흘러간다. 카페라는 공간에 부유하는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커피처럼 쓰면서도 향긋하게 다가온다.

더 테이블

타이페이 카페스토리

두얼은 오랜 꿈이었던 카페를 오픈한다. 부푼 기대와는 달리 손님의 발길은 뜸하기만 하고, 카페에 뭔가 특별한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찰나, 동생 창얼이 개업 선물로 받은 물건들을 물물 교환할 것을 제안한다. 두얼은 내키지 않았지만 점점 입소문을 타고 사람들이 물건을 들고 찾아오고 카페는 명소가 된다.

타이페이 카페 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