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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봉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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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봉계주

내가 운명, 사주, 관상, 점 같은 '동양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학창 시절 선생님 말씀처럼 열심히 '노오력'만 한다고, 혼자만 잘한다고 만사가 잘 풀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을 무렵인 것 같다. 진로를 고민하던 대학 시절, 재미 삼아 찾아간 사주 집에선 나보고 비행기를 자주 타게 될 거라고 했다. 또 근심 많은 친구와의 의리로 두려움 반 기대 반으로 들어섰던 신점 집에선 내가 경상도에 터를 잡게 될 것이라고도 했다. 국내여행도 다니기 귀찮아하는 전형적인 '집순이' 타입에 부모님과의 안락한 서울 생활을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나로서는 코웃음이 나올 '예언'들이었다. 황당하기만 한 점괘에 돈 낭비만 했다는 씁쓸한 기분이 흐려질 즈음, 나는 한국가스공사에 입사 통지를 받게 됐다. 다시금 날카롭게 뇌리에 박히는 유리 조각 같은 예언의 파편들, 그리고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전율이란! 입사 후 지금 나는 대구에서 잦은 해외 출장을 다니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정말 그 점괘들이 현실이 된 걸까?

[글 경영협력처 국제협력부 김혜영 대리]



동양철학, 그 심오한 세계

내가 직접 겪은 사례와 주변에서 들려오는 간증(?)들을 계기로 동양철학에 대한 개인적인 탐구를 시작했다. 초현실적인 어떠한 존재가 신 내림 받은 사람을 통해 미래를 알려준다는 신점은 차치하고, 현대 한의학 이론의 중심축이기도 한 음양오행론에 기초하고, 고대 중국의 통계를 기반으로 한다는 사주가 나의 처음 목표물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 접근할지 몰라서 사주풀이 책을 몇 권 사서 보기 시작했는데, '동양의 신비함'을 강조하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어렵게 쓰면 쓸수록 책이 잘 팔려서 그런지 혼자서는 도통 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차선으로 발견한 것이 유명한 철학관이나 사주 집에서 별도로 운영하는 사주 교실이었다. 사주 교실에 등록하고 은퇴 후 소일거리삼아 사주를 배우려는 장년들과 나처럼 호기심에 발을 들인 소수의 청년들 틈바구니에 껴서 공부를 시작했다. 그곳에서 배운 것을 간단히 요약하면, 우선 사주라는 말은 넉 '사(四)' 자에 기둥 '주(柱)' 자를 써서 4개의 기둥이라는 뜻이다. 각각의 기둥은 태어난 생년월일시를 60갑자로 나타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일례로 2019년 올해는 기해년이라고 하는데, 서양식의 개념인 2019번째 년이라는 말 대신 '기'와 '해'라는 두 개의 글자를 합쳐 명명한 것처럼 월, 일, 시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따라서 사람들은 태어난 일시에 따라 모두 특정한 8개의 갑자로 이뤄진 자신만의 사주 DNA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60갑자 글자 하나하나는 음양오행에 기초해 특정 성분을 가진다고 이야기한다. 즉, 오행이라고 불리는 물, 불, 나무, 흙, 금속과 같은 5가지 성질을 가지고 이러한 성질이 밖으로 발산되면 '양'이라 하고 내부로 응축되는 식이면 '음'이라고 칭한다. 이뿐만 아니라 60갑자는 동물로도 풀이할 수 있는데, 올해 기해년을 황금 돼지의 해라고 부르는 이유가 '기'가 흙을 뜻하고 '해'는 돼지를 뜻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면 황토색 돼지해인데, 꿈보다는 해몽이 중요하다고 했던가?

'임상'풀이에 나서다

사주란 굉장히 많은 경우의 수를 따지면서 고대 애매모호하게 표현된 이론들을 현대화하고 현실에 맞게 가공해 사주를 보고자하는 '내담자'에게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줘야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전만큼 중요한 연습이 없기에, 나는 주변 지인들과 친구들을 상대로 소위 '임상실험'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짜 사주쟁이인 나의 점괘를 들은 지인들은 한결같이 만족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만족한 이유는 내가 미래를 내다본다거나 내 지인들이 고민하는 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내놓아서가 아니었다. 내가 나름의 어설픈 사주풀이를 하는 동안, 그들은 본인의 성격이나 생활 습관, 대인관계에 있어서의 장점과 약점 등 자신을 제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바라볼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인식하고 스스로와 타협, 또는 합의하는 과정을 거쳤다. 내가 기여한 일은 없었다. 그저 나의 지인들이 스스로 도달한 결론에 굳건한 동의를 해주었을 뿐이었다. 몇 차례의 임상실험 이후 지인들 사이에서 나의 명성은 나날이 높아져 갔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주에 대한 나의 관심은 점점 줄어들게 되었다.

결국 인생은

지금은 사람들의 사주를 잘 봐주지 않는다. 학문적 관심이 거의 없어진 것도 있지만, 실제로 사주를 보고 불운이 닥칠지 혹은 행운이 따를지 여부와 같은 미래의 운명을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삶에서 결코 중요한 부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지인들을 대상으로 한 임상실험에서 증명되었듯, 사람들은 이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알고 있고, 그것을 극복할 힘이 있다고 믿는다. 영화를 감상하기에 앞서 그 누구도 영화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를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아직 펼쳐지지 않은 미래를 궁금해 하며 누군가에게 내 인생의 스포일러를 물어보기보다는 '나'라는 영화의 주인공으로서 역경을 훌륭하게 이겨내고 멋진 해피엔딩을 위해 용감하게 여정을 시작해 보는 것이 더욱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불의의 사고가 닥칠 수 있지만, 결과는 받아들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이는 실의에 빠져 인생을 술로 보내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기도 한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다음 필봉계주 주자는 도입처 계약운영부 오세성 주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