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gas

TOUCH KOGAS

  • TOUCH KOGAS
  • 36.5℃ 심리학

url 복사 인쇄하기

36.5℃ 심리학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항상 부지런하지만 결과가 신통치 않은 사람과 항상 게으르지만 결과는 훌륭한 사람.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면 여러분은 어떤 쪽을 선택하고 싶을까? 물론 두 번째 부류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가 신통치 않은 쪽이라면 정말 슬픈 일이다. 우리는 게으른 천재를 동경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
[글 박한선(신경인류학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박한선 (신경인류학자·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신경인류학자. 서울대 인류학과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에 대해 강의하며, 정신의 진화과정을 연구하고 있다. [행복의 역습], [여성의 진화], [진화와 인간 행동]를 옮겼고, [재난과 정신건강], [정신과 사용설명서], [내가 우울한 건 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때문이야] 등을 썼다.

"노오력" 사회

노력을 풍자하는 문화가 있다. 모든 부정적 결과에 대해 노력 부족을 탓하는 풍토를 비꼬는 말이 '노오력'이다. '만물 노력설'이라고도 한다. 사회나 제도의 개선보다 개인의 노력만을 강조하는 세태를 재치있게 반박하는 것이다. 고속 성장 시대가 끝나면서 사회적 성공은 점점 얻기 어려운 귀중품이 되어가고 있다. 이런 팍팍한 현실에 대한 우리 세대의 좌절감이 느껴진다. 노력무용론의 논리는 대략 이렇다. 어차피 승자의 수는 정해져 있기 때문에 모두 다 같이 노력하면 결국 원점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내가 천만 원을 벌었다고 해도 다른 모든 사람도 똑같이 천만 원을 벌었다면 상황은 같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이는 부모님의 도움으로 쉽게 성공하는 것이 현실이다. 경쟁의 과정마저 공정하지 않다. 타고난 외모나 좋은 인맥을 통해 지름길로 가로질러 가는 이도 있다. 그러니 이래저래 가진 것 없는 나는 노력을 해봐야 들러리가 될 뿐이라는 자조적인 절망에 빠지는 것이다. 꽤 공감 가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게으른 일상을 두고 '신자유주의적 무한 경쟁과 사회적 불공정을 거부하는 정치적 의사 표현'이자, '보다 나은 세상을 향한 실천적 행동'이라고 옹호하기는 어렵다. 분명 세상은 완벽하지 않다. 노력해도 성공하기 어려운 세상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나태한 삶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게으름의 진화

게으름은 모든 인간이 공유하고 있는 보편적 형질이다. '농땡이'를 치고 노는 것은 누구나 좋아한다. 미국 하버드대의 진화학자 대니얼 리버만 교수는,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 게으름을 피우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인류의 선조는 아주 척박한 환경에 살았는데, 에너지를 구하는 것만큼이나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도 유용한 형질이었다는 것이다. 개미는 대표적인 근면의 상징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개미 사회 구성원의 20~30%는 빈둥거리는 게으름뱅이 개미다. 하세가와 에이스케 일본 홋카이도대 교수 연구에 따르면, 게으른 개미는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힘을 비축해 두는 것이다. 집단적인 차원에서 일개미는 모두 자매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일부 개체들은 에너지를 비축하며 미래를 위해 준비한다. 집단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열심히 '빈둥거리는' 것이다. 적절한 휴식이 없으면 필요할 때 에너지를 모아준다. 베짱이가 이 사실을 알면 꽤 억울해하겠지만. 실제로 수렵 채집사회를 이루고 사는 원시 부족민은 그렇게 부지런하지 않다. 이를 두고 "인류의 선조들이 일주일에 8시간만 일했다"는 식의 주장을 펼치는 것은 옳지 않지만, 분명 그들의 일상을 보면 그다지 근면해 보이지 않는다. 문명인의 시각에서 보면 상당한 시간을 빈둥거리며 지내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신체적인 운동량은 예상외로 적다. 불필요하게 무리하지 않는다. 포식자를 피하거나 사냥 혹은 채집을 나설 때면 전력을 기울이지만, 특별히 할 일이 없을 때는 그저 낮잠을 자면서 시간을 때우기도 한다. 빈둥대는 게으른 수렵 채집인. 그러나 내막을 알고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사실 아주 바쁘다. 주변과 중요한 정보를 나누고, 사회적 친분을 쌓으며,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노닥거리는 시간은 사실 집중적인 활동을 위한 준비과정이다. 게다가 수렵 채집사회는 높은 수준의 평등 사회다.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과도하게 노력할 필요가 없다. 단지 먹고살 자원을 획득하는 데 주력하기 때문에 척박한 환경에서도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 모른다.

병적 게으름, 건강한 게으름

하지만 게으름이 적응적 가치가 있다고 해서 나태한 삶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전 인구의 30%가 일생에 한 번은 앓고 지나가는 우울장애. 대표적 증상은 바로 무기력이다. 흔히 우울증이라고 하면 슬프고 울적한 기분을 떠올리는데, 핵심 증상은 바로 기력 감소다. 신체적 혹은 정신적 에너지가 줄어든 나머지 심신이 푹 다운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병적 게으름은 도저히 적응적인 형질이라고 하기 어렵다. 식욕도 떨어지고 체중도 감소한다. 사람도 만나기 싫고 잠도 잘 이루지 못한다. 증상이 심해지면 일상적인 활동도 못하고, 일부는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멜랑콜리아'라고 하는 정서적 슬픔과는 다르다. 하지만 '건강한' 게으름은 그렇지 않다. 몸은 한가해 보이지만 머리는 팽팽 돌아간다. 폭발적인 창조적 순간을 위한 준비 기간이다. 당연히 식욕이 떨어지거나 체중이 감소하는 경우는 없다. 사람을 잘 안 만나는 경우는 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서 일부러 피하는 것이다. 게으른 천재라는 대중적 환상이 생겨난 이유인지도 모른다. 매일매일 놀기만 하다가 하룻밤에 멋진 교향곡이나 문학작품을 써내려 간 위인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그러나 이들이 정말 빈둥거리다가 느닷없이 천재성을 발휘한 것일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창조적 능력을 보인 사람의 상당수는 혼자만의 시간을깊은 내적 성찰과 고민, 지적 훈련에 투자한다. 누구보다도 부지런하다. 게을러 보이는 천재는 있겠지만 정말 게으른 천재는 없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 사람이다.

당신이 게으르다고 느낀다면

자신이 나태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닌가 걱정하는 사람이 많다. SNS를 보면 다들 분주하게 미래를 향해 달려 나가는 것 같은데, 자신은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시간만 보내는 것 같아 한심하다는 자책이다. 그러나 건강한 게으름과 병적인 게으름은 분명 다르다. 만약 세상 혹은 자신에 대한 혐오에 빠져, 골방에서 컴퓨터 게임이나 하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면 건강한 삶이라 하기 어렵다. 자칫하면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 편협한 자신만의 감옥에 영영 갇혀버릴 수도 있다. 자신만의 걸작을 위해서 큰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고 있다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당장은 별로 이루고 있는 것이 없어도 괜찮다. 큰 집을 지으려면 땅을 오랫동안 다져야 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허송세월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내적 계획에 따라 흔들리지 말고 걸어 나가자. 괜히 조급한 마음에 아무거나 닥치는 대로 하다 보면 뭔가 하고 있다는 성취감은 들겠지만, 이런 삶은 그냥 게으른 것만도 못하다. 언뜻 바쁘게 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몹시 나태한 삶이다. 세상에는 부지런한 척하는 게으른 사람이 참 많다. 이들은 새벽에 일어나 졸린 눈을 비비고 도서관이나 일터로 향한다. 온종일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하고 또 일한다. 밤샘 공부나 야근도 자청하는 우리. 그렇게 하루를 빈틈없이 꽉 채우지만, 정작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원하던 길인지 옳은 길인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너무 바빠서 고민할 시간도 없다. 분주한 게으름뱅이다.

노력파 천재들이 등장하는 영화 셋

위플래쉬

  • 장르 | 드라마
  • 감독 | 데이미언 셔젤
  • 출연 | 마일즈 텔러, J.K. 시몬스

미국 명문인 세이퍼음대에 들어간 신입생 앤드류. 그는 우연한 기회로 최고의 실력자인 동시에 최악의 폭군인 플랫처 교수의 음악밴드에 합류하게 된다. 플렛처의 폭언과 학대 속에 매 순간 좌절과 성취를 동시에 경험하는 앤드류는 최고의 드러머를 갈망하며 플렛처와 팽팽한 신경전을 펼친다. 인정받고픈 욕구와 자신을 뛰어넘고자 하는 마음이 강해질수록 비트는 숨 막히게 빨라진다.

이미테이션 게임

  • 장르 | 스릴러
  • 감독 | 모튼 틸덤
  • 출연 | 베네딕트 컴버배치, 키이라 나이틀리

제2차 세계대전, 독일군의 암호 기계 '에니그마'에 맞선 연합군의 암호 해독팀. 팀을 이끄는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은 암호 해독 기계를 발명하지만 24시간마다 바뀌는 암호 탓에 번번히 좌절한다. 앨런은 과연 암호를 풀고 1,400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영화는 '튜링 머신'으로 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2년 앞당긴 컴퓨터의 아버지, 앨런 튜링의 삶을 다룬다.

파이널 포트레이트

  • 장르 : 드라마
  • 감독 : 스탠리 투치
  • 출연 : 제프리 러쉬, 아미 해머

1964년 파리, 천재화가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친구인 '제임스 로드'에게 모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완벽을 추구하는 자코메티의 성격 탓에 초상화 작업은 18일이나 계속되고 제임스는 고국행 비행기 일정까지 변경한다. 그의 인내심이 바닥날 무렵, 자코메티는 진행 중인 드로잉을 보여주며 의미 있는 한 마디를 건넨다. "초상화를 완성하는 건 불가능해. 단지 그리려고 노력할 뿐"